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 위의 균형… 패션, 완성되는 시간

입력 2025. 11. 24   16:27
업데이트 2025. 11. 2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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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역사 - 시계의 역사

고대 해시계 그림자에서 
공공장소 시계탑 거쳐
20세기 손목 위로 이동
日 ‘세이코 쿼츠’
영화 007 시리즈 ‘오메가’
정밀·미학 동시 연출
옷차림 완성 ‘아이템’으로

세종 16년(1434년) 설치된 조선시대 해시계 앙부일구. 필자 제공
세종 16년(1434년) 설치된 조선시대 해시계 앙부일구. 필자 제공


따라서 계절과 하루의 흐름, 구체적인 시간좌표를 규정하는 시간 측정 기술과 그 정수였던 시계는 생활적인 편의를 넘어 사회를 조직하고 운행시키는 핵심 장치였다. 고대의 다양하고 거대한 시계들로부터 오늘날 가볍고 심플한 손목시계가 패션의 일부로 자리 잡기까지, 시계의 역사는 기술과 제도의 역사이자 인간이 시간을 다루는 방식의 변화 그 자체였다. 

고대의 시간 측정은 자연의 변화를 읽는 일에서 출발했다. 이집트·메소포타미아·중국·한반도·그리스 등 여러 문명은 해시계를 만들어 태양의 높이를 시간으로 환산했다. 해시계는 직관적이었지만 밤에는 시침이 보이지 않았기에 어디까지나 낮 중심의 구조적인 한계를 갖고 있었다. 자연 의존성이 높아 계절과 날씨에 따라 정확성이 달랐다. 이후 물·모래·불을 활용한 시계가 등장했다. 물시계는 일정한 유량을 통해 흐름을 계측했고, 모래시계는 구조가 단순해 이동에 적합했다. 동아시아에서는 향이 타는 속도를 시간으로 측정하는 향루가 사용됐다. 이 시대의 시계는 기술적 정교함보다 측정 방식의 다양성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시간은 개인이 아니라 종교·왕권·도시가 관리하는 중대 자원이자 판단의 지표였기 때문이다.

중세 들어 인류가 시간을 측정하는 기술은 한층 더 정밀해졌다. 12세기 말 이슬람 세계에서는 공학자 알 자자리(al-Jazari)를 중심으로 정교한 천문 기계가 제작됐다. 기도의 시간적 엄밀성을 기하기 위함이었다. 기도 시간과 천문 관측을 결합한 장치는 서양의 기계식 시계 발전에 간접적 영향을 줬다. 13세기와 14세기 사이 유럽 각 도시의 광장과 성당 등 사회적으로 중요하거나 도심에 위치한 공공시설에는 톱니와 추를 이용한 기계식 시계가 만들어져 우뚝 솟은 종탑에 설치됐다. 이를 시계탑(時計塔)이라고 불렀다.

이때까지 시계는 아직 막대한 비용이 요구됐기에 개인이 소유하기보단 교회나 유지들이 출자해 공공장소에 시계탑 형식으로 배치했다. 교회는 이를 통해 미사 시간을, 상인회는 이를 보고 회합시간을, 군대는 각종 일과의 흐름을 통일할 수 있었다. 이렇듯 시계탑은 특정 공동체가 삶의 각종 영역에서 공유하는 ‘공공 시간’을 만들었다. 시계는 기술이 아니라 제도의 일부였고, 공동체의 일과를 정하는 근거였다.

1656년 겨울, 네덜란드 헤이그의 어떤 실험실에서 한 발명가가 흔들리는 진자의 규칙성을 관찰했다. 갈릴레오가 남긴 메모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진동주기가 거의 일정하다는 사실에 착안해 이를 시계장치의 힘으로 바꾸는 기구를 설계한다. 며칠 밤낮을 조정한 끝에 그는 기존 시계가 하루에 몇 분씩 흐트러뜨리던 오차를 단 몇 초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이 진자시계는 곧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고, 정밀한 시간 측정이 천문 관측과 항해 계산상의 정확도를 높여 근대 과학의 틀을 바꿔 놨다. 이 발명가는 네덜란드의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인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로, 이진법으로 유명한 라이프니츠의 수학 스승이다. 하위헌스의 발명은 유럽이 당면한 ‘경도 문제’ 해결에도 크게 기여한다. 경도를 정확히 계산할 수 있어야 해상 항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는데, 핵심 지표가 바로 시간 경과였기 때문이었다.

