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과 AI, 전장의 공식이 바뀐다
지능형 배회 탄약이 실현하는 정밀 타격의 새로운 패러다임
러 드론 샤헤드-136, 우크라 연일 맹공
입력된 경로 비행하다 좌표 따라 자폭
미 스위치블레이드 ‘지능형’ 개념 구현
이스라엘 히어로, 다중 타격·회수 용이
고속·장거리용은 크루즈 미사일 대체
네트워크 중심전의 핵심 자산 급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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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우크라이나 도시 하늘에 윙윙거리는 소리가 번졌다. 오토바이 소리를 닮은 이 저음은 곧 샤헤드(Shahed)-136 자폭 드론의 등장 신호다. 매일 수백 기의 드론을 퍼붓고 있는 러시아는 지난 9월 6일 단 하루 동안에만 무려 810기의 드론과 미사일을 동시 투하했다. 폭발음에 시민들은 잠에서 깨어났고, 방공부대는 고가의 탄·미사일을 소모하며 끝없는 소모전에 시달렸다. 전장은 이제 정밀 유도탄 한 발이 아니라 드론의 소나기가 지배하는 시대다.
샤헤드-136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역의 에너지 기반시설과 방공망을 압박하기 위해 상시 운용하는 대표적 배회형 탄약이다. 수백㎞ 밖에서 사전 입력된 경로를 따라 비행하며 목표 상공에서 잠시 머문 뒤 좌표나 충돌 감지에 따라 자폭한다. 구조는 단순하지만 대량 투입이 가능하고 비용이 낮아 전략적 효과는 크다. 특히 러시아는 드론 한 기의 가격이 수만 달러에 불과하다는 점을 이용해 수십만 달러가 넘는 요격 미사일을 강제로 소비시키며 경제적 비대칭전을 구사한다. 명중률보다 중요한 것은 매일 밤 반복되는 공격으로 민간인 심리를 압박하고, 방공망을 지치게 하는 효과다.
사실 배회형 탄약의 역사는 오래됐다. 1990년대 이스라엘의 하피는 적 레이다가 전파를 발사할 때까지 상공에서 대기하다가 신호를 감지하는 즉시 돌진해 자폭했다. 이미 30여 년 전 ‘표적 대기-타격’ 개념이 구현된 것이다. 이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배회형 탄약이 실전에서 대규모로 활용되면서 세계적으로 개발 경쟁이 본격화했다.
배회형 탄약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 좌표 입력만으로 비행해 목표 지점에서 자폭하는 프로그래밍형이다. 샤헤드-136이나 중국 CH-901 일부 모델이 이에 속한다. 둘째, 실시간 영상 송신으로 조종자가 직접 표적을 조작하는 조종형이다. 이스라엘의 하피(Harpy)와 히어로(Hero)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셋째, 인공지능(AI)이 영상을 인식해 인간의 개입 없이 목표를 식별하고 자율 돌입까지 수행하는 지능형이다.
지능형 배회 탄약은 소형 전자광학/적외선(EO/IR) 센서, AI 영상 인식 모듈, 소형화 탄두, 전자통신 장비, 고효율 배터리로 구성된다. 일부 모델은 회수 장치까지 갖추고 있어 재사용성도 고려한다. AI는 실시간 상황을 분석해 표적을 인식하고 인간의 지시 없이도 돌입할 수 있다. 이는 작전 유연성과 생존성을 크게 높이지만 동시에 자율살상무기에 대한 국제적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무인체계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생사를 결정하는 문제는 윤리적·법적 논의와 직결된다.
스위치블레이드 600, 히어로-120 일부 모델이 여기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1인칭 시점(FPV) 드론이 전술적 배회형 탄약으로 간주돼 보병 전투에서 즉흥적 자폭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미국의 스위치블레이드 시리즈는 ‘지능형 배회 탄약(Intelligent Loitering Munition)’ 개념을 구현한 사례다. 스위치블레이드 300은 보병 휴대용으로 경량화돼 있으며, 스위치블레이드 600은 장갑차와 고정 목표를 정밀 타격할 수 있다.
