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빛을 지키다

입력 2025. 11. 11   14:14
업데이트 2025. 11. 1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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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대위 육군50보병사단 화랑여단
이범희 대위 육군50보병사단 화랑여단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경호경비작전에 중대장으로 참여했던 경험은 한동안 잊히지 않을 기억을 남겼습니다. 세계 각국 정상들이 방문하는 국제행사를 안전하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생각보다 무거웠지만, 그 책임을 중대원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중대는 주요 도로 인근 목진지에서 경찰과 합동근무를 하며 지역경계 임무를 맡았습니다. 주간근무 중 각국 정상들의 차량 행렬이 유유히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신기함과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뉴스 화면에서만 보던 장면의 한가운데 우리가 서 있다는 사실이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비록 눈에 띄지 않는 자리였지만, 바로 그곳에서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작전 중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현장의 추위와 피로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특히 새벽 경계근무에 투입된 중대원들을 볼 때면 지휘관으로서 가슴 한쪽이 저릿했습니다. 그들은 얼어붙은 손을 비비고, 졸음을 쫓으며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격려하고자 늘 곁에 머물었지만, 오히려 제가 더 큰 힘을 얻곤 했습니다.

“중대장님, 저희는 괜찮습니다.” 그 짧은 한마디에 담긴 믿음과 의지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릅니다.

또한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같이 근무했던 경찰관들과도 서로 의지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함께하는 또 다른 동료라는 사실이 낯설지 않았고,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며 진정한 팀워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작전에서 배운 가장 값진 교훈 중 하나입니다.

APEC 경호경비작전은 군 복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계기였습니다. 비록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 정상회의 장소와 멀리 떨어진 어둡고 차가운 현장이었지만, 그곳에서 공동의 목표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의 뜨거운 모습을 봤습니다. 그 중심에 저와 중대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자랑스럽습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지휘관의 역할이 단지 명령을 내리는 게 아니라 부대원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살피고, 그들의 노력을 세상 앞에서 당당히 말해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작전을 맡더라도 그들과 함께한 그 새벽의 기억을 가슴 깊이 간직하며 책임감 있는 지휘관으로 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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