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경주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각국 정상이 한반도 남쪽의 고도(古道)에서 함께한 이번 회의는 경제 협력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회의는 11월 1일 끝났지만 공군의 APEC 지원은 그다음 날인 11월 2일에야 종료됐다. 각국 정상이 탄 항공기가 모두 대한민국에서 안전하게 이륙해야 비로소 임무가 완결되기 때문이다. 공항은 APEC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대한민국의 땅을 처음 밟는 곳이며,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이다.
이번 행사에서 공군5공중기동비행단(5비)과 김해국제공항은 관문공항으로 지정돼 대부분 정상을 맞이했다. 반면 공군11전투비행단(11전비)과 대구국제공항은 예비공항이었다. 나는 대구공항의 APEC 지원 총괄로서 대통령경호처와 외교부가 주관하는 각종 회의에 참석했고, 틈날 때마다 김해공항 준비 상황을 확인하며 대구공항의 미흡 사항을 점검했다. 대구공항보다 먼저 준비를 시작한 5비의 노하우를 공유받으며 비교적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구공항은 김해공항에 비해 시설과 장비가 부족했고, 대형 항공기를 맞이한 경험이 없다는 점이 부담이었다.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정상 전용기가 대구공항으로 오게 된다면 여러 관계기관이 손발을 맞춰본 경험 없이 외국 정상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이에 11전비는 공군작전사령부에 KC-330 공중급유기의 대구공항 전개를 건의했다. 공군본부, 작전사령부, 기동정찰사령부, 공중전투사령부 그리고 5비의 전폭적인 협조로 공중급유기가 대구공항에 착륙했고, 행사 일주일 전에 모의훈련을 할 수 있었다. 실제 대형 항공기가 내리고, 지상조업사를 포함한 모든 관계기관이 절차를 반복 숙달하면서 우발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감을 얻었다. 단 한 번뿐인 훈련이었기에 가능한 한 많은 상황을 가정해 대응 절차를 검증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를 통해 어떤 환경에서도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자 했다.
행사 기간 내내 김해와 대구의 하늘은 맑았고, 정상 전용기가 대구공항에 착륙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우리의 노력을 헛수고라 여기지 않았다.
군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비하는 조직이다. 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1%도 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준비 없이 맞이한 우발상황이 초래할 혼란의 대가는 미리 준비하는 수고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대구공항의 모의훈련은 실제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바로 그런 철저한 준비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APEC 정상회의는 완벽하게 끝날 수 있었다. 그것이 군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우리가 임무를 수행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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