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두 그룹의 학생을 상대로 인터뷰를 했다. 한 그룹은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고, 다른 그룹은 소극적 주장을 하는 사람들로 나눈 뒤 양쪽에 과제를 제시했다. 10여 분 뒤 실험자가 두 그룹을 동시에 앉혀 놓고 각자 의견을 이야기하게 했다. 그랬더니 처음엔 뚜렷한 의견 차가 있었던 각 그룹의 의견이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는 그룹으로 수렴되는 것을 발견했다.
굳이 이런 실험을 하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는 걸. 사람들은 뚜렷한 대안이 없을 때, 이것이나 저것이나 비슷할 때, 싸우기 싫을 때 목소리 큰 사람의 의견을 따르는 편이다.
목소리 큰 사람,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 출세할 확률이 더 높다는 심리학 보고서도 있다. 기업 내 조직에선 목소리 큰 사람이 실행력이 더 높을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사실은 목소리가 크다고 실행력이 더 높다든지 혹은 판단력이 더 뛰어나지는 않다. 단지 사람들은 목소리가 큰 만큼 무언가 확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한번 믿어 보자는 분위기를 가질 뿐이다.
목소리가 작은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말썽을 만들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크게 엉망인 의견만 아니면 목소리가 큰 사람을 따라간다. 그러면 싸움의 소지도 줄고 세상이 평화롭기 때문이다.
문제는 목소리 작은 사람들의 의견 무시가 임계점을 넘을 때다. 독재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미 목소리 큰 사람들이 법적으로, 분위기로 자기들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난 뒤일 경우가 많아 더 이상 일반 목소리, 목소리 작은 이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나치스가 정권을 잡아 가는 과정이 이와 같다. 비판할 용기라도 있는 많은 지식인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시민의 권리를 박탈하고, 강제된 언론만 허용했다. 목소리 큰 사람들의 의견만 어느 순간부터 들리니 독일 국민은 설마설마하면서 나치스의 노예가 돼 갔다.
목소리 작은 사람은 부지불식간에 단지 편하다는 이유로 각종 권리를 타인에게 넘겨준다. 회사, 친구, 친족 간에도 모르는 새 일부 사람에게 나의 권리를 위임하고 있는 것이다. 넘겨주고서도 잘 모른다. 어떤 이는 그게 내 의견이라고 변명까지 한다. 그러나 위 실험에서 보듯 목소리 작은 사람이 어느 순간 자기의견을 낮추는 것은 이미 심리적으로 위축돼서다. 심리적으로 위축되면 사람은 행동반경이 좁아지고 자기의견도 개진하지 못하게 된다. 상대방 의견이 좋아 감수하는 게 아니라 부딪치면 말썽 나고 귀찮아 포기하는 것이다.
목소리 작은 사람들이 목소리 큰 사람들을 이기는 방법은 일단 기죽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기의견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돌아오는 건 내가 바라는 게 아니라 그들이 바라는 세상, 목표, 성과다.
내가 의견을 포기하는 순간 사회구성원으로서, 조직구성원으로서 권리를 포기하는 셈이다. 조직은 전체 의견으로 굴러갈 것을 약속하고 모인 일종의 계약집단이다. 그것은 계약을 파기하는 것이고, 소수에게 전체를 맡기는 것이다.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목소리가 크다고 옳은 의견은 아니다. 목소리가 크다고 실행력이 더 큰 것도 아니다. 단지 목소리만 클 뿐이다.
해당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