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페르소나
MBC 배구 예능 ‘신인감독 김연경’의 김연경
만년 하위팀 우승 이끈 화끈한 리더십
전 세계 여자배구계 전설로 남은 실력
은퇴 후 선택한 길은 ‘배구 예능’ 감독
“울 거면 나가” “결국 너의 준비 부족”
승리 후에도 실책 지적…안일함 차단
과정 냉정하게 분석하고 성장 채찍질
위대한 선수 될 수 있었던 힘 보여줘
김연경 선수에게 ‘여자배구의 전설’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녀는 전 세계의 다양한 팀, 그것도 대부분 꼴찌팀을 이끌어 거의 모두 우승을 이뤄낸 전적이 있다. 그녀는 일본 최하위팀 JT마블러스에 입단해 구단 창단 역사상 최초 우승을 이끌며 MVP를 수상했고, 배구 최강국 튀르키예에서 역시 만년 하위팀 페네르바체에 입단해 팀 창단 최초 유럽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하고, 이후 7회 우승의 주역이 됐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2017년 중국의 6위팀인 상하이 유베스트에 입단해 경기마다 최다득점을 기록하며 역시 우승을 이끌었다. 2019년 튀르키예 엑자시바시에 동양인 최초 주장으로 입단, 팀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이러니 ‘언더독의 해결사’ 같은 수식어가 허명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 전설의 김연경은 올해 아쉽게도 은퇴를 선언하며 선수로서의 생활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의 배구 인생의 끝을 말하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곧바로 MBC ‘신인감독 김연경’을 통해 감독 데뷔를 선언했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감독 데뷔이기 때문에 이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배구 관계자들의 쓴소리들이 있었다.
차상현 전 감독은 그녀가 예능으로만 접근하는 것을 경계하며 “진짜 지도자인지, 가짜 지도자인지 모르겠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놨다. 하지만 김연경의 감독 도전은 진심이었다. 2부 리그가 없어 팀에서 밀려나면 은퇴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의 배구선수를 위해 이들로 팀을 짜 8번째 프로구단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를 내세운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은퇴한 언더독 선수들이 ‘원더’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담아 ‘원더독스’라는 팀명을 갖게 된 이 팀은 7개 팀과의 대결에서 50% 이상 승률을 내지 않으면 해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들이 상대해야 할 팀은 프로팀, 실업우승팀, 여고우승팀, 일본 고교 우승팀, 프로 준우승팀, 프로 통합우승팀으로 만만찮다. 실제로 첫 경기로 상대적으로 쉬울 거라 여겨졌던 여고우승팀 전주 근영여고와의 첫 경기는 피 튀기는 반전의 반전을 보여줬다. 두 번째 경기로 치러진 프로팀 알토스와의 경기는 혈전 끝에 첫 패배의 아픔을 맛봤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패배에 대해 김연경 감독이 보여주는 색다른 관점이다. 경기 후 눈물을 보인 선수가 많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김연경은 눈물보다 “느끼는 게 많은 시합이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기 데이터 분석으로 세터들이 부진했다는 사실을 꺼내놓으며 훈련 때는 괜찮았는데 왜 실전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여줬는가를 물었다. “잘 모르겠다” “하나를 실수하면 계속 자신감이 떨어졌다” 같은 이유들이 나왔지만, 이를 김연경은 한마디로 일축했다. “그건 뜬구름 잡는 얘기잖아. 뜬구름 잡는 거. 발전적인 얘기가 아니라고 난 생각하거든. 긴장돼서 못했고 떨려서 못했고 자신감 없어서 못했고. 핑계를 대려면 수만 가지가 돼. 그런데 우리가 두 번째 경기였잖아. 그런 감정을 처음 느끼는 것도 아니잖아. 이런 자신감 없는 시합 처음 해봤어? 내 생각은 자신이 없는 너의 시합 때의 상태도 너는 이미 준비가 돼 있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을 해. 그래서 결국은 ‘준비 부족’이야.”
이 말에는 김연경이 그간 전 세계 하위팀에 들어가서도 그들을 이끌어 우승을 거머쥔 그 저력의 이유가 들어 있다. 그것은 바로 ‘프로페셔널리즘’이다. 경기에서 자신감이 없어 울 것 같은 얼굴을 보이는 선수에게 김연경은 다독이기보다는 “그러면 누가 널 믿고 공을 토스해주겠냐”고 되물었다. “울 거면 경기장에서 나가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즉, 경기 중 만나게 되는 갖가지 심리적 압박감이나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까지 프로들은 스스로 감내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걸 강조한 것이다. 배구만큼 ‘분위기’가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스포츠도 없다. 상승세를 타면 순식간에 점수를 내지만 한순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금세 역전을 내주는 경기가 바로 배구다. 그러니 전 세계의 무수한 배구팀과 경기를 치른 김연경은 경험적으로 그러한 감정 컨트롤 또한 경기의 일부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이러한 냉정한 이야기가 선수들에게 먹히기 위해서는 그 말에 대한 전적인 믿음과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이다. 김연경 감독은 첫 경기로 근영여고를 이겼지만 승리에 취한 선수들에게 “이런 경기력으로는 100% 진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놨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많은 실책이 나왔기 때문이다.
김연경 감독은 “당장 이겼으니 됐다”는 안일함을 차단하고 그 과정이 과연 좋았는가를 냉정히 평가함으로써 앞으로 치러질 경기들을 위한 선수들의 성장을 채찍질했다. 이런 냉정함이 선수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유는 그간 김연경이 선수로서 뛰며 쌓아온 ‘서번트 리더십’에 기반한 도덕적 권위 때문이다. 그녀는 매 경기에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여왔고, 팀을 위해 자신의 몸값을 낮추면서까지 동료 선수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도록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 선수들은 김연경 감독의 어떤 말도(심지어 아픈 비판도) 긍정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경기에서 진 것이 “결국 준비 부족” 때문이라는 말은 반대로 어떤 경기든 부족한 준비를 채우면 이길 수 있다는 강렬한 의지를 드러낸다. 그 준비에는 체력이나 실력의 차원만이 아니라 감정 컨트롤도 포함된다. 이것은 철저한 ‘프로페셔널리즘’이다. 당장의 1승이 아니라 전체 경기에서의 승리라는 거시적 목표를 세우고, 그 과정 하나하나를 냉정하게 평가해 가며 자신을 성장시키고 준비시키는 자세. 그것이 김연경이라는 전설이 만들어진 힘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꿈에 대한 목표를 세운다. 하지만 그것이 좌절될 때마다 갖가지 이유를 핑계로 대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만으로는 목표를 이루기가 어렵다. 요즘처럼 경쟁적인 현실에서 목표를 이루기를 원한다면 김연경이 말하는 ‘철저한 준비’라는 프로페셔널리즘을 떠올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미 그것으로 전설이 된 김연경이라는 인물이 우리 시대의 페르소나가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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