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는 [기록] 이다
현장에서 신문으로 디지털로 국방의 색을 찾다
모두의 하루가 모여 또 하나의 선이 된다
지난 61년간 국군 장병과 함께했던 국방일보의 기자들은 오늘도 변함없이 신문을 만들고 이를 온라인 콘텐츠로 재구성하며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국방일보의 취재·사진·편집·디지털 기자들이 털어놓는 잊을 수 없는 순간과 각오를 들어봤다. 정리=김해령 기자
‘타닥 타닥’ 키보드 소리 가득한 국방일보 사무실. 취재기자가 기사 한 줄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한숨을 내쉰다. 편집기자의 ‘한 줄’을 향한 고민은 더 크다. 제목을 붙잡고 씨름한다. 교열기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기사 한 글자씩 꼼꼼히 살핀다. 한겨울 훈련장, 셔터를 누르는 사진기자 손끝이 얼어붙는다. 회의실 문틈 사이론 디지털콘텐츠기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스며 나온다.
61년 역사는 잉크와 종이로만 만들어지지 않았다. 각 구성원의 땀과 노력으로 쓰여졌다. 먼 이국 모래바람 속, 혹한의 산길 위, 때로는 전장과 같은 사무실에서도 기자들의 눈은 언제나 장병을 향했다. 이번엔 장병이 아닌, 국방일보 우리 이야기를 전한다.
[희망] 절망의 땅 남수단에서 ‘신이 내린 선물’로 핀 한빛부대
오랜 내전 끝에 수단에서 분리·독립한 남수단의 국토는 사막처럼 황폐했다. 주민의 삶은 고단해 보였다. 난민보호소는 인파로 혼잡했다. 앙상한 뼈만 남은 아이를 안은 엄마의 눈엔 이슬이 고여 있었다.
2016년 11월 2일 새벽. 남수단재건지원단(한빛부대) 7진 1제대 140여 명과 함께 3일 동안 1만2000㎞를 쉼 없이 달려 남수단 종글레이주(州)에 있는 ‘유엔남수단임무단(UNMISS)’ 보르 주둔지에 안착해서 맞이한 모습이다.
이들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세계 각국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누구도 성공을 믿지 않았다. 아니,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대한민국 군(軍)은 불신을 신뢰로 바꿔 놓았다. 도로를 보수하고, 아픈 곳을 치료하고, 자립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쳤다. 활기가 없던 주민들은 한빛부대원들을 볼 때마다 환하게 웃음을 보였다. 어린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절망만 가득했던 검은대륙에 희망이라는 씨앗이 뿌려졌다. 그렇게, 이곳에서의 일주일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들로 가득 채워졌다.
[감동] 아덴만 평화 향해 달린 반년간의 항해 끝, 다시 만난 연인
그녀의 눈동자가 바다처럼 일렁였다. 그의 어깨는 파도처럼 들썩였다. 청해부대 24진 대조영함, 300여 명의 부대원이 아덴만의 평화를 위한 반년의 항해를 무사히 마쳤다. 돌아온 장병들의 제복엔 여전히 아덴만의 바람과 짠내음이 머물렀다. 요란한 환영 행사 뒤에야 서로를 알아본 남녀는 긴 부두의 시작과 끝만큼 떨어져 있었다. 수천 마일에 이르렀던 그리움은 머나먼 바다를 건너 등대에 다다른 반가움으로 다가섰다.
숨죽인 카메라도 그들의 만남을 기다렸다. 마침내 검게 그을린 바다 사나이가 그녀의 가슴에 닻을 내렸다. 군인은 다시 한 사람의 남편이 되고, 엄마는 다시 한 사람의 아내가 되었다. 청해의 푸른 파도가 그들의 품 안에서 잔잔히 멎어갔다.
사진 속 젊은 해군 장교와 가족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모른다. 다만 8년 전 그날의 추억이 남겨진 국방일보가 그들 삶의 바다에서 반짝이는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 적어도 나에게 그 순간은 무엇보다 행복한 250분의 1초였다.
[특권] ‘첫 번째 독자’의 감동 전달하기 위해, 오늘도 치열한 고민
나는 국방일보 기사와 사진을 만나는 첫 번째 독자다. 누구보다 먼저 감동할 수 있는 특권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깊은 고민이 시작된다. ‘내가 느낀 이 벅참을 어떻게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을까?’
지난 4월부터 거의 매주 작업한 ‘광복 80주년 다시 빛난 기억들’ 시리즈도 그랬다. 세계 곳곳 독립운동 거점과 독립운동기념관, 이제는 ‘핫플’로 변신한 사적지 탐방 기사를 읽으면서 그동안 몰랐던 역사를 배우며 부끄럽기도 했다.
수많은 순국선열의 이름 앞에 숙연해지기도 했다. 사진을 통해 본 그들이 지켜낸 오늘의 모습은 내가 늘 걷던 거리가 아닌 특별한 현장이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그의 저서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애국심은 아는 만큼 더 깊어진다. 오늘도 장병들에게 첫 독자의 감동을 잘 전달하기 위한 고민을 시작한다.