영국의 존 해리슨은 오랜 연구 끝에 항해용 크로노미터(chronometer)를 완성했다. 해상에서 일정한 속도로 작동하는 이 시계는 제국 확장의 필수 장비가 됐다. ‘정확한 시간’은 팽창하는 해양 제국의 신경망 역할을 했다. 17~18세기는 시계 정밀화의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19세기 산업혁명은 시간을 사회 전반의 규범으로 만들었다. 철도 개통과 표준시 확립은 지역마다 달랐던 시간을 통일했고, 공장 노동은 단위 시간의 세분화와 엄격한 규율을 요구했다. 시계는 특정 계층의 상징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근대적 생활용품이 됐다. 이 시기 남성 복식에서 포켓워치는 핵심 장신구였다. 체인과 조끼 주머니는 근대적 신분과 규율을 상징했고, 일본과 조선의 근대화 과정에서도 포켓워치는 서구 제도를 수용하는 표식으로 등장했다.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2021) 에서 슈트를 입고 오메가 시계를 착용한 제임스 본드.  필자 제공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2021) 에서 슈트를 입고 오메가 시계를 착용한 제임스 본드.  필자 제공



20세기에 시계는 손목 위로 이동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장병들은 양손이 자유로운 시계가 필요했다. 손목시계는 군용 장비에서 민간의 일상 도구로 확산돼 빠르게 남성 패션의 표준이 됐다. 이후 자동시계, 방수·충격 보호 기술, 항공·잠수·레이싱 등 전문 분야용 시계가 차례로 등장했다.

각 브랜드는 성능과 내구성을 앞세워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1969년 출시된 일본의 ‘세이코 쿼츠 ASTRON’는 세계 시계 역사에 혁신을 가져왔다. 쿼츠 시계는 기계식 시계 대비 정밀도가 뛰어나고 유지관리가 쉽다. 일상생활이나 스포츠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전자 부품을 활용한 대량 생산이 가능해져 제조 비용이 낮아졌기 때문에 기계식 시계보다 더 튼튼하고 저렴하게 판매됐다. 이제 기존 기계식 시계는 고가 영역으로 한정되기 시작했고, 일상에서는 가볍고 정확한 쿼츠 시계가 일반적 선택이 됐다. 시계의 중심이 기술에서 개성으로 이동한 시기다.

최근 패션에서 손목시계는 옷차림의 스타일을 결정하는 아이템이다. 롤렉스 서브마리너의 스틸 브레이슬릿은 네이비 블레이저·화이트 셔츠와 결합해 단정한 비즈니스 룩을 연출한다.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가 착용한 모델로 유명한 오메가 시마스터 다이버 300M은 네이비 슈트·화이트 셔츠 같은 클래식 영국식 정장과 특히 잘 어울렸고, 도트 패턴 다이얼과 블루 베젤은 캐주얼한 니트나 테크웨어에도 자연스럽게 녹아 ‘정밀한 도구’와 ‘미학적인 첩보’를 동시에 연출한다. 태그호이어 모나코는 사각 케이스와 컬러 다이얼 덕분에 오버사이즈 코트·와이드 팬츠 같은 2025년식 젠더리스 실루엣과 잘 맞는다. 시계는 더 이상 의상의 보조물이 아니라 손목에서 전체 룩의 균형을 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

21세기 들어 시계는 다시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스마트워치는 기능의 총합체이자 일상 데이터를 관리하는 장치로 자리 잡았고, 기계식 시계는 오히려 고급 취향의 대상이 됐다. 브랜드 역사, 소재의 무게감, 장인의 조립 방식이 가치를 형성했고 시계를 착용하는 방식은 취향의 언어가 됐다. 최근에는 두톤 메탈, 스켈레톤 구조, 빈티지 디자인의 재해석, 젠더리스 형태가 유행하고 있다. 색상과 소재의 선택 폭이 넓어지면서 시계는 옷차림을 완성하는 핵심 요소로 기능한다. 의상의 한 부분이 아니라 착용자의 정체성과 리듬을 드러내는 매개로 자리 잡은 것이다.

시계의 역사는 시간을 어떻게 조직했는지에 대한 기록이자, 인간이 시간을 어떤 질서로 살아왔는지에 대한 압축된 서사다. 해시계부터 스마트워치에 이르기까지 시계는 시대마다 다른 역할을 수행했다. 오늘날 손목시계는 단순한 시간 측정 장치를 넘어 일상의 균형을 잡아주는 실용적인 패션 아이템이 됐다. 소재와 구조에 따라 다른 인상을 만들 수 있고, 관리만 잘하면 오래도록 손목에서 제 역할을 한다. 계절이 바뀌는 지금, 자신에게 맞는 손목시계를 골라 옷차림을 완성해 보자.

출근하는 회사원 손목 위의 금속 광택, 재킷 소매 사이로 스치는 얇은 가죽 스트랩, 컬러 다이얼이 의도적으로 드러나는 패션은 흔한 일상이다. 시계가 패션 액세서리가 된 역사는 짧지 않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시간을 측정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농경과 제례(祭禮), 행정과 군사 등 인류가 행한 많은 일은 일정한 리듬과 엄밀성을 요구했다.



필자 이상희는 수원대 디자인앤아트대학 학장 겸 미술대학원 원장, 고운미술관 관장, 패션디자인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사)한국패션디자인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 이상희는 수원대 디자인앤아트대학 학장 겸 미술대학원 원장, 고운미술관 관장, 패션디자인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사)한국패션디자인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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