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창간 61주년] 空...삼각지 인문학

입력 2025. 11. 13   16:33
업데이트 2025. 11. 13   17:01
0 댓글

국방일보는 [현장] 이다
낭만의 트라이앵글 

군인의 단골 노포부터 인스타 성지까지…헤어날 수 없는 매력의 요충지

대표 명소 전쟁기념관 참전국 관광객 필수코스
35년 지켜온 할아버지의 쌀가게는 닫았지만
옛 정취 여전히 남아 있는 유행의 첨단 거리
미국·스페인·대만…각국 골목 옮겨놓은 듯

 

철도와 도로가 갈라지는 곳, 삼각형으로 퍼진 모양을 본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혹자는 한강·서울역·이태원 세 방향으로 진출하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삼각지’는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정통으로 받아 낸 역사의 땅이다. 삼각지로 불리는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일대는 오래전부터 군사·외교적 가치가 큰 땅이었다. 그런 삼각지는 지금 전통과 혁신의 한복판에 서 있다. 용산구가 서울에서도 손꼽히게 ‘비싼 땅’이 된 데다 ‘경리단길’에서 시작된 유행의 최첨단이 삼각지 ‘용리단길’로 번져 오는 등 경제·문화적 변화가 크게 작용한 탓이다. ‘군인의 낭만’이 서려 있는 골목은 이제 힙한 감성이 가득한 ‘인스타 성지’로 거듭나고 있다. 근현대사의 흔적과 새로운 물결이 혼재한 삼각지를 걷다 보면 마치 조개껍질 속 진주를 발견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글=맹수열/사진=조용학 기자

 

삼각지역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사거리. 과거 ‘미니 군사도시’였던 삼각지는 이제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국민명소로 변모 중이다.
삼각지역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사거리. 과거 ‘미니 군사도시’였던 삼각지는 이제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국민명소로 변모 중이다.

 


전쟁기념관, 호국보훈의 전당에서 K관광의 중심지로


서울지하철 4·6호선이 관통하는 삼각지역에서 내려 12번 출구로 나오면 가장 먼저 반기는 곳이 전쟁기념관이다. 삼각지를 대표하는 명소인 전쟁기념관은 우리 역사의 최대 비극으로 꼽히는 6·25전쟁의 아픔을 기리기 위해 1994년 세워졌다. 원래 전쟁기념관 부지엔 육군본부가 있었는데, 육군본부가 충남 계룡대로 이전하면서 전쟁기념관이 대신 자리 잡게 됐다.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전쟁박물관이자 각종 보훈행사가 열리는 이곳은 삼각지가 핫플레이스로 부상하면서 더 많은 방문객이 찾는 장소가 됐다. 주말 내내 방문객으로 북적이는 전쟁기념관은 평일 낮 인근 직장인들이 계절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산책코스로도 각광받는다. 전쟁기념관 내 어린이박물관은 평일·주말을 가리지 않고 아이들로 가득하다. 최근 ‘K컬처’의 영향으로 외국인 관광객도 늘었다. 특히 참전국 관광객은 자신의 국가가 지켜 낸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을 보며 자긍심을 느낀다고 한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추모공간은 이제 미래 대한민국의 국격을 살펴볼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과거 대한민국 유일의 입체교차로인 삼각지로터리.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과거 대한민국 유일의 입체교차로인 삼각지로터리.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서울 속 작은 미국’ 용산기지의 흥망성쇠

전쟁기념관에서 녹사평역 방향으로는 주한미군 용산기지가 둘러싸고 있다. 용산기지는 부지 자체가 삼각지의 역사를 축약해 놓은 듯한 군사 유적지다. 조선시대 군의 병참기지였던 이곳은 구한말엔 일본과 청나라 등 외국 군대가 주둔했고, 1949년부터 6·25전쟁 발발 직후까지 약 1년간은 국방부가 있기도 했다. 6·25전쟁이 끝난 뒤로는 주한미군이 쭉 머물며 ‘금단의 구역’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이유로 용산기지 안에는 여전히 유적지 등 문화재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은 담벼락과 철조망에 가로막혀 직접 확인할 순 없지만, 부지 반환이 완료되면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된다.

