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에 군복을 입은 이유

입력 2025. 11. 03   16:45
업데이트 2025. 11. 0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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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성 일병 육군22보병사단 방공대대
유재성 일병 육군22보병사단 방공대대



서른여섯 살에 입대한 늦깎이 군인이다. 20년 가까이 캐나다에서 살아온 터라 이 나이에 군복을 입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고등학교 재학 중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영주권을 취득했다. 호텔 프런트 매니저, 자동차 영업 등 고객들을 응대하며 사회생활을 했고 부족했던 영어와 북미권 문화는 자연스레 삶의 일부가 됐다. 한국에서의 기억이 희미해질 즈음, 어머니의 암 투병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3년 뒤에는 또다시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다시 캐나다로 돌아간다면 군 면제가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가족이 있는 한국에 남고 싶었다. 그동안 떨어져 지낸 가족을 위해, 또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자원입대를 결심했다.

영주권자 입영희망원 제도 덕분에 원하는 날짜에 바로 입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서른여섯에 훈련소에 들어갔다. 열 살 이상 차이 나는 동기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에 걱정이 많았지만, 사회 경험을 하면서 다져 온 소통 능력과 열린 마음 덕분에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갔다.

훈련소에서 취침 전 일일 정신전력교육 시간엔 입대 계기와 삶의 전환점에 관해 1000여 명이 듣는 가운데 방송을 하게 됐다. 방송을 듣고 감동했다며 말을 걸어 준 동기들의 격려 덕분에 앞으로의 군 생활에 자신감을 얻었다.

지금은 사단 방공작전통제소에서 장비 현황을 파악하고 상황을 통제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다. 캐나다 호텔 프런트에서 매일 수많은 돌발상황에 대응했던 경험이 임무 수행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상황근무, 병영생활, 자기계발 등 주어진 과업의 우선순위를 판단하며 침착하게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다. 최근엔 부대 외국인을 상대로 한 행사에서 중대장님의 추천으로 동시통역을 맡게 됐다. 처음엔 해 보지 않은 일이어서 망설였지만 ‘네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중대장님의 격려에 힘입어 도전했고,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외국인 학생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가진 언어 능력과 유학 경험이 나라를 잇는 가교가 될 수 있음을 느꼈다.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를 다시 한번 느끼는 소중한 체험이었다.

체력은 20대 전우들보다 부족할지 몰라도 이곳에서의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입대는 늦었어도 인생 선배로서 전우들과 경험을 나누고 있다. 조직 안에서, 가족 안에서 제 몫을 해내는 것. 그것이 내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믿는다. 군복을 입고 보내는 이 특별한 시간이 인생의 다음 문장을 더욱 단단히 써 내려가게 해 줄 것이라고 믿으며 오늘도 주어진 임무를 위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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