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앞에 새로운 전쟁의 언어를 펼쳐 보이는 거대한 ‘실전 교과서’가 있다. 3년9개월째 이어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전통적 전쟁 개념을 송두리째 바꾼 ‘상업화된 전쟁’의 출발점이 됐다. 이 전쟁은 단순히 군사력의 충돌이 아니라 민간기술·기업·플랫폼이 실전의 중심에 들어와 국가 방위를 재구성하는 거대한 실험장이 됐다.
러시아의 물량 공세에 맞선 우크라이나는 ‘민첩성과 속도’로 대응했다. 그 중심에는 정부가 주도한 ‘Brave1’ 플랫폼이 있다. 2023년 출범한 Brave1은 정부 부처, 군, 민간기업, 개발자가 함께 참여하는 국방 기술 생태계다. 과거에는 무기 하나를 개발하는 데 몇 년이 걸렸지만 Brave1에서는 몇 주 만에 시제품이 전장에 투입된다. 지금까지 500여 개의 프로젝트가 이 플랫폼을 통해 성장했고, 260여 개의 기술이 나토(NATO) 표준에 등록됐다.
특히 Brave1의 또 다른 혁신은 ‘Brave1 Market’이다. 전투에서 성과를 낸 부대는 ‘E-Point’라는 포인트를 받아 이를 통해 드론이나 전자전 장비를 직접 구매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원을 살상하며 6점을 얻고, 적 탱크를 파괴하면 40점을 얻어, 그 점수로 필요한 장비를 바로 주문할 수 있다. 중앙 조달이 아닌 현장 중심의 조달, 즉 ‘전투성과가 자원 확보로 이어지는’ 구조다. 그 덕분에 병사들이 직접 혁신의 주체가 됐다. “병사들이 너무 빨리 적을 제압해 새 드론 납품이 밀린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변화의 속도는 빨라졌다.
이와 비슷한 변화는 미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미 국방부는 ‘Open DAGIR’이라는 개방형 혁신 플랫폼을 통해 군 내부 데이터와 민간 기술을 연결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상업용 소프트웨어를 빠르게 도입해 작전 체계에 적용하도록 설계된 이 플랫폼은 ‘Project Maven’ ‘Replicator’ ‘TITAN’ 등과 함께 ‘Commercial First(상업기술 우선)’ 정책을 구현하고 있다. 이 접근은 군이 직접 개발하기보다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민간 기술을 먼저 들여와 신속히 전장에 통합하는 방식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팔란티어와 안두릴 같은 신생 소프트웨어 기반 국방기업들이 전통적인 방산 대기업을 추월하며 ‘소프트웨어가 전쟁을 지휘하는 시대’의 상징이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미국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국가 방위가 정부의 독점 영역을 넘어 민간 기술과 시장이 함께 만드는 생태계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흐름은 우리 한국군에도 깊은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빠르게 실패하고 더 빨리 학습하는(Fail Fast, Learn Faster) 문화가 필요하다. 실험과 실패를 제도적으로 허용할 때 혁신은 가속된다. 둘째, 민간 상용 기술의 적극적 도입과 통합이 요구된다. 상업용 드론, 인공지능(AI), 위성과 통신기술이 이미 전장의 주역이 된 만큼 군도 우크라이나의 Brave1이나 미국의 Open DAGIR과 같이 이를 신속히 흡수할 초고속 획득체계가 요구된다. 셋째, 사용자(End-User) 중심의 조달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E-Point 제도와 같이 야전의 소요가 곧바로 전력 획득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경로와 생태계가 필요하다.
‘전쟁의 상업화’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한국군이 이 변화를 두려움이 아닌 기회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정한 미래 강군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해당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