[숙명] 변수 많은 국방 안보도, 신문 편집도 어려움 감수해야
신문 편집은 마감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십수 년 이상 경력으로 아무리 손과 머리가 빨리 돌아가도 ‘데드라인’에는 장사가 없다. 간혹 어느 운수 좋은 날엔 아주 일찌감치 지면에 들어갈 기사가 모두 출고되기도 한다. 여유를 갖고, 충분히 좋은 제목과 레이아웃을 고민하면서 편집을 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지면을 완성하고 최종 인쇄를 보내려 마우스를 만지작거릴 때 편집기자의 징크스가 다리를 건다. ‘이상하리만치 순탄한 날은 꼭 막판에 사달이 나더라’하는 것은 편집기자라면 고개를 끄덕이는 경구(警句)다.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이 갑자기 일정에 없던 방문을 하거나 중대한 발표를 하고, 북한이 미사일을 쏘기도 한다. 장군이나 내각 인사가 나기도 하고, 이미 다 마무리해 놓은 기사와 사진에 ‘오프 더 레코드’ 사항이 뒤늦게 발견되기도 한다. 그럼 다시 원점이다.
게다가 이젠 시간과의 싸움이다. 국방과 관련된 그 어떤 것이 쉬운 게 있겠는가. 국방일보를 편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어렵고,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헌신] 가파른 산길 10시간 오르니 숨이 턱…장병의 노고 깨닫다
2022년 1월, 육군27보병사단 혹한기 전술훈련의 마지막인 30㎞ 야간 산악기동훈련에 동참했다. 훈련 초반, 옆에서 같이 걷던 장병의 “하늘 한번 보십시오”라는 말에 고개를 들었다. 신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별들이 하늘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군 복무 시절 이따금 불렀던 군가를 속으로 흥얼거리며 30㎏ 군장을 멘 피로를 잠시나마 잊던 중, 귀신같이 가파른 산길이 시작됐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아무 생각 없이 앞선 장병의 발만 보고 걷는 데 급급했다. 1시간 넘게 걷고 15분 쉬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금세 새벽. 앞서 걷던 장병이 멘 군장 커버에 서리가 내렸다. 휴식 시간에 앉아 있으면 차가워진 땀이 온몸을 감쌌다.
위병소에서 생활관까지 경사로가 마지막 난관이었다. 터질 듯한 허벅지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발걸음을 겨우 뗐다. 건물 앞에 도착하자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 풀썩 주저앉았다. 새벽 5시30분, 10시간에 걸친 여정에서 일선 장병들의 노고와 헌신을 몸소 느꼈다.
[현장] 안타까운 비극의 순간에도…나는 달려갔고, 셔터를 눌렀다
수많은 현장을 취재하러 다녔지만, 세 가지 비극은 잊을 수 없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피격사건’,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다.
천안함 인양 과정에서 장병의 안타까운 죽음이 바로 눈앞에서 벌어졌다. 연평도에서는 불타는 민가 내부를 찍고 나왔을 때, 신발 밑창이 잔불에 타버렸다. 천장이 뻥 뚫린 건물에서 추위와 긴장감에 잠이 오지 않던 기억도 생생하다.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에서는 우리 장병들이 묵묵히 지원하던 모습을 취재했다.
모두 국민을 든든하게 지키는 장병들과 군의 활약을 알리는 국방일보 기자였기에 경험했던 순간들이다.
[미래] 신문 넘어 디지털로…형태 다르지만 ‘국군 향한 마음’ 한뜻
매일 아침 오늘 기사들을 살핀다. 어떤 기사를 카드뉴스로 만들지, 어떤 내용을 섬네일에 담을지 고민한다. 국방일보는 종이신문을 넘어 유튜브, 인스타그램, 소식지 등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에서 새로운 독자를 만난다.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우리가 전하려는 건 결국 국방 현장에 있는 장병들의 하루다.
팀원들과 아이디어를 나누고, 열띤 토론 끝에 하루치 콘텐츠가 완성된다. 신문 기사를 장병들의 눈높이에 맞춰 재구성하고, 한눈에 들어오는 이미지로 다듬는다. 병영의 현실과 공감대를 담은 콘텐츠가 올라가면 장병들의 생생한 반응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의 댓글과 메시지는 또 다른 콘텐츠가 된다. 국방일보는 단순한 신문이 아니다. 장병에게는 가족처럼, 국민에게는 믿을 수 있는 친구처럼 진심을 담아 다가간다. 매일 그 한가운데에서 콘텐츠를 만든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갖는다.
[터전] 펜으로 지켜낸 61년 대한민국의 안보, 역사를 함께하다
지난해는 국방일보 창간 60주년이 되던 해다. 같은 해 국방일보 디지털콘텐츠팀 일원이 됐다. 입사한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창간 기념행사 준비라는 기회가 주어졌다. 군 계급도 익숙지 않았던 내게 그 일은 벅차면서도 설레는 일이었다.
1964년 첫 활자가 찍힌 지면부터 시작해 국군 장병들의 땀과 웃음이 담긴 수많은 기사와 사진을 살펴봤다. 오랜 세월 국방을 기록해 온 선배들의 흔적 하나하나를 마주하는 순간, 문득 깨달았다. 국방일보는 기록으로 대한민국을 지켜온 사람들의 터전이라는 것을.
그 찬란한 역사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작은 손끝 하나에도 마음을 다해 준비했다. 행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던 날, 팀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
61년이 된 올해,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날의 마음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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