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위기’라는 진단이 만연한 시대다. 현상과 원인을 분석하는 이론적 접근은 ‘상아탑 속 이야기’로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사람이 더 이상 인간인 원인을 묻지 않는 시대에 철학은 여전히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칸트의 3가지 질문은 인간의 참다운 모습을 해명하고자 했던 고뇌의 산물이며,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현대사회는 종종 인간의 고유한 존재방식을 두뇌에서 비롯된 물질의 상호작용으로 환연시키려는 유물론적 환원주의에 경도돼 있다. 이런 시각은 박물관에 전시된 과거의 유물과 정해진 규율 속에서 장교로 거듭나고자 노력하는 사관생도들의 존재를 본질상 동일한 ‘있음’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한다. 철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존재가 각자에게 알맞고 다양하게 이해될 수 있다는 ‘존재론적 차이’를 다시금 호소한다. 
이러한 철학적 사유는 특히 10년이란 장기복무를 하며 장차 국가와 부하의 생명을 책임질 해군사관생도들에게 더욱 깊고 절실한 의미로 다가온다. 지난 7학기 동안 생도들을 가르치면서 철학을 통해서만 진정한 의미의 ‘결단’이 가능하다고 강조해 왔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으로 삶의 방향이 결정된다. 하물며 지휘관의 위치에 서게 될 장교의 선택은 어떻겠는가. 그들의 결단은 자기 자신은 물론 지휘를 받는 부하들의 생명과 임무 성패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올바른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판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문제는 실전적 상황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이 때로는 매우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 군에서 마주하는 판단은 기술적 지식이나 정해진 절차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복잡한 윤리적 딜레마를 동반한다. 극한의 압박 속에서 무엇이 진정 옳은 일인지, 왜 이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철학은 우리에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답한다. 여기서 ‘생각’이란 단순히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재고 따지는 ‘계산적 사고’가 아니다. 이는 사태 본질과 그 이면의 가치를 꿰뚫어 보는 ‘숙고적 사유’를 뜻한다. 이런 성찰을 거쳐 우리는 비로소 기계적인 임무 수행자가 아닌 자신의 신념과 책임에 따라 현명한 결단을 내리는 ‘철학하는 리더’로 거듭날 수 있다. 
철학(philosophy)의 어원은 ‘지혜를 사랑한다(philosophize)’이다. 이는 철학이 단순히 여러 학문 중 하나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근본적 태도임을 일컫는다. 
철학은 다른 학문세계로 들어가는 여권과도 같다. 풀기 어려운 경제학이나 인공지능 같은 주제를 마주할 때 철학은 우리가 그 본질에 더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 즉, 철학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인간적 관계를 맺는 수단이자 태도다. 
결국 철학은 판단의 문제이자 인생의 문제다. 인생은 종종 절망과 희망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외줄타기와 같다. 철학은 그 길을 단숨에 건너는 지름길을 알려 주지 않는다. 오히려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에둘러 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인간이 판단의 순간에 문득 삶의 덧없음을 깨닫고, 그럼에도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용기를 낼 때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성찰의 즐거움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철학이 주는 즐거움이며, 우리가 누려야 할 삶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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