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창간 61주년] 時… 빛나는 시간들

입력 2025. 11. 13   17:21
업데이트 2025. 11. 1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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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일보는 [기록] 이다

지나온 발걸음 새로운 첫걸음


국방일보는 국군의 동반자이자 국방 역사의 기록자다. 총 대신 펜과 카메라를 들고, 군 역사의 증인으로서 전우의 땀과 눈물을 기록하며 61년의 세월을 함께했던 신문이 쌓이고 쌓여 이젠 세대를 잇는 기록의 강이 됐다. 196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에 국군과 함께했던 국방일보의 61년 발자취를 되짚는다. 조수연 기자/사진=국방일보DB


지령 17250호. 국방일보는 일만칠천이백오십 번의 신문을 발행했습니다. 61년의 세월 속엔 수많은 취재의 발자취, 국군장병들의 웃음과 땀, 그리고 함께 써내려온 국군의 역사가 쌓였습니다. 빛바랜 보도요원증 한 장엔 그 모든 순간의 흔적이 고요히 스며 있습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나라를 지키는 이들의 헌신을 소중히 기록하겠다는 마음은 한 번도 바랜 적 없습니다. 시대는 변해도 기록은 남기에,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펜과 카메라를 듭니다. 우리의 기록은 군의 역사이며,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약속입니다.


1960 / 장병들의 든든한 동반자 ‘전우’ 창간


전우 창간

1964년 11월 16일, 국방일보의 전신인 ‘전우’가 창간됐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戰友愛(전우애)’라는 친필 휘호를 보내며 창간을 축하할 만큼 사회 각계의 기대가 컸다. 창간 요원들은 서울신문사에 편집실을 마련하고 인쇄계약을 맺었다. 서울신문사 4층 강당에 칸막이를 하고 입주한 편집실은 이후 1977년 7월까지 13년간 셋방살이를 하게 된다. 두 면짜리 신문으로 출발한 ‘전우’는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내무반에 돌아오는 전우 여러분을 기다려 새 소식과 새 사실을 전해주는 본지 일간 ‘전우’의 모습을 기다려본다”는 창간사처럼 점차 장병들의 든든한 동반자로 자리 잡았다.


베트남 파견 

1966년 2월에는 베트남전 소식을 신속히 전하기 위해 처음으로 해외특파원을 파견했고, 먼 타국에서 전우가 생생히 전하는 뉴스는 어머니들의 마음을 적셨다. 1967년 1월 1일엔 제호를 ‘전우신문’으로 바꾸고 대판 4면으로 증면해 일간 군사전문지로 도약했다.

 

 


1970 / 야전 맞춤 판형 타블로이드로 변화


타블로이드 8면 발행

1974년 1월 1일, 전우신문은 일선 부대 장병들의 요청에 따라 판형을 타블로이드(대판의 절반 크기) 8면으로 확대하고, 같은 해부터 주말 특집을 신설했다. 국산 무기 개발과 자주국방의 기틀을 다지던 시절, 전우신문은 장병 곁에서 ‘국방의 오늘’을 전했다. 베트남전 종전 후엔 자주국방 역량 강화와 국산 무기 개발 관련 기사들을 비중 있게 다루며 국민의 관심에 부응했다.
 
전우신문 인쇄 자립
1977년 7월 27일 국방일보 자체 윤전기가 처음 돌던 날, ‘쿠릉’ 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가 움직였다. 이윽고 잉크 냄새가 가시지 않은 신문이 쏟아져 나왔다. 전우신문이 비로소 인쇄 자립을 이룬 순간이었다. 

 

 


1980 / 국가 이벤트 밀착 취재 ‘특별취재반’


국방일보 청사 독립

1980년 2월 6일 용산동2가 산2번지에 지상 3층·지하 2층 규모의 독립 청사를 준공했다.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며 ‘셋방살이’를 청산했고, 군 언론의 자부심도 한층 깊어졌다. 국방일보 기자들의 수첩과 카메라 렌즈는 여전히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성실히 담아냈다.
 
국가 이벤트 특별취재반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특별취재반을 운용해 매일프레스센터 내 전용 기자실에서 국가적인 행사를 밀착 취재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대판 8면 체제로 바꾸는 지면 혁신을 단행했다.




1990 / ‘국방일보’ 일반 시민 무료 배포


한글 제호·가로 쓰기 시행

1990년 3월 1일, ‘전우신문’이 ‘국방일보’로 제호를 바꾸며 새 시대를 열었다. 노태우 대통령이 ‘護國筆鋒(호국필봉)’ 친필 휘호를 전달하며 새출발을 축하했다. 1993년 일반 시민에게 무료 배포를 시작했고, 1997년 한글 제호와 가로쓰기 전면 도입으로 현대화를 완성했다.
 
국방일보 최초 북한 취재
1990년 10월 국방일보 기자가 최초로 북한 현지를 취재했다. 이상윤 기자는 창간 최초로 북한 땅에 발을 내디뎠다. 제2차 남·북 총리회담 우리 측 대표단과 함께 평양에 도착한 이 기자는 10월 16일부터 19일까지 한반도 평화·통일을 모색하기 위한 회담 진행 과정과 기자의 눈에 비친 북한의 모습을 취재했다. 이후 1991년 10월 22~25일 김응섭 기자, 1992년 2월 18~21일 최형익 기자, 같은 해 9월 15~18일 정순훈 기자 등도 북한을 방문, 취재했다.



2000 / 국민과 더 가까이…첫 지하철 가판 


국방홍보원 신설

‘국군홍보관리소’ 기관 명칭이 ‘국방홍보원’으로 바뀌었다. ‘국군’이란 표현은 국방홍보의 의미와 영역을 스스로 제한하는 표현이고, ‘관리’란 단어도 커뮤니케이션을 본질로 하는 홍보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 국방일보는 군 내부에 치중했던 홍보활동 대상을 일반 국민으로까지 확대했다. 장병과 국민 사이 가교 역할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이때다.
 
가판·홈페이지 ‘대국민 홍보’
2002년 국방일보는 첫 지하철 판매를 개시하고, 서울 전 지하철역과 지상 가판대 820여 곳으로 판매처를 확대했다. 서울 시내 주요 대학·여행장병안내소(TMO)·보훈병원·신체검사장·보충대·군 복지시설 등엔 무료 배포대를 설치·운영했다. 인터넷과 모바일·디지털로 확장된 세상 속에서도 군 장병들의 헌신을 조명해 국민에게 전한다는 진심은 변하지 않았다. 2004년 1월 1일에는 더욱 많은 국민과 만날 수 있도록 인터넷 국방일보를 구축해 온라인 시대를 열었다.



2010 / ‘내 손안의 국방일보’ 시대 개막


국방일보 앱 출시

전 세계인들의 일상에 혁명을 가져온 스마트폰의 등장에 발맞춰 국방일보는 2013년 뉴스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 공식 출시했다. 안드로이드폰과 아이폰 모두 사용 가능한 국방일보 앱은 지면을 볼 수 있는 PDF와 국방 관련 속보·기획·국내외 뉴스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국방사진연구소 출범
2019년 10월 10일 국방일보 국방사진연구소를 출범해 군 관련 사진의 전문성을 높였다. 국방일보 사진기자들이 국방 분야 사진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보도하기 위해 출범한 국방사진연구소는 장병들의 모습을 보다 섬세하고 품격 있게 담아내며 국방 현장의 생생한 순간과 군의 이미지를 예술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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