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많은 것을 조심하며 생활해야 했다. 우유, 달걀, 견과류 등 남들은 평범하게 먹는 음식이 내게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존재였다. 실수로 먹었던 유제품, 달걀, 견과류에 기도가 붓고 숨이 가빠져 여러 번 병원에 실려 간 기억은 공포로 남았다. 그날 이후 평생 음식을 가려 먹는 삶을 살아왔다.
학창 시절에는 급식실에서 대체식을 따로 챙겨 먹었고, 피자 같은 간식을 나눠 줄 때도 뒤로 물러나야 했다. 함께 간식을 나누는 친구들이 마냥 부러웠다.
“규채야, 왜 안 먹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항상 이 질문에 똑같은 답을 해야만 했다. 너무 괴로웠다. 식당에선 음식 재료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편의점에선 성분표를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다.
입대 전 군 생활이 두려웠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알레르기 때문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다 함께 같은 음식을 먹는 식사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 혹시 실수로 먹게 되면 몸은 괜찮을까?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해 보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입대 뒤 상황은 생각과 달랐다. 훈련소에선 알레르기가 있는 인원을 조사해 대체식을 지급해 줬고, 식단표에 있는 알레르기 유발물질을 미리 보고 대체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훈련을 마치고 나온 유제품 부식. 당연하게 못 먹는 음식인 걸 알지만 주머니에 있는 약을 믿고 들이켰다. 이상하게도 큰 변화가 없었다. ‘설마’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그 후로 일부러 조금씩 우유가 들어간 음식을 먹어 봤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후로 천천히 경계를 허물기 시작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바꿨을까? 군대의 규칙적인 생활과 균형 잡힌 식사, 매일 쏟는 땀과 훈련 때문이었을까? 군 생활을 하면서 몸이 단단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알레르기도 점점 사라져 갔다. 아니, 사라졌다.
알레르기가 사라진 뒤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는 식판 위에 올라온 달걀프라이를 아무 망설임 없이 먹고 전우들과 마트에서 아이스크림, 음료수 등을 사서 나눠 먹는다. 음식을 피하지 않고 더는 움츠리지 않은 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이 당연한 일상이 얼마나 큰 자유였는지를 그제야 깨달았다.
군대는 단지 복무공간이 아니었다. 세상이 강요한 선천적인 한계를 넘어서게 해 준 곳, 몸과 마음의 틀을 바꿔 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누군가는 군대를 ‘힘들다’고 하지만 내게 군대는 ‘자유’를 선물해 줬다. 언젠가 누군가가 “알레르기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군 생활이 정말 힘들어요”라고 이야기할 때 자신 있게 말해 주고 싶다.
“나도 그랬어. 그런데 생각보다 우린 더 강한 몸과 마음을 갖고 있어.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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