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은 불과 함께 시작됐다. 불은 단순히 추위를 막는 도구가 아니라 자연을 바꾸는 힘이었다. 불로 흙을 굽고, 광석을 녹이며, 인간은 자연의 질서를 ‘재료’로 다시 구성하기 시작했다. 고대 서아시아에서 구리와 주석을 합쳐 만든 청동은 인류가 고온을 통해 창조한 첫 번째 인공 금속이었다. 주석의 부족은 곧 철의 시대를 불러왔다. 더 높은 온도를 견디는 기술, 더 강한 재료를 다루는 능력이 제국의 흥망을 결정했다. 검과 쟁기의 질이 힘의 척도였다.
동양에서도 또 다른 ‘온도의 경쟁’이 이어졌다. 조선시대 서민은 옹기를 쓰고, 왕과 귀족은 1200도 이상의 불로 구워낸 백자와 청자를 사용했다. 같은 흙이라도 얼마나 뜨겁게, 얼마나 정교하게 다루느냐가 그릇의 품격을 나누었다. 한 점의 도기는 단순한 식기가 아니라 사회 수준과 과학의 깊이를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인류의 역사는 곧 ‘열’을 다루는 능력의 진화였다. 불을 지배한 문명이 세상을 지배했다.
그러나 20세기, 불의 문명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반도체의 등장이었다. 실리콘을 미세하게 깎고 불순물을 원자 단위로 조절하는 기술은 더 이상 단순한 열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밀도가 지배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여전히 ‘열’은 우리의 약점이다. 반도체 회로는 열에 취약하고, 이 미세한 열을 제어하는 것이 오늘날 정보화 사회의 또 다른 과제다. 그렇다면 다음 문명의 방향은 어디로 향할까?
인류는 이제 고온의 시대를 넘어 ‘상온’의 시대로 가고 있다. 상온 초전도체가 현실이 된다면 전기가 손실 없이 흐르고, 교통과 의료, 산업의 구조가 완전히 뒤바뀔 것이다. 또한 전자의 스핀과 양자 얽힘을 다루는 ‘양자 소재’는 정보 속도뿐만 아니라 본질을 바꾸는 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나아가 자연을 모방한 ‘자기 조립(Self-assembly)’ 기술은 분자들이 스스로 구조를 만드는, 생명과 닮은 물질세계를 열고 있다.
인류는 불을 다루던 문명에서 ‘온도를 초월한 문명’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진화해도 그 방향을 정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1905년 아인슈타인의 E=mc?은 그 한계를 보여주었다. 단 하나의 수식이 핵폭탄이라는 악마의 불꽃을 만들었고, 동시에 원자력 발전이라는 평화의 도구를 선물했다. 같은 원리에서 천사와 악마라는 이란성 쌍둥이가 탄생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신(神)의 기술’ 앞에 서 있다. 인공지능, 유전자 편집, 핵에너지는 모두 인류의 미래를 바꾸는 힘을 가졌다. 그러나 그 힘이 향하는 곳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문제는 기술의 속도가 인간의 판단보다 훨씬 빠르다는 점이다.
인공지능(AI)은 우리의 생각을 예측하고, 유전공학은 생명의 설계도를 바꾸며, 핵에너지는 여전히 위험과 희망의 경계 위에 서 있다. 이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다룰 수 있는가?’이다. 모든 가능성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기술의 진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다루는 인간의 태도다. 인간의 존엄과 공공의 이익, 그리고 스스로 절제할 용기야말로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기술은 언젠가 신의 영역에 닿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진보가 되려면 신의 힘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이 필요하다. 불의 문명에서 상온의 문명으로, 그리고 이제 윤리의 문명으로 나아가는 지금,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기술이 신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신의 양심이 될 준비가 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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