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군사명저를 찾아서
데이비드 브르노, 노라 벤사헬. 2020. 『전시 상황에서의 적응: 군대는 전시에 어떻게 달라지는가』
David Barno & Nora Bensahel. 2020. 『Adaptation under Fire: How Militaries Change in Wartime』. Oxford University Press. pp. 440.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전쟁 양상
예상·실전 간극 메우는 속도 강조
미래전 핵심 ‘빠른 적응 능력’ 주장
현장 피드백 반영 역동적 교리 체계
신속한 기술 획득·혁신적 리더십…
적응적 군대 위한 개혁 방향 제시
전쟁은 언제나 예측을 배반해 왔다. 냉전 이후 미국 국방부와 합참은 전쟁 양상을 예측하고 계획하는 데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프가니스탄전·이라크전·이슬람국가(IS)의 부상·크림반도 점령 등은 모두 예측 밖에서 발생했다. 문제의 핵심은 ‘정확한 예측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미래는 불확실성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회색지대에서의 경쟁, 비정규전과 하이브리드전, 사이버·우주 영역으로의 확대, 인공지능(AI)·자율무기·정밀유도체계의 결합은 전쟁을 더욱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미래전 양상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빨리 적응하느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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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대응하는 속도
전쟁은 결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개전 초반부터 새로운 무기, 전술적 혼란, 지도부의 오판 등 ‘충격 변수’가 발생하며, 전쟁의 실체는 기존 교리나 가정과 다르게 전개된다. 마이클 하워드는 “군대는 어떤 교리를 갖고 있든, 결국 중요한 것은 그 교리를 얼마나 빨리 수정할 수 있는가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전쟁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가 사전 계획 자체가 아니라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라는 것이다. 미래전에서 승리하는 군대는 더 많은 병력과 화력을 가진 군대가 아니라 더 빨리 배우고 더 신속하게 바뀌는 군대다.
오랜 군 경험을 갖고 있는 저자들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사례로, 미군이 어떻게 교리·기술·리더십 측면에서 적응에 실패했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한다. 저자들은 이를 ‘적응 격차(adaptation gap)’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군이 예상했던 전쟁과 실제로 벌어진 전쟁 사이의 간극을 가리킨다. 과거에도 이 간극은 늘 존재했지만 오늘날 회색지대 분쟁, 비국가 무장세력의 진화, 정보공간을 둘러싼 내러티브 경쟁, 급속한 기술혁신이 결합되면서 그 폭과 깊이가 비약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저자들은 이 격차를 메우는 속도가 곧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변수라고 주장한다. 특히 전쟁 초기 30일 동안의 적응 능력이 전체 전쟁의 향방을 좌우할 것이라는 지적은 매우 설득력 있는 문제 제기다.
저자들은 이라크·아프간 전역에서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적응의 성공과 실패가 어떻게 드러났는지를 보여준다. 이라크 라마디에서 숀 맥팔랜드 대령은 기존의 대형 기지 방어 방식을 버리고 도시 내부에 소규모 전초기지를 분산 배치했다. 동시에 수니 부족장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면서 주민 속으로 파고들었다. 매우 위험한 시도였지만 이 비정형적 접근은 결국 알카에다에 맞선 ‘안바르 각성(Anbar Awakening)’으로 이어지며 전세를 반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 투입된 마크 누츠치 대위는 북부연합군과 함께 말을 타고 전선을 누비며 탈레반 진지의 좌표를 알렸다. 교과서에는 없는 방식이었지만, 탈레반에 대한 초기 승리를 가능하게 한 결정적 선택이었다. 이 사례들은 전술 수준의 리더십이 얼마나 강력한 적응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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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구급 지휘관의 실패
반면 많은 전구급 지휘관의 적응 실패는 전략적 문제를 야기했다. 이라크에서 케이시 장군은 반란 세력의 성장, 종파 갈등의 폭발, 치안 붕괴라는 명백한 신호에도 불구하고 초기 전략에 집착했다. 그는 상황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기존 접근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으로 대응했고, 그 결과 전쟁을 거의 패배 직전까지 몰고 갔다. 아프가니스탄의 맥키어넌 장군 역시 복합화되는 전쟁 양상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이라크의 경험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려 하다가 실패했다. 이러한 대비는 전술 단위의 창의적 적응만으로는 전쟁 자체의 흐름을 바꿀 수 없으며 전구급 지휘관이 전쟁 궤도를 재설계하지 못하면 전체가 파국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사례 분석을 바탕으로 저자들은 미래전의 도전 과제를 제시한다. 미래전은 전쟁의 영역(지상·해양·공중·우주·사이버)과 전쟁의 수단(물리력·정보·경제·여론)이 동시에 교차하는 다영역 경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과 같이 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에는 다음 전쟁의 상대도, 시기와 장소도, 성격도 예측하기 어렵다. 이런 환경에서 ‘과거 경험에 맞춰 설계된 군대’는 구조적으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 문제의식은 곧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오늘의 미군은 얼마나 적응적인가(adaptive)? 그리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가?”
