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하지 않을 용기

입력 2025. 11. 14   16:15
업데이트 2025. 11. 16   10:00
0 댓글

‘비겁(卑怯)하다’는 말은 단순히 겁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사전에선 ‘떳떳하지 못하고 용기가 없다’고 정의하지만, 본질은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데 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바로 그 ‘하지 않음’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우리는 수없이 목격해 왔다. 비겁함은 개인의 문제이자 사회를 무너뜨리는 조용한 균열이다. 

우리는 종종 ‘가해자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와 현실을 보면 진짜 문제는 방관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시민 다수는 유대인 학살에 관해 알면서도 침묵했다. 그들은 ‘직접 죽이지 않았으니 죄가 없다’고 여겼다. 학자들은 이를 ‘가담하지 않은 가담’이라고 부른다. 책임은 행동만이 아니라 고의적 침묵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 2022년 한국노동연구원의 직장 내 따돌림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상황을 본 동료들 중 63%가 “도와주고 싶었지만 위험해 못 했다”고 답했다. 가해자는 한두 명이었지만, 방관자는 조직 전체였다. 비겁함은 스스로만 지키는 선택이 아니라 누군가를 버리는 선택이다.

왜 사람들은 비겁해지는가?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이다. 사람은 원래 위험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두려움과 비겁은 다르다. 두려움은 감정이지만, 비겁은 두려움 뒤에 숨기로 선택한 태도다. 행동하지 않은 데는 늘 합리화가 따라붙는다. “괜히 나까지 피해 볼 필요 있나” “내가 나선다고 바뀌겠어?” 이런 문장들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언어 같지만, 사실은 양심을 회피하는 기제다.

비겁한 사람의 특징은 2가지가 있다. 첫째,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하다. 둘째, 눈앞의 불이익을 회피하는 대신 장기적 손실을 만든다는 점이다. 부당한 지시를 알면서도 따르는 관리자, 조직의 문제를 보면서도 침묵하는 직원 등 모두 비겁함의 일상적 형태다. 행동하지 않아 책임이 없을 것 같지만, 결과는 늘 돌아온다. 조직은 썩고, 관계는 멀어지고, 결국 자신도 그 피해자가 된다.

우리는 어떻게 비겁하지 않을 수 있을까? 거창한 영웅적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다. 비겁은 거대한 폭력 앞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불의를 눈감는 순간 시작된다. 누군가를 향한 조롱에 웃어 주지 않는 것, 책임을 회피하는 말에 “그건 옳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 잘못된 관행을 알면서도 “원래 다 그래”라고 넘기지 않는 것. 비겁의 반대는 영웅주의가 아니라 작은 용기의 반복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비겁을 ‘합리적 선택’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데 있다. 눈치, 생존, 조직문화, 온라인 익명성, 무기력함이 결합된 결과다. 그래서 더욱 묻는다. “나는 알고도 침묵한 적이 없었는가?”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내 안의 두려움을 이유로 등을 돌린 적이 없었는가?” 비겁은 타인의 상처를 만드는 동시에 나를 점점 약한 인간으로 만든다.

지금도 우리는 선택의 순간을 살고 있다. 비겁함은 한 번의 행동이 아니라 반복된 회피가 굳어져 만들어진 성격이고, 결국 삶의 방식이 된다. 반대로 용기 역시 거대한 결심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일상의 선택에서 자란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용감한 사람이 많은 사회가 아니라 비겁하지 않은 이가 많은 사회다. 그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과 신뢰, 미래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선택의 순간이 올 때 그 선택이 나를 어떤 인간으로 만드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비겁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순간, 인간은 더 단단해진다. 그리고 그 선택이 세상을 바꾼다.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