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선과 대구국제아트페어 특별전

입력 2025. 11. 05   16:04
업데이트 2025. 11. 05   16:08
0 댓글
황인 미술평론가
황인 미술평론가

 


올해는 광복 80년, 한일국교정상화 60년을 맞는 해다. 이를 기념하는 미술 행사가 한국과 일본에서 열리고 있다. 대구국제아트페어(Diaf) 특별전으로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대구, 일본, 현대미술을 돌아보다’가 지난달 30일부터 나흘간 열렸다. 일본 요코하마미술관에서는 ‘일본과 한국 아트의 80년-언제나 옆에 있으니까’ 전시회가 오는 12월 6일부터 열린다.

대구는 다른 도시에 비해 일본현대미술과의 교류가 잦다. 1974년부터 해마다 대구현대미술제가 열렸다. 1979년 마지막 대구현대미술제에 참가하려 일본의 젊은 미술인 15명이 대구를 찾아왔다. 이 정도로 많은 숫자의 일본 미술인이 한국을 찾은 일은 해방 후 처음이었다. 이후로도 대구에는 일본 미술인의 개인전과 단체전이 꾸준하게 열리고 있다.

한국현대미술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미술 운동은 ‘단색화’다. 일본에서 이와 비슷한 경우를 찾는다면 ‘모노하’가 될 것이다. 모노하는 1968년부터 시작됐다. 그로부터 10년 후 포스트 모노하 작가들이 대거 대구를 찾은 것이다. 단색화와 모노하의 직접적인 접촉은 없었다. 그러나 이 둘을 오가며 활동하는 일본의 평론가가 많았다. 양국 미술언론에 상대방을 소개하면서 서로 의식하는 미술이 됐다. 단색화와 모노하 작가들이 번갈아 전시회를 연 대구는 양국 현대미술 교류의 플랫폼이 됐다.

이번 특별전에는 1979년 대구현대미술제에 참가한 에비즈카 고이치가 참여했다. 요코하마 쓰루미에서 태어나 자란 에비즈카에게는 한반도 출신인 친구가 많았다. 자연스레 그는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번 특별전을 위한 에세이에서 에비즈카는 김충선에 대해 언급했다. 김충선은 임진왜란 때 항왜장수다. 일본 이름은 사야가(沙也可)다. 나중에 선조로부더 김씨 성과 충선이란 이름을 받았다. 이들 후손은 사성(賜姓) 김해 김씨로 불린다. 김충선의 묘와 그를 모신 녹동서원이 대구 가창 우록동에 있다.

에비즈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왜란이 정당한 이유 없는 침략전쟁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조선출병’이라고 학교에서 가르쳤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불편함과 혐오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조선군에 투항해 큰 공을 세운 일본인 사야가를 알게 됐다. 사야가 즉, 김충선의 인물 됨됨이를 알고 싶어 여러 책을 찾아서 읽었다.

1971년부터 출판되기 시작한 시바 료타로(司馬 遼太?)의 ‘가도를 가다’ 시리즈는 일본 여러 지역의 소개가 주를 이룬다. 여기에 ‘한국기행’과 ‘탐라기행’이란 책도 포함돼 있다. 에비즈카는 ‘한국기행’에서 김충선을 읽고는 우록동의 녹동서원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우록동은 대구 시내에서 20㎞ 떨어져 있다. 이번 특별전 참가 때 대구 미술관에 갈 일이 있었다. 에비즈카 일행은 우록동을 먼저 들렀다. 에비즈카의 평생의 꿈이 이뤄졌다.

전시회를 열다 보면 망외의 소득이 생길 때가 많다. 에비즈카는 이번 특별전에 참가하는 바람에 김충선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 한·일 간 미술 교류도 중요하지만 양국의 사람과 역사를 잘 이해하려는 태도도 매우 중요하다. 요코하마에서 열리는 ‘일본과 한국 아트의 80년-언제나 옆에 있으니까’ 전시회에는 일본의 작가는 물론 재일 한국인 작가도 많이 참가한다. 복잡한 역사를 공유하는 양국 예술가들이 미술전시를 통해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하기를 기대해 본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