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80주년 다시 빛날 기억들] 햇살로 살아나리라, 자유의 거리 거침없이 내달리는…

입력 2025. 11. 11   17:07
업데이트 2025. 11. 1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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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80주년 다시 빛날 기억들
독립운동 핫플이 궁금해?! ⑨서울역·명동

“조국 땅에서 구김살 없이 달릴 수 있는 젊은이는 행복하다. 그들이 달리는 것을 누가 막겠는가.”
가슴의 일장기 참담해한 청년
조선총독 향해 폭탄 던진 노투사
전 재산 처분해 독립군 양성한 당대의 거부…
그들이 꿈꾼 길 일상의 발길과 세계인 발걸음 함께 걸어간다

서울역과 명동은 365일 내내 사람들로 붐비는 서울의 중심지다. 한쪽에는 코트를 차려입은 직장인, 다른 한쪽에는 캐리어를 끄는 관광객의 모습이 공존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매일 인산인해를 이루는 이곳에서도 선열들이 남긴 독립정신을 엿볼 수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가을날, 서울역에서 명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서울로7017를 따라 걸으며 ‘다시 빛날 기억들’의 의미를 반추했다. 글=이원준/사진=이경원 기자

서울 중구 손기정체육공원에 있는 손기정 동상. 1936년 베를린올림픽 시상식 모습을 재현한 기념물로 가슴에 일장기 대신 태극기가 달려 있다.
서울 중구 손기정체육공원에 있는 손기정 동상. 1936년 베를린올림픽 시상식 모습을 재현한 기념물로 가슴에 일장기 대신 태극기가 달려 있다.


손기정체육공원

“조국 땅에서 구김살 없이 달릴 수 있는 젊은이는 행복하다. 그들이 달리는 것을 누가 막겠는가.”

손기정기념관 입구에 적힌 글이다. 고(故) 손기정(1912~2002) 선생은 1945년 광복 직후 열린 해방경축 종합경기대회에서 광복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여정의 첫 순서로 서울로7017의 시작점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손기정체육공원’을 찾았다. 이곳은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생의 마라톤 정신을 기리는 장소다. 선생이 1936년 독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출신학교인 양정중·고등학교 자리에 1987년 조성됐고, 2020년 러닝을 중심으로 하는 다채로운 문화체육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새로 단장한 공원은 △손기정기념관 △러닝센터 △문화체육센터 △다목적운동장 △어린이도서관 등으로 이뤄져 있다. 산책로를 비롯해 테니스장, 게이트볼장, 체력단련장 등도 갖추고 있어 시민들의 힐링공간으로 사용된다.

공원 중심에 자리 잡은 손기정기념관은 지상 2층, 전체 면적 1600㎡ 규모다. 1층에는 2개의 상설전시실과 영상실이 들어섰다. 전시실에선 마라톤 우승 금메달과 상장, 월계관 등을 만나 볼 수 있다.

기념관 오른편에는 손기정 동상이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다. 가슴에는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달려야 했던 스물네 살 청년이 그토록 가리고 싶었던 일장기 대신 태극기가 달려 있다.

 

서울역광장에서 바라본 강우규 의사 동상과 옛 서울역사.
서울역광장에서 바라본 강우규 의사 동상과 옛 서울역사.


옛 서울역사와 강우규 의사

손기정체육공원을 나와 서울로7017을 따라 걷다 보면 발아래 철도를 비롯한 서울역 시설이 펼쳐진다. 서울로와 가까운 오래된 건물이 옛 서울역사다. 1922년부터 1925년까지 3년간의 공사를 거쳐 건립된 옛 서울역사(경성역)는 붉은 벽돌, 화강암 바닥, 인조석을 붙인 벽 등으로 이뤄진 유럽식 외관으로 당시에도 큰 화제를 모았다. 경성역은 1947년 서울역으로 이름을 바꿨고, 2004년에는 신역사가 완공되면서 역사로서 기능을 마쳤다. 현재는 시민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옛 서울역사 앞에서 만나 볼 수 있는 큼직한 동상의 주인공은 강우규 의사다. 강 의사는 1919년 9월 옛 서울역광장에서 새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다. 당시 그의 나이 64세였다. 이 의거로 일제 경찰을 비롯해 37명이 죽거나 다쳤다. 비록 총독의 목숨을 뺏지는 못했지만 환갑을 넘긴 노투사의 의거는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기에 충분했다.


