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사라질 수 있지만 기록은 지워지지 않는다

입력 2025. 11. 12   16:20
업데이트 2025. 11. 1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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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혁장 중령 해병대6여단
편혁장 중령 해병대6여단



사람의 기억은 세월이라는 바람을 만나면 쉽게 흩어진다. 그러나 남긴 기록은 시간을 건너 우리 앞에 다시 선다. 군 생활 동안 이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2010년 육군보병학교 고등군사반 교육을 받고 있던 당시 육군대위였던 김은비 선배가 자신의 학습노트를 건넸다. 빼곡하게 정리된 노트에는 단순한 교리와 전술뿐만 아니라 수많은 전술적 시행착오, 교리를 바라보는 성찰이 담겨 있었다. 마치 그 노트는 전술 이해를 돕는 길잡이 같았다. 그날 이후 매일의 배움과 생각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 그 습관은 군 생활을 지탱하는 가장 큰 자산이 됐다. 지금도 김은비 선배는 국방대 교수로서 후배 장교들에게 ‘기록의 힘’을 전하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민족의 저력도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 왕조들의 소소한 일상까지 기록했던 방대한 『조선왕조실록』(1392~1863·472년간의 역사·세계 최대 규모의 연대기 기록물)은 조상들의 삶과 지혜를 한 시대를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한다.

이러한 기록의 전통은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오늘날 K컬처 문화가 세계인의 호평을 받는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한다.

찰나의 영감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기록과 성찰이 있었기에 전 세계를 우리 문화에 빠지게 만든 성취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기억보다 기록을 믿는 민족이었다.

기록은 단순히 과거를 저장하는 행위가 아니다. 오늘을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실행의 출발점이다. 노트에 쓴 단어와 문장의 기록은 행동을 바꾸고, 작은 습관이 개인과 조직을 성장시킨다. 그래서 오늘도 펜을 든다. 기록은 좀 더 시행착오가 적은 군인으로, 성찰을 통해 더 단단한 인간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기억은 사라질 수 있지만, 기록은 지워지지 않는다. 남겨진 기록은 다시 우리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된다. 기록이 없는 조직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만, 기록을 남기는 조직은 더 나은 미래에 도달할 수 있다.

우리 군은 지금까지 수행해 온 다양한 과업과 경험을 체계적으로 기록했다. 이는 후배 장병들에게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줄이고, 조직 발전의 이정표가 돼 더 강하고 전문적인 군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장병 개개인의 기록이 모여 군의 역량이 되고, 조직의 유산이 될 때 우리 국군은 더 찬란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오늘도 그 길 위에 한 줄의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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