과거 용산기지는 ‘서울 속의 작은 미국’으로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금처럼 풍요로운 시절이 오기 전 용산기지는 고급 시설과 자유로운 미국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기지 내 연줄이 닿는 사람을 통해 어렵사리 받은 기지 출입증은 온 동네의 자랑거리였다고 한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 용산기지 내 대부분의 시설은 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로 옮겨 갔고, 기지 내부는 점점 공동화가 진행 중이다. 위용을 뽐내던 미군식 단층 건물은 이제 완전히 노후화됐고, 담벼락 곳곳에 뻗은 덩굴은 무상한 세월을 한눈에 보여 준다. 미군들을 대상으로 한 미국식 부대찌개집, 바버숍 등이 있던 거리는 관광객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나 셀렉트숍으로 탈바꿈했다.

 

 

 

 



매력적인 노포가 가득 ‘서문 일대’


전쟁기념관에서 길을 건너면 대통령실과 국방부로 향하는 이른바 ‘서문’으로 갈 수 있다. 입구에서 발길을 바꿔 상업지역으로 향하면 오랜 시간 국방부 군인·공무원의 한 끼를 책임졌던 노포들을 만날 수 있다.

대를 이어 운영 중인 고등어구이 백반집,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십 년째 경쟁 중인 대구탕 골목, 허름한 외관과 달리 고가의 차돌박이를 파는 고깃집 등이 대표적이다. 국방부 서문 바로 앞에 위치한 한옥 차돌박이집은 합동참모본부(합참) 주요 인사들의 단골집으로도 유명했는데, 이젠 전역한 한 합참 고위 관계자는 “비상상황이 터지면 빠르게 복귀할 수 있어 자주 올 수밖에 없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서문 일대는 여전히 과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군인·공무원들에게 필요한 명패, 명함 등 잡화를 파는 가게들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는 고급스러운 향수 편집숍 옆 뿌연 유리창 사이로 보이는 ‘주임상사 김○○’이란 명패는 전통과 현재가 혼재하는 기묘한 광경을 연출한다. 하지만 이런 서문 일대도 점점 변화의 물결에 휘말리고 있다. 얼마 전 ‘35년간 삼각지를 지킨 할아버지의 쌀가게는 문을 닫습니다’란 안내문이 걸리면서 이곳의 터줏대감들이 감회에 젖었다고 한다.

 

 



요절한 가수와 가난한 화가들을 위해 

대구탕 골목에서 다시 한강로로 나가면 삼각지역 1·3번 출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는 ‘삼각지’란 지명을 전국적으로 널리 알린 비운의 가수 배호(1942~1971)를 기념하는 상징물이 있다. 삼각지역 사거리에는 배호의 명곡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가 있고, 삼각지역 안에는 ‘배호 만남의 광장’이 조성돼 벤치에 앉아 기타를 치는 배호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향년 29세로 요절한 천재 가수 배호를 그리는 이들은 여전히 삼각지 주변에서 기념사업회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다시 역 위로 올라오면 화랑거리가 펼쳐진다. 삼각지역 3번 출구부터 한강 방향으로 펼쳐진 화랑거리에는 지금도 화방, 표구점, 액자가게 등이 즐비하다. 1950년대 용산기지에 주둔한 미군을 따라 그들에게 초상화·풍경화를 그려 주던 가난한 화가들이 화랑거리의 문을 열었다. 무명 화가들이 저렴한 그림을 그린다고 ‘싸구려 그림’ ‘이발소 그림’ 등으로 무시당하기도 했지만, 상업미술의 가치가 재평가되면서 화랑거리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유행의 첨단’ 용리단길

화랑거리를 지나 한 블록 위로 올라가면 요즘 가장 핫하다는 ‘용리단길’이 나온다. 직장인들의 애환이 물씬 풍기는 서문 인근과 달리 용리단길은 마치 세계 각 골목을 섞어 놓은 듯한 문화의 용광로처럼 보인다. 미국, 스페인, 홍콩, 대만, 멕시코, 태국, 라오스 같은 세계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카페에서는 자신들만의 아이덴티티를 담은 특별한 음료를 선보인다. 신발부터 액세서리까지 다양한 물건을 볼 수 있는 편집숍과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세련된 음악은 용리단길이 MZ세대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이유를 방증한다.

건물도 제각각이다. 낡은 가옥의 뼈대를 남긴 채 내부만 트렌디하게 개조한다든지, 아예 새 건물을 세운다든지. 중요한 점은 1초라도 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 사실 용리단길은 여러 가게가 들어섰다가 사라지는 치열한 전쟁터이기도 하다.

삼각지를 걷다 보면 호국영령의 헌신을 기리고, 시간이 멈춘 듯한 골목을 지나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의 첨단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만나는 곳. 그곳이 바로 삼각지다.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든,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가든 방향은 상관없다. 걷는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삼각지를 느낄 수 있으니까.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