세브란스빌딩과 서울로7017.
세브란스빌딩과 서울로7017.


세브란스빌딩

서울역광장 맞은편 세브란스빌딩 자리에는 과거 세브란스병원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이 1904년 서울역 건너편으로 이전하며 세브란스병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곳은 1919년 당시 3·1독립운동 거사를 위해 기독교 지도자들이 모여 논의하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세브란스병원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6·25전쟁을 거치며 우리나라 의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6·25전쟁 때 통·번역장교로 참전한 흥남철수작전의 주역 현봉학 박사의 동상도 만나 볼 수 있다.


서울중앙우체국 홍영식 동상.
서울중앙우체국 홍영식 동상.


서울중앙우체국과 홍영식

서울로를 벗어나 회현역을 걷다 보면 명동 방향에 거대한 서울중앙우체국 청사가 보인다. 청사 앞에는 ‘한국 근대우정의 아버지’ 홍영식 선생의 동상이 있다. 한국의 우정(郵政)은 1883년 홍 선생이 보빙사의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한 뒤 우편의 중요성을 고종에게 진언해 1884년 4월 22일 우정총국을 개설하고, 초대 우정총판으로 임명되면서 시작됐다. 같은 해 11월 18일에는 서울~인천 간 최초로 우편 업무를 개시해 새로운 근대식 우편시대를 열었다. 선생의 개화·개혁정신은 오늘날 세계 속 한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이 됐다.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사옥.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사옥.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사옥

을지로입구역 6번 출구 옆의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사옥은 1928년 준공된 국내 최초의 근대 오피스 건물이다. 당시에는 경성전기주식회사 사옥으로 사용됐다. 건물 외관은 르네상스 장식 요소가 일부 쓰였고, 내부는 구내 최초로 내화·내진설계가 접목됐다.


나석주 의거지.
나석주 의거지.


나석주 의거지(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사)

의열단원 나석주 의사는 조국의 강토와 경제를 착취하는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은행, 조선식산은행 등을 폭파할 계획을 세웠다. 1926년 12월 폭탄과 권총을 휴대하고 서울에 잠입한 나 의사는 먼저 조선식산은행(현 롯데백화점 본관 자리)에 들어가 폭탄을 던졌지만 불발이었다. 이후 동양척식주식회사로 들어가 한 차례 더 총격을 가하고, 일제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권총으로 자결했다.


이회영 6형제 집터.
이회영 6형제 집터.


이회영 6형제 집터

명동 한복판 명동11길은 ‘우당 이회영길’이란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곳은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이 6형제와 살았던 집터로, 현재는 이회영 생가터임을 알리는 표석이 있다. 당대 손꼽히는 거부였던 선생의 가문은 우리 역사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표 집안이다. 경술국치 이후 명동과 남대문 일대의 모든 재산을 처분한 선생 일가는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10년간 3500여 명의 독립군 지도자를 양성해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이재명 의사 의거 터(명동성당)

명동성당 입구 왼편에는 ‘이재명 의사 의거 터’라고 새겨진 표지석을 만날 수 있다. 설명은 이렇다. “이재명은 친일 매국노인 이완용을 척살하려 한 독립운동가다. 평북 선천 출생으로 1909년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을 마치고 나오는 이완용을 칼로 찔러 중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체포돼 이듬해 순국했다.” 1909년 12월 22일 스물세 살 청년이었던 이 의사는 군밤장수로 변장하고 있었다. 오전 11시쯤 이완용이 성당에서 나오자 그는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이 의사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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