전원 복귀 선언 후에도 여전히 안갯속에서…K팝 산업이 지금 보아야 할 것들

입력 2025. 11. 24   16:45
업데이트 2025. 11. 2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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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스타를 만나다 - 뉴진스

여전한 입장차·새로운 여론전…
1년간의 분쟁 끝나도 계속되는 잡음
헐뜯고 비방하는 증오의 순환 속에
제작자·경영자의 공존 가능성
연습생 처우·팬덤문화의 폐해 등
진짜 문제 묻는 목소리는 너무 작을 뿐

 

지난달 30일 뉴진스가 제기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등을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다섯 멤버가 어도어로 돌아온 뉴진스. 사진=어도어
지난달 30일 뉴진스가 제기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등을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다섯 멤버가 어도어로 돌아온 뉴진스. 사진=어도어



“내 지난날들은 눈 뜨면 잊는 꿈…”.

2022년 여름을 수놓았던 뉴진스의 ‘하입 보이(Hype Boy)’ 노랫말이다. 지루한 K팝 신에 전무후무한 충격을 안긴 뉴진스의 데뷔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환상적인 순간이었다. 그때는 누가 예상했을까. K팝을 바꿔 놓은, 전에 없던 새로운 K팝을 제시할 것만 같았던 뉴진스가 폭로와 고발, 처절한 여론전으로 점철된 경영권 및 전속계약 해지 분쟁의 한가운데 뛰어들 것이라고 말이다.

긴 분쟁은 끝났다. 올 10월 30일 법원은 뉴진스가 제기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등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이브 산하 레이블 어도어와 계약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뉴진스 측이 주장한 신뢰관계 파탄 및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의 해임은 계약 해지 사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멤버들은 신뢰관계 파탄을 주장하며 즉각 항소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지난 12일 뉴진스 멤버 해린과 혜인이 어도어 보도자료에서 활동을 이어 가기로 했다는 결정을 밝힌 데 이어 민지, 하니, 다니엘 역시 복귀의사를 통보했다.

사태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공식 발표 없이 복귀를 선언한 세 멤버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회사는 추가 면담이 필요하다는 태도이고, 팬덤은 즉각 컴백을 준비했다는 레이블이 완전체 복귀를 유보 중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하이브와의 경영권 분쟁 및 다양한 소송에 휘말려 있는 민 전 대표는 5명의 뉴진스를 주장하며 또 다른 여론전을 펼친다. 전속계약 해지 사유를 제시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봤던 하이브 산하 레이블 소속 걸그룹 팬덤은 뉴진스의 복귀를 반대하며 회사 앞 트럭시위를 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선 상대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조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 속 설정처럼 눈을 뜬 채로 시력을 잃어버리는 백색실명이 집단으로 번져 나간다. 눈 뜨면 잊는 꿈? 아니, 눈 뜨면 잊어야 할 꿈 같다.

힘겹지만 우리는 이 분쟁을 똑바로 응시해야 한다. 뉴진스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K팝의 여러 면모를 허물어트렸다. 미국 공영라디오 NPR이 지난 18일 기고한 칼럼 ‘뉴진스는 어떻게 K시장을 (거의) 바꾸었나’에서 제시한 대로 그들은 여러 부분에서 K팝의 이질적인 존재였다. 견고하게 다듬어 놓은 시스템이 산업의 미래처럼 여겨질 때 전통적인 프로듀서 체제를 구축한 민 전 대표는 일관된 계획에 따라 감각 있는 전문가들을 모집해 전에 없던 새로운 결과물을 내놨다. 기획자 의도가 노래부터 안무, 뮤직비디오까지 조금의 빈틈없이 촘촘하게 얽힌 엔터테인먼트가 청춘의 순수와 아련함을 복원하며 K팝 아이돌이 그토록 갖고자 하는 ‘진정성’을 획득했다.

하지만 민 전 대표가 주장한 ‘창작과 운영 자율성에 간섭이 없는’ 시스템은 최초로 독립 레이블을 내주고 브랜드, 자본, 노동력을 공유한 하이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뉴진스는 독립적인 존재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K팝 산업의 진화한 새로운 형태였다. NPR 칼럼이 ‘산업은 다른 계획이 있었다’는 문장으로 핵심을 꿰뚫은 지점이다. 민 전 대표는 타협하지 않는 창작으로 뉴진스를 빚어냈지만, 자신의 ‘작품’에 집착이 과했다. 하이브는 시스템의 수호자를 자처했으나 여러 갈등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능력이 부족했다. 치열한 물밑 대립과 갈등을 거쳐 하이브는 민희진의 어도어 감사 착수를 선언했다. 민 전 대표는 희대의 기자회견에서 여론을 반전시켰다. 서로 물어뜯고 상처 입히는 진실 공방의 시간이 열렸다.

민 전 대표를 따라온 뉴진스 멤버들이 해당 갈등상황에서 소속 불안감을 느끼고 회사와 신뢰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됐음은 자연스럽다. 뉴진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멤버 모두가 깊은 고민과 논의를 거쳐 내린 결정”이라며 지난해 11월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하며 분쟁에 뛰어들었다. 민 전 대표는 뉴진스와 자신을 격리하지 않고 상호 간 소송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여론전을 벌였다. 멤버들 역시 기자회견과 국정감사 출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신뢰관계 파탄을 주장했다. 그들의 근거가 계약서 조항과 법원 판결을 이기기에는 모자랐음이 이번 판결로 드러났다. 산업이 가진 다른 계획에 저항하려던 그룹은 그렇게 비판하던 레이블로 돌아왔다.

음악평론가로서 지난 1년의 사태를 지켜보며 느낀 가장 큰 공포는 더 이상 사실관계가 중요하지 않아진 세상의 풍경이었다. 처음엔 차분히 흐름을 관망하며 오늘날 K팝이 품고 있는 여러 모순과 개선점을 풀어 나가려는 모습을 기대했다. 현실은 달랐다. 자극적인 언어와 뜬소문이 횡행하는 대안적 사실의 시대였다. K팝에 큰 관심이 없었던 지인들이 맹렬히 상대를 조롱하고 저주하는 모습을 보며 심히 당황한 적이 셀 수도 없이 많다. 모두가 견해를 밝히는 가운데 중립적인 시각은 동조 혹은 방관으로 손가락질당했다. 뉴진스는 물론 하이브 산하 레이블 음악가들의 작품을 평가한 내용에도 편 가르기가 작동했다. 어떻게든 양측을 무너트리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과정에서 입장을 왜곡하고 자료를 취사선택했다.

다섯 멤버가 어도어로 돌아온 지금 벌어지는 풍경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는 증오의 순환이다. 뉴진스가 우여곡절 끝에 복귀해 어떤 음악을 내놓고 어떤 성과를 거두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미 서로를 적으로 규정한 이들은 끊임없이 억압받는 그룹이라는 서사와 상대에게 고통을 주고도 반성하지 않는 파렴치한 멤버들이라는 프레임으로 끝없이 대립한다. 계약서 조항, 법원 판결문, 그 아래 우리가 살펴봐야 할 여러 문제는 잡음일 뿐이다.

K팝 창작주체에 관한 질문, 제작자와 경영자의 공존 가능성, 아이돌 연습생의 처우와 노동 문제, 기업 고도화 과정에서의 다양한 갈등상황, 높은 화제성과 비례하는 사생활 침해와 팬덤문화의 폐해를 묻는 목소리는 너무도 작다. 『눈먼 자들의 도시』 속 독백이 들린다.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순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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