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에 헌혈을 시작했다. 지난 4년간 50번의 헌혈을 해 ‘헌혈 금장’을 받는 영예도 안았다. 이렇게 헌혈을 하게 된 계기는 조금 특별하다. 헌혈에 전혀 관심이 없을 때 같이 근무하던 친한 선배의 아버님이 위독하셔서 수술에 필요한 헌혈증을 부탁받은 적이 있다. 당시엔 헌혈을 하지 않아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얼마 뒤 선배의 부친상 연락을 받고 크게 자책했다. ‘내가 헌혈을 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에 늦은 나이에 헌혈을 결심했다.
헌혈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게 아니다. 건강한 성인이라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작지만 위대한 행동이라고 여긴다. 헌혈로 모은 혈액은 급히 수혈이 필요한 환자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혈액이 필요한 백혈병·골수이식 환자들을 살리는 데 긴요하게 활용된다. 또한 국가적 재난이나 대규모 사고 발생에 대비하기 위해 일정량 비축되기도 하고, 혈액을 통한 의약품 제조에도 필수다. 이렇듯 헌혈은 자신의 일부를 나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의미 있는 방법이다.
헌혈 횟수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통계청 추산 2005년 이후 헌혈 횟수는 점점 감소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헌혈 횟수는 약 285만 건이다. 코로나19로 급감한 2020~2021년 헌혈 인구보다 적다.
실제로 2주 간격으로 꾸준히 헌혈하면서 체감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전과 다르게 헌혈센터를 방문하는 사람 수가 확연히 줄었다. 수혈이 필요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에도 혈액 공급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혈액을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공적으로 만들 수도 없고 장기간 보관도 불가능하다. 적정 혈액 보유량을 유지하기 위해선 자발적인 헌혈 활동과 적극적인 참여 홍보가 필요하다.
직업군인의 특성상 주기적인 헌혈을 하기엔 다소 제한사항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속해 있는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KCTC)만 하더라도 가장 가까운 헌혈의 집이 한 시간 거리에 있고, 잦은 훈련으로 더욱 참여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그러나 우리의 작은 실천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생각이 오늘도 헌혈의 집으로 발길을 이끈다.
요즘은 50번의 헌혈로 모은 헌혈증을 어디에 기증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비록 왼팔엔 헌혈로 인한 선명한 바늘 자국이 남아 있지만, 4년 전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 선배를 향한 미안함과 헌혈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준 고마움이 오늘도 헌혈을 하게 만든다. 앞으로 몸이 허락할 때까지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작지만 큰 힘을 꾸준히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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