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를 건너고 하늘을 나는 새들
가도 가도 끝없는 순례길을 가고 있다.
길가에 피는 피어린 붉은 꽃송이
임을 찾아가는 말방울 소리에 함빡 웃더니,
바람에 흩날리는 눈송이를 맞이하곤
차갑고도 고된 눈물을 고즈넉이 흘린다.
소나무 끝에 걸린 그믐의 달빛 바라보며
풍경 소리 뜨락에 내리는, 새벽을 나서는 사람
차마고도 길을 홀로 가는 선승(禪僧)처럼
별빛을 바라보며 묵언기도하며 길을 걷는다.
<시 감상>
시인은 새들을 순례자로 상정(想定)하고, 새들의 비행을 순례길에 비유한다. 시적 주체는 이미 넓고 많은 시공간을 건너왔지만(“푸른 바다를 건너”), 여전히 멈춤 없이 가야만 한다. 그것이 순례자의 숙명이요, 순례란 “가도 가도 끝없이 이어진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체가 보여주는 순례 이야기는 감각적이면서 담담하고 속 깊다.
“길가에 피는 피어린 붉은 꽃송이”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차갑고도 고된 눈물”이 느껴진다. 이는 돋보이는 공감각(共感覺: 시각·청각·촉각)적인 시적 언술의 표현 때문만은 아닐 듯싶다. 그것과 어우러진 시적 대상의 생명과 존재 가치에 대한 주체의 맑은 성찰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울림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순례 이야기의 절정을 이루는 4연에 들어서면 주체와 대상의 경계는 여러 겹이면서 한 겹으로 밝아진다.
“소나무 끝에 걸린 그믐의 달빛 바라보며 /풍경 소리 뜨락에 내리는”이란 멋진 시구(詩句)에 깨어나 “새벽을 나서는 사람”은 누구일까? 새벽 일찍 길을 나선 순례 여행자로만 한정 지을 이유는 없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저마다 맡은 일(소명)을 위해 저마다의 새벽에 일어나 길을 나서지 않는가? 이 또한 순례의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은 “묵언기도하며 길을 걷는” 선승(禪僧)의 걸음을 연상케 한다.
어쩌면 우리 일상의 삶의 여정이 소중한 순례길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시가 현실과 유리된 공허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생활 속 문제, 인간의 실질적 고통과 기쁨을 담아야 한다”고 늘 말하는 정근옥 시인이, ‘순례길’ 성찰을 통해 보여주는 진정한 전언(傳言)은 아닐는지.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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