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사람에게 미소 짓는 일
먼저 인사를 건네는 일
작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일
그것이 바로 수행이다”
찬 바람이 불어오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고,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에 다가섰음을 실감하게 된다.
달력을 한 장 남겨 둔 지금, 우리는 모두 알게 모르게 ‘마음의 빚’을 안고 살아간다. 미뤄 둔 인사, 전하지 못한 감사 혹은 사소한 오해로 쌓인 거리감, 그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마음을 은근히 무겁게 만든다.
불교에서는 ‘인연(因緣)’을 소중히 여긴다. 인연은 우연이 아니라 과거의 원인(因)과 현재의 조건(緣)이 만나 이뤄진 결과다. 지금 내 곁의 동료와 상관, 친구와 가족까지 모두 과거의 인연이 맺어 준 결과물이다. 그 인연 속에서 생긴 감정의 빚은 말 한마디, 손짓 하나로 가볍게 갚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자존심 때문에 그 작은 실천을 미루곤 한다. 그러다 어느새 마음은 좁아지고 관계는 멀어진다.
11월은 그런 마음의 빚을 정리하기에 더없이 좋은 달이다. 밤이 길어지고 공기가 차가워질수록 사람의 마음은 자연스레 안으로 향한다. 고요한 병영의 불빛 아래서 자신에게 조용히 물어보자.
‘올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고마움을 전해야 할 사람이 있었는데, 잊고 지낸 건 아닐까?’
그 질문의 답은 대부분 이미 우리 마음속에 있다. 생각난다면 지금이라도 짧은 메모 한 줄, 따뜻한 말 한마디로 마음의 문을 열어 보자.
“그때 고마웠어.” “미리 사과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그 한마디가 상대의 마음을 녹이고, 나의 마음을 자유롭게 만든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음에 남은 빚을 지우면 그대는 비로소 자유로워지리라.”
군 생활은 좁은 공간에서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과정이다. 같은 생활관, 같은 사무실, 같은 식당, 같은 일정 속에서 서로의 작은 습관이 신경 쓰이고 말 한마디가 오해로 번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이 지나고 나면 함께한 시간이 결국 가장 그리운 인연으로 남는다. 그 인연이 아름답게 기억되기 위해선 미리 마음의 빚을 정리해야 한다. 11월의 찬 바람은 우리에게 묻는다.
“그대의 마음은 따뜻한가?”
그 물음 앞에서 우리는 잠시 멈춰 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불교의 수행은 결코 먼 산에 있지 않다. 지금 내 옆의 사람을 향해 미소 짓는 일, 먼저 인사를 건네는 일, 작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일. 그것이 바로 수행이다.
이제 한 해도 한 달 남짓 남았다. 어쩌면 무엇을 더 쌓느냐보다 무엇을 내려놓느냐가 더 중요한 때다. 감정의 짐을 내려놓고, 마음의 빚을 지운다면 새로운 해는 훨씬 가벼운 발걸음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밤 잠들기 전 짧게라도 되뇌어 보자.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이었는가?”
그 마음이 곧 수행이고, 그 실천이 바로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그 길 위에서 우리 모두의 한 해가 고요한 빛으로 마무리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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