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꿈, 낭만의 숲 - 신림동
서울대 안 계곡형 녹지 ‘버들골’ 런던·뉴욕 공원에 견줄 만
사법시험 폐지 후 취준생·유학생·직장인 1인 가구 모여들어
청년 창업가 작은 사무실 곳곳에…세계 최고 인재의 집합소
신림동은 관악산 기슭 무성한 숲 아래 자리한 동네다. ‘새 숲’이란 뜻의 신림(新林)이라는 이름처럼 수백 년 전부터 나무가 우거진 고요한 마을이었다. 경기 시흥군 동면 신림리라 불린 조선시대에는 집성촌이 드문드문 있던 한적한 시골이었다. 그런 신림동이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가이자 고시촌으로, 이제는 벤처의 요람으로 변모하고 있다. 신림동의 역사는 대한민국 청춘들의 도전과 꿈의 역사다. 서울대가 이전하면서 고시생, 청년 창업가들이 밀려들면서 신림동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순대타운과 곱창골목만 있다고? 구버전의 신림동이 아니다. 눈빛 반짝이는 최고의 두뇌들이 신림동을 미래의 골목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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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이 대학으로, 학생운동의 현장이 되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시내 곳곳에 흩어진 서울대를 한곳으로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종로 동숭동, 청량리, 공릉동 등 10여 곳에 나뉘어 있던 캠퍼스를 신림동 관악산 자락으로 모은 것이다. 통합 캠퍼스 구상은 1960년대부터 있었지만 예산과 갈등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은 이례적으로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이유가 있었다. 동숭동 서울대는 학생운동의 중심지였는데 도심 한복판이라 통제가 어려웠다. 신림동은 당시 서울 외곽의 한적한 곳이었다. 정문 하나만 막으면 진압이 수월했고, 실제로 경찰서와 소방서를 정문 바로 앞에 지었다. 당시로선 동양 최대 규모의 경찰서와 소방서였다고 한다.
서울대가 들어서기 전 이곳엔 관악컨트리클럽이라는 골프장이 있었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동서관광이 운영하던 이 골프장을 정부가 매입해 지금의 서울대학교 캠퍼스를 조성했다. 지금 서울대 교수회관은 옛 클럽하우스를 개조한 건물이고, ‘버들골’도 골프장 시절의 흔적이다.
버들골 말이 나와서 말인데, 깜짝 놀랐다. 서울대에 이런 멋진 녹지가 숨겨져 있는 줄 몰랐다. 버들골은 생활과학대-미술대-기숙사를 잇는 계곡형 녹지 공간으로, 런던이나 뉴욕의 멋진 공원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버들골 원형 공연장이 시내에 지어졌다면 서울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위세 좀 떨쳤을 것이라고 본다.
어쨌든 서울대는 1975년 2월 1단계 이전이 완료됐다. 문리대, 법대, 사범대 등 20개 기관의 학생과 교직원 1만2000여 명이 동숭동을 떠나 신림동으로 왔다. 반세기 동안 지성의 요람이던 대학로는 텅 비워지고 대신 신림동이 ‘대학 동네’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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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촌의 탄생, 입신양명의 꿈
서울대 이전으로 하숙집과 자취방이 늘어났다. 1980년대 말부터 고시학원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법고시를 통과해 법조인이 되는 것이 최고의 출세 코스이던 시절 전국 수험생이 신림동으로 몰려들었다. 1991년 신림9동(지금의 대학동)에 머물던 고시생은 5000여 명.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엔 2만 명을 넘어섰다. 주민 절반 이상이 고시생인 셈이었다. 신림동 고시촌은 그렇게 전성기를 맞게 된다. 1평짜리 고시원, 24시간 불 꺼지지 않는 독서실, 7000원짜리 고시 식당, 헌책방, 복사집이 즐비했다. ‘녹두거리’라 불리는 번화가는 고시생들의 유일한 휴식처였다. 고시촌엔 독특한 문화가 있었다. 시험이 끝나면 골목엔 우울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합격자 발표가 나면 환호와 절망이 교차했다. 누군가는 짐을 싸서 떠나고, 누군가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신림동 고시촌의 물가는 서울에서도 가장 쌌다. 저렴한 식당, 저렴한 PC방, 저렴한 만화방, 저렴한 노래방이 가득했다. ‘이게 정녕 서울 물가란 말인가’ 싶을 정도로 착한 가격들이었다. 그 전통은 지금도 이어진다. 순대타운의 순대볶음은 만 원이면 배부르고, 막국수집에선 7000~8000원이면 든든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신림동에 오면 늘 배부르게 먹고 나간다.
