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드라마
북한 드라마에는 로맨스가 없습니다.
개인의 사랑이나 욕망은 ‘자기중심적 감정’으로 부르주아의 잔재로 보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개인 감정의 가장 높은 자리는 수령을 향한 무조건적인 충성으로 고정돼 있기에 남녀 간의 사적 감정은 ‘혁명정신을 흐리게 하는’ 비사회주의적인 요소입니다. 즉 사상성을 연약하게 하는 방해물일 뿐이지요.
북한에서 연애하려면 수령을 향한 충성이 우선돼야 합니다.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의 혼인신고서 맨 앞줄에는 ‘위대한 수령의 은덕으로 결혼하게 됐다’는 취지의 문장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결혼과 사랑의 출발점도 당과 수령의 은혜 연장선에 놓이도록 사상적으로 틀을 짜 놓은 게 북한입니다.
그렇다 보니 북한 문화 콘텐츠 전반에는 수십 년간 남녀의 로맨스가 금지되다시피 했고, 오직 김 부자의 우상화만이 중심 역할을 해 왔습니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리고 유학 경험이 있는 김정은 집권 이후 제작된 작품도 매우 보수적이었습니다. 로맨스보다 체제 선전과 애국주의 영웅 서사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나오면서 북한 드라마에 진짜 변화가 생겼습니다. ‘백학벌의 새봄’입니다. 북한 관영매체가 인기리에 방영 중이라고 직접 홍보했을 정도로 이례적인 작품이고, 외신에서도 “북한 드라마가 달라지고 있다”며 주목했습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변화는 ‘로맨스’의 등장입니다.
이 드라마는 북한 드라마 사상 거의 처음으로 청춘 남녀의 연애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특히 대사가 파격적인데 “내 심장에 너 있다”는 남자 등장인물의 대사는 우리나라 2000년대 드라마 명대사인 “내 안에 너 있다”는 표현을 연상하게 한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대사 구조가 매우 유사합니다. 이는 북한 주민들이 몰래 시청하는 한국 드라마의 감정 표현 패턴이 창작자들에게도 스며들었을 가능성을 보여 주는 상징적 장면입니다.
또 주목할 점은 남편이 앞치마를 두르고 나오는 장면입니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가부장적이고 남성 우월적인 문화가 매우 강합니다. 그런 북한에서 남성이 가사를 하는 장면은 거의 혁명적인 변화입니다. 북한 연구자들 사이에서 “북한도 남성이 가사와 육아에 참여하는 모습이 일상적으로 변했나”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낯설고 새로운 모습이었습니다.
권선징악 공식도 깼습니다.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현실적으로 묘사됐습니다. 즉 연애와 결혼을 둘러싼 현실적 갈등을 적나라하게 다룬 겁니다.
남자의 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하고 여자가 이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장면 등은 과거 북한 드라마에선 상상하기 힘든 구성입니다. ‘백학벌의 새봄’은 북한 드라마 최초로 로맨스 중심 서사로 평가받습니다. 북한 주민들도 예상하지 못한 감정 표현과 남녀의 사랑, 가사 분담 및 현실 갈등 묘사의 요소들이 기존 북한 드라마 문법과 정면충돌합니다.
‘페이스:北(북) 시즌2’ 113회 ‘화제의 北 드라마로 본 북한의 내부 변화’는 24일 오후 8시에 방송됩니다. KFN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박새암 KFN ‘페이스:北’ MC·강남대학교 특임교수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해당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