두 모델 모두 초기에는 프로그래밍된 경로를 따르지만 이후 조종자의 실시간 조작이나 AI 영상 분석을 통해 표적을 식별, 돌입한다. 특히 스위치블레이드 600은 임무 중 표적이 없으면 회수도 가능해 단순 소모가 아닌 유연한 운용이 가능하다. 지능형 배회 탄약은 조종자 개입 정도와 AI 활용 범위에 따라 기술 수준이 크게 달라진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2016년부터 ‘S 드론’ 시리즈를 개발해왔다. S-2는 EO/IR 센서를 탑재해 150㎞ 떨어진 고정 및 이동 표적을 정밀 타격할 수 있으며, S-4는 경량 캐니스터형으로 도심 침투와 특수 임무에 적합하다. S-9은 AI 기반 군집 비행 기술을 적용했고, S-10 파이어 이글은 장시간 체공과 표적 인식 능력을 결합해 헬기에서 발사돼 후방 포병 화력 유도까지 지원한다. 우리 군은 이러한 체계를 통해 단순 자폭형을 넘어 지능형 배회 탄약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스라엘은 히어로(Hero) 시리즈를 통해 배회형 탄약의 진화를 선도하고 있다. 히어로-30부터 히어로-900까지 다양한 크기와 용도를 제공하며, EO/IR 복합 센서와 AI 기반 타격 알고리즘으로 고정 및 이동 표적을 정밀하게 식별·돌입한다. 일부 모델은 회수 가능성과 다중 타격 기능까지 제공한다. 히어로 시리즈는 이미 중동과 유럽의 분쟁 현장에서 대전차, 방공망 제압, 고가치 표적 제거 임무에 활발히 쓰이고 있다. 중국 역시 CH-901과 WS-43을 중심으로 개발을 진행 중이며, 일부는 AI 기반 영상 분석 기능을 탑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전 운용 성능은 불확실하다.
배회형 탄약은 이제 단일 기술이 아니라 임무와 환경에 따라 세분화된 체계로 진화하고 있다. 고정 좌표 타격에 적합한 프로그래밍형, 고가치 표적 정밀 타격에 적합한 지능형, 단기 전술 임무에 적합한 FPV형까지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 작전 반경, 비행 시간, 탄두 중량, 회수 여부는 전장 상황에 맞게 선택된다. 특히 고속·장거리 지능형 배회 탄약은 크루즈미사일과 유사한 궤적을 그리며 경우에 따라 전술적 임무에서 이를 대체할 수도 있다. 다만 크루즈미사일이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전략 자산이라면, 지능형 배회 탄약은 수만 달러 수준에서 대량 투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파괴력은 제한적일 수 있으나 장시간 체공과 자율 탐색 능력 덕분에 전술적 유연성은 오히려 크루즈미사일을 넘어서는 측면도 있다.
지능형 배회 탄약의 혁신은 기존 미사일이나 드론이 분리 수행하던 ‘탐색?정밀 돌입?자폭 타격’을 단일 플랫폼에서 수행한다는 점이다. 전방위 감시체계와 연계하면 ‘본 대로 바로 타격하는’ 네트워크 중심전의 핵심 자산이 된다. 이는 지휘통제 체계와 실시간 융합돼 공격과 방어의 시간 간격을 최소화한다.
앞으로 지능형 배회 탄약은 자율성, 협업성, 생존성, 회수성 같은 성능을 한층 끌어올릴 것이다. 동시에 윤리적 통제, 국제 규범 수립, 작전 개념 정립도 필요하다. 그러나 본질은 분명하다. 지능형 배회 탄약은 단순한 신무기가 아니라 미래 전쟁의 판도를 뒤흔드는 전력이다.
병력의 숫자나 장비의 크기로만 승부하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드론은 이미 전투 개념을 바꾸며 실전에서 위력을 입증해가고 있다. 앞으로의 전장은 누가 더 빨리 학습하고, 더 저렴하게 효율적인 체계를 운용하느냐에 따라 우열이 갈릴 것이다. 지능형 배회 탄약은 그 변화의 최전선에서 미래 전쟁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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