가성비 천국, 순대타운과 곱창골목
솔직히 먹으려고 여행을 다닌다. 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식도락 재미가 없었다면 여행은 진즉에 관뒀을 거다.
대학가에서 기대하는 건 가성비다. 가격에 놀라고, 양에 놀라는 음식점을 검색하다 ‘정원쌈밥보리밥’이란 식당을 찾아냈다. 보쌈정식, 제육정식이 1만1000원인데 대학가치곤 딱히 싸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북한 고기의 양에 잠깐의 불평을 즉시 반성했다. 도저히 1인분 양이 아니었다. 2인분은 족히 되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예전엔 무료 리필이 가능했다는데, 지금은 100g 추가할 때 2000원을 더 받는다. 씨름이나 역도 선수들이 아니라면 주는 고기만 다 먹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양이 많으면 맛은 별로겠지. 그런 편견은 첫 한 입에 말끔히 씻겨 나간다. 밑반찬까지 맛깔나서 놀라움을 넘어 의아함이 들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서울 백반집 중 이 가격에 이렇게 맛있는 곳은 없다고 자부한다. 당연히 웨이팅이 있다. 하지만 맛과 가격에 비하면 짧은 줄이다. 회전율도 빠른 편이어서 30분 이내에 입장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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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바람, 로스쿨과 벤처타운
2008년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고 2017년 사법시험이 완전히 폐지되면서 신림동 고시촌은 급격히 변했다. 고시생들이 떠난 빈자리를 국가고시 준비생, 취업준비생, 외국인 유학생, 직장인, 1인 가구가 채웠다. 지금 신림동은 전국에서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동네 중 하나다. 2022년 5월 신림선 경전철이 개통되면서 또 한 번의 변화가 왔다. 서울대벤처타운역에서 여의도까지 16분이면 갈 수 있다. 강남 직장인들도 저렴한 집세를 찾아 신림동으로 모여들었다. 고시촌이 아니라 ‘생활촌’이 된 것이다. 이젠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섞여 산다.
서울대 정문 앞 대학동은 ‘S-벨리 벤처타운’으로 지정됐다. 고시생 출신 사장님이 로스팅하는 카페, 고시원을 개조한 작가 창작공간, 청년 창업가들의 작은 사무실이 곳곳에 생겼다. 과거엔 고시 합격이 꿈이었다면 지금은 스타트업 성공이 꿈이다. 신림동은 여전히 청춘들의 도전과 꿈이 영그는 곳이다.
관악산 자락, 자연과 도시의 경계
신림동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뒤에 관악산이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정문에서 10분만 걸어 올라가면 관악산 등산로가 시작된다. 관악산은 서울의 명산 중 하나로, 정상인 연주대까지 오르면 서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말이면 등산복 차림의 시민들이 줄지어 산을 오른다. 신림동에 살면 퇴근 후 가볍게 산책하듯 등산할 수 있다. 관악산 자락을 따라 난 산책로도 아름답다. 봄엔 벚꽃이, 가을엔 단풍이 터진다. 도시 한복판에 이런 자연이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대학로의 창경궁·낙산공원처럼 신림동에도 관악산이라는 휴식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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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신림동은
30년 전 서울대는 크기만 했지 단조롭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단풍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찾아간 서울대 캠퍼스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캠퍼스 안쪽까지 버스가 다니니 굳이 다리 아프게 걸을 필요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장소든 나름의 멋을 갖게 된다. 서울대나 신림동은 성실하고, 공부 잘하며, 야망있는 젊음의 집결지다. 살아보니 한국에서 1등이면 세계에서도 1등임을 알게 됐다. 즉 신림동은 세계 최고의 인재 집합소란 얘기다. 인공지능(AI)이나 양자 컴퓨터를 공부하며 미래를 획기적으로 바꿔줄 천재들이 신림동에서 쥐죽은 듯 연구하고 있다.
30년 전엔 서울대가 이렇게까지 아름다워질 거라 예상치 못했다. 다시 올 30년 후엔 어떤 모습일까? 드론 택시가 날아다니고 로봇이 학생들 사이로 택배를 나르거나 장애인을 부축하며 걸어가는 풍경이 그려진다. 그래도 ‘정원쌈밥보리밥’의 제육볶음과 보쌈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 믿는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이 사이좋게 신림동을 흐른다. 사람은 수명을 다하면 사라지지만 골목은 같은 공간을 지킨다. 신림동은 평범한 듯 비범한 매력이 있다. 짧은 여행으로 묵직한 감동도 챙길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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