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생활은 쳇바퀴가 아니다

입력 2025. 11. 02   14:54
업데이트 2025. 11. 03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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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군대에서의 하루는 반복의 연속처럼 보인다. 기상, 점호, 훈련, 정비, 취침. 똑같은 루틴 속에 있다 보면 ‘제자리걸음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안에는 ‘진화(進化)’와 ‘진보(進步)’가 함께 존재한다. 두 단어는 비슷해 보이지만 본질은 다르다. 

진화는 ‘환경에 적응하는 변화’다. 자연의 법칙이 만들어 낸 생존의 결과다. 기린의 목이 길어진 이유는 의도적인 노력 때문이 아니라 우연히 목이 긴 개체가 살아남아 번식해서다. 진화는 ‘계획된 발전’이 아니라 ‘환경 속에서 축적된 적응의 기록’이다.

군대 훈련도 마찬가지다. 매일 반복되는 PT 체조, 사격, 제식훈련이 처음엔 무의미하게 느껴지지만 몸은 조금씩 적응한다. 총을 쥔 손의 감각, 구호에 맞춰 나가는 발의 리듬, 전우와의 호흡이 자연스레 몸에 새겨진다. 이런 변화가 바로 진화다. 의식하지 않아도 신체와 마음이 환경에 맞게 변해 가는 과정이다.

인간은 진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방향을 정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진보’다. 진보는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가려는 의지적 변화’다.

즉, 진화는 ‘일어난 변화’이고 진보는 ‘이루려는 변화’다.

군인에게는 이 둘이 모두 필요하다. 진화는 생존과 적응의 기술이고, 진보는 성장과 목표의 철학이다. 훈련 중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것은 진화이며, 다음번엔 넘어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진보다. 이 둘이 합쳐질 때 군인은 ‘강한 사람’을 넘어 ‘단단한 사람’이 된다. 진화는 시간을 먹고 자라지만, 진보는 의지를 먹고 자란다.

철학자 니체는 이야기했다. “인간은 극복돼야 할 존재다.”

이 말은 단순히 고통을 참으라는 뜻이 아니다.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스스로를 넘어서는 존재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군대의 하루가 진화의 반복이라면, 그 하루를 더 낫게 만들겠다는 의식이 진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진화만 하면 나태해지고, 진보만 추구하면 조급해진다. 환경에 적응하되 방향을 잃지 말아야 한다. 진화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진보는 미래를 그린다. 군인이 현실을 외면한 채 이상만 좇는다면 전장에서 생존하지 못한다. 반대로 적응에만 매달린다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매일의 훈련 속에서도 ‘오늘은 어제보다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돌아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달라진 점이 몸의 적응이라면 그것은 진화이고, 마음의 각오라면 그것이 진보다.

군 생활의 본질은 이 두 축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진화가 없으면 버틸 수 없고, 진보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단순히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왜 이 일을 하는가?’를 스스로 묻는 순간 진보가 시작된다. 군의 규율과 질서 안에서도 개인의 생각과 의지가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환경에 굴하지 않고 적응하는 진화의 힘,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는 진보의 의지. 이 둘이 함께할 때 군인의 하루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단련의 역사’가 된다.

오늘의 훈련이 어제보다 조금 덜 힘들었다면, 그것은 당신이 진화한 증거다. 내일의 자신이 오늘보다 좀 더 나아지길 바란다면, 그것이 바로 진보다. 진화와 진보가 어우러지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강한 군인의 길이다. 이 두 가지를 의식적으로 반복하며 자신을 단련할 때 군에서의 시간은 의무가 아닌 ‘성장의 시간’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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