저자들의 평가는 냉정하다. 미군은 전술 수준에서는 상당히 적응적이었지만, 정작 교리·획득·인사·교육을 담당하는 상위 체계는 20년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놀랄 만큼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교리 시스템은 위원회와 문서 중심의 절차에 갇혀 있어 이라크·아프간에서 필요했던 반분란전 교범은 정식 절차를 우회해서야 겨우 발간될 수 있었다. 기술·획득 부문에서는 현장의 절박한 요구보다 예산·규정·시험 절차가 앞섰고, 리더십 역시 불확실성 속에서 과감하게 개혁하는 지휘관보다는 기존 규범을 잘 관리하는 모범생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적응적 군대를 위한 혁신 방향
저자들은 이러한 진단을 바탕으로 미래 적응적 군대를 위해 필요한 개혁 방향을 제시한다. 크게 △역동적 교리 체계 △신속한 기술 획득 △혁신적 리더십 등 세 가지다. 교리는 ‘한 번 만들면 오랫동안 유지되는 규정집’이 아니라 현장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반영하는 역동적 운영체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쟁 중에는 단기간에 작성·적용 가능한 ‘임시 교리’가 제도적으로 허용돼야 하며, 각 전구에서 형성된 성공 사례가 교리로 승격되는 경로가 명확해야 한다.
기술·획득 부문에서는 소규모 실험, 신속 배치, 현장 피드백, 재설계와 표준화로 이어지는 짧은 순환고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전시 기준에 맞춘 간소화된 절차와 민간기술, 상용 솔루션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개방성이 요구된다. 특히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장교의 선발·교육·평가는 창의성, 판단력, 위험 감수를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적응적 리더’는 우연히 등장하는 영웅이 아니라 그러한 행동을 장려하고 보상하는 제도가 만들어내는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혁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작게 시작해 빠르게 확산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거대한 청사진을 한 번에 구현하려 하기보다 소규모 실험 조직에서 새로운 교리·장비·지휘 방식을 시도하고, 성공 사례를 신속하게 전군 차원의 표준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분권적 실험과 상향식 혁신이 결합될 때 군 조직은 비로소 ‘준비된 적응’이라는 능력을 얻게 된다. 저자들은 이를 단순한 효율성 문제가 아니라 강대국 간 경쟁과 회색지대 갈등이 증폭되는 시대에 국가 생존을 좌우할 전략적 조건으로 본다.
이 책은 미군을 대상으로 한 연구지만 우리 군에 더 절실한 내용이 아닌가 한다. 우리의 교리체계, 기술 획득, 리더십 양성 모두 결코 미군에 비해 더 낫다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래전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우리 군은 과거의 전쟁 방식에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닌지 “어떻게 더 빨리 배우고, 더 빨리 바꾸는 조직을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보다 “어떤 무기를 더 살 것인가”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미래전에 대비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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