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슈 돋보기
트럼프 2.0 시대 미국·중남미 관계 동향 ④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대한 미국 정책 동향
트럼프 → 아르헨티나 밀레이, 중국 견제 의지 보이니 이례적 경제지원 화답
트럼프 & 브라질 룰라, 시작은 갈등이었으나 만나보니 “케미 맞네”
아르헨티나 : 미국 경제지원의 국내 정치적 파급효과와 논란
인플레 억제 실패로 외환위기 우려 고조
미, 통화스와프·민간기금 조달 등 도움
정치적 의도 드러난 지원 타당성 논란
아르헨티나는 2023년 11월 대선 결과 자유전진당의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가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페론주의 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빈곤 누적으로 초래된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를 비판하며 내건 정권심판론에 유권자들이 호응한 결과였다. 극우주의 성향의 밀레이 대통령은 급격한 재정긴축 기조에 따라 대대적인 공공지출 삭감에 착수했다. 하지만 자국 화폐인 페소화 가치를 상승시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는 정책에 실패하면서 국제통화기금(IMF)의 최대 채무국인 아르헨티나의 외환위기 우려가 고조됐다.
미국은 아르헨티나 경제지원에 착수했다. 2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협정 체결과 함께 민간은행과 국부펀드로 구성된 200억 달러의 민간기금을 추가 조달한다는 내용이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지난달 9일 통화스와프협정 체결 이후 미국 폭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중남미에서 또 다른 실패 국가나 중국이 주도하는 국가를 원하지 않는다”며 “아르헨티나의 안정이 미국의 최우선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밀레이 대통령이 아르헨티나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확고한 의지가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미국의 경제지원에 투영된 대(對)중국 전략경쟁의 의도를 보여 주는 장면이다.
미국의 경제지원이 아르헨티나 중간선거를 눈앞에 둔 시점에 추진됐다는 점도 주목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밀레이 대통령이 중간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아르헨티나 지원이 어려울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아르헨티나 야당의 승리가 예측되는 가운데 미국의 경제지원을 밀레이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와 연계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이에 따른 정치적 논란이 초래된 가운데 진행된 지난달 26일 중간선거 결과 밀레이 대통령이 소속된 집권 자유전진당이 야당에 압승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예상치 못한 밀레이 대통령의 놀라운 승리를 가져온 1차적 이유로는 미국의 경제지원이 지목된다.
경제지원의 타당성 논란도 초래됐다. 미 재무부는 통상 타국의 외환위기가 달러 안정성에 위협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만 외환안정기금(ESF) 지원에 착수해 왔다. 이러한 원칙에서 볼 때 아르헨티나는 예외 사례에 해당한다. 아르헨티나의 달러화 표시 부채가 달러 가치나 위상에 실질적 해를 끼친다는 증거는 없다. 이번 미국의 경제지원은 재정적 안정성이 아닌 정치적 이유로 결정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미국의 경제지원이 잘못된 투자에 혜택을 줄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런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문제는 미국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통상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전략적 투자 분야 대신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산과 현지 통화 가치를 상승시키는 데 사용되기에 촉발된다. 밀레이의 공공지출 삭감 프로그램에 따라 수익을 기대한 해외 투자자들이 감당해야 할 손실을 미국의 경제 이익으로 만회해 주는 결과에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경제적 지원이 미국 우선주의 기조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중국이 미국의 관세협상 압박에 대응해 대두 구매처를 아르헨티나로 변경하면서 미국 농가에 초래된 손해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시각이다. 이에 따라 미 의회가 농가들의 이익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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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 유엔총회에서의 조우와 관계 개선 모색
지난 9월 총회서 룰라 이어 트럼프 연설
국제적 관심 쏠렸지만 뜻밖 분위기 반전
“대화로 해결 가능” 정상회담 잠정 합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자 미국과 브라질의 갈등이 초래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2년 10월 브라질 대선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에게 패배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보우소나루를 향한 개인적 지지를 넘어 그의 처벌을 면하게 하려는 목적의 내정간섭 행보를 보이며 갈등은 고조됐다.
이런 갈등이 빚어지는 가운데 지난 9월 유엔총회가 개최됐다. 유엔총회 연설은 관례상 브라질, 미국, 의장국 대표 순으로 정해져 있다. 올해 총회 연설에선 룰라 브라질 대통령, 트럼프 미 대통령 순서로 연설하게 됐다. 갈등상황에서 유엔에 상반된 시각을 견지하는 두 대통령의 연설이 이어지면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첫 연설자로 나선 룰라 대통령은 다자주의·민주주의가 권위주의와 국제법 약화에 따라 심각한 위협을 받는 현재의 격동적 상황에 유엔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이러한 비판에 따라 유엔 개혁도 요구했다. 개발도상국들이 국제 거버넌스에서 더 많은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가·국제적 차원에서 사회적 정의가 실현되면서 민주주의·다자주의 구현이 가능해진다는 게 룰라 대통령의 주장이다. 이런 연설 내용은 개발도상국들의 요구를 반영하면서 다극세계 질서를 지지해 온 룰라 대통령의 일관된 입장을 재차 강조하는 대목이다.
두 번째 연설자로 나선 트럼프 대통령 역시 유엔이 그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룰라의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결론에서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그는 유엔을 ‘지구주의자(globalist)의 실패작’으로 규정했다. 기후변화 대응도 “세계에서 가장 큰 사기극”이라고 일축했다. 그의 연설 내용은 유엔의 임무 실현에 도전을 초래해 온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접근법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전면적인 지원 보류 결정으로 인해 가자지구와 수단에서의 인도적 지원, 말리와 콩고민주공화국에서의 평화유지활동 등 유엔 주요 임무 수행이 대폭 축소됐다.
올해 유엔총회의 가장 극적인 상황은 룰라 대통령이 연설을 마친 뒤 트럼프 대통령과 만났을 때 발생했다. 두 지도자가 포옹을 하고 짧은 대화를 나눈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둘 사이에 “훌륭한 화학작용”이 있었다고 언급해서다. 룰라 대통령 역시 “그와 우리 사이에 어느 정도 호흡이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데 동의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내정간섭 행보와 관련해서도 “잘못된 정보에 따른 잘못된 결정이기에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유엔에서의 조우를 계기로 관계 개선 모색이 본격화하면서 두 나라는 조만간 정상회담을 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이는 룰라 대통령의 외교적 승리이자 국내 정치적 차원에서의 승리로도 평가된다. 룰라 대통령의 부정적 이미지 확산으로 미국의 내정간섭을 유도하려는 브라질 내 극우진영을 상대로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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