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이 자주 찾는 식당은 다 맛있다”는 말이 있다. 값비싸고 맛있는 식당은 바보도 찾을 줄 안다. 가격이 낮은데 음식 맛이 탁월한 식당을 찾을 줄 안다면 그는 상수다. 화가들은 대부분 경제는 궁핍한데 혀가 민감하다. 그 덕에 가성비가 높은 식당을 귀신같이 잘 찾아낸다. 화가들이 모이는 서울 인사동에 좋은 식당이 몰려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화가들은 시간이 자유롭다. 예컨대 직장인들처럼 낮 12시 점심시간이 돼야 한다는 압박감 따위는 아예 없다. 화가들에게 점심시간은 오후 1시가 될 수도, 2시가 될 수도 있다. 시간이 자유로우니 음식점의 선택 폭도 넓다. 맛집을 찾아 멀리까지 갈 수도 있다. 식사시간도 길게 끌 수 있다.
서유럽인에 비하면 한국인의 식사시간은 매우 짧다. 바삐 서두르는 이에게 좋은 반찬이 하나 더 더해질 리 없다. 천천히 음식을 음미할 시간도 부족하다. 음식을 즐기는 데 시간이 여유롭다는 건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이다. 천천히 요리를 하나하나 관찰하고 음미하면서 음식 정보를 축적해 간다. 그 정보들은 다음 선택을 위한 유용한 식당·식사자료가 된다.
식당 입장에선 귀찮은 손님이지만, 음식점 역시 이런 손님을 만나야 실력이 향상된다. 화가들은 해외 경험이 비교적 많다. 유학 경험도, 해외 전시도 많다. 해외의 맛있는 음식들을 접하면서 다양한 감수성의 미각을 단련하며 얻은 정보를 동료 화가들끼리 나눈다.
화가들은 미식의 첫 번째 조건인 예민한 혀를 가졌다. 몸이 예민하지 못한 화가는 좋은 화가가 될 수 없다. 일반인이 미처 느끼지 못하는 감각까지 온몸으로 잘 받아들일 줄 알아야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있다. 혀도 몸의 일부다. 훌륭한 화가는 눈과 손만 발달한 게 아니라 혀도 발달했다.
화가는 물질을 적극적으로 다룬다. 문학이나 음악, 무용 종사자들은 물질을 직접 다루지 않는다. 화가는 종이, 캔버스와 물감을, 조각가는 돌·나무 등을 매일 다룬다. 화가들은 다양한 재료를 다루면서 물성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익힌다.
음식도 재료부터 출발한다. 훌륭한 요리사와 마찬가지로 뛰어난 화가는 훌륭한 재료 감각을 갖고 있다. 좋은 재료들의 완벽한 조합이 훌륭한 음식을 완성시키듯 좋은 물감과 물감의 뛰어난 조합·운용이 좋은 그림을 만든다. 물질을 다루는 원리는 요리사나 화가나 똑같다.
과거 우리나라에는 미식가가 설 자리가 없었다. 음식을 앞에 두고 맛에 까탈을 부리는 걸 천하다고 여겼다. 경제가 발달하니 우리 사회에서도 미식과 관련한 평가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의식주 중에서 가장 종합적인 경지가 ‘식’이다. 집이야 돈만 생기면 당대에도 몇 번씩이나 더 좋은 집으로 갈아탈 수 있다. 옷의 경우 부모가 잘 입어야 그걸 보고 자란 자식이 옷을 잘 입게 된다. 당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고 2대에 걸쳐 노력해야 획득되는 게 옷의 감각이다.
미식은 어떠한가? 미각은 어릴 때부터 훈련받아야 한다. 요리를 잘하는 할머니 밑에서 자란 손자는 나중에 훌륭한 미식가가 될 확률이 높다. 미식은 3대에 걸친 문화적 노력이 온축해야 겨우 다다를 수 있는 높은 경지다. 요즘 미식에 관한 방송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어떤 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화려하다.
화가들의 미식 감각이 경제적 궁핍과 넉넉한 시간에서 출발한 걸 기억했으면 한다. 소박한 음식을 앞에 두고 고양된 정신을 극진하게 일궈 나가는 게 화가들의 미식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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