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배를 탄다는 것

입력 2025. 10. 27   13:47
업데이트 2025. 10. 2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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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민 중위 해군기동함대사령부 세종대왕함
임정민 중위 해군기동함대사령부 세종대왕함



대학병원 인턴 시절, 산부인과 당직을 서던 날이었다. 새벽 3시경 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산모의 응급 제왕절개 수술 보조의사로 호출된 적이 있다. 졸음도 잊고 수술에 집중했다. 수술이 마무리돼 갈 즈음 처음으로 고개를 들고 제대로 주위를 둘러봤다. 담당교수부터 보조의사, 마취과 의사, 수많은 수술방 간호사, 신생아 중환자실 의사·간호사까지 모두가 산모와 아기를 살리기 위해 힘을 합치고 있었다. 그 장면이 참 아름답고 짜릿한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톱니바퀴가 정교하게 맞물려 큰 기계가 돌아가듯이 각자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언제나 감동을 준다. 

지금은 세종대왕함 군의관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전혀 다른 곳처럼 보이는 해군 함정과 병원에서 의외로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종대왕함에 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해상 유류 공·수급 훈련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해상 유류 공·수급이란 장기간 항해로 유류가 부족한 함정에 군수지원함이 해상에서 유류를 재보급하는 것을 말한다. 두 함정이 와이어와 유류 호스로 연결된 상태에서 근접해 기동하기에 고도의 팀워크가 요구된다. 이 훈련을 참관하며 함정 전체의 유기적인 소통과 움직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었다. 세종대왕함 함교에선 군수지원함과 끊임없이 교신하며 기동침로와 속도 등을 세밀하게 조정하고 있었다. 갑판에선 유류 공급을 위한 호스를 연결하고, 기관조종실에선 공급받는 유류의 압력 등을 확인하고 있었다. 두 함정 간 서로의 얼굴이 식별될 정도로 가까운 간격을 유지하면서 나란히 파도를 가르는 모습 자체로도 압도적이었지만, 그 장면이 가능하게 한 것은 각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장병들이 있었음을 알기에 더욱 벅차오르는 순간이었다.

며칠 뒤 우측 아랫배 통증으로 밤늦게 찾아온 환자가 있었다. 이런 통증 양상은 응급 가능성이 있어 병원으로 이송해 영상검사를 해 보는 게 좋겠다고 보고했다. 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 모든 대원이 환자 이송작업을 하게 됐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작은 고속단정 하나를 바다로 내려 사용하기 위해서도 수많은 사람이 협력해야 함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다음 날 다른 승조원들과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건넸다. “어젯밤 모두를 깨운 것 같아 괜히 죄송하네요.” 그런데 매번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아닙니다. 저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파서 이송해야 하는 사람이 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렇다. 세종대왕함 장병들은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고자 서로가 필요함을, 누군가 힘들 때는 기대고 도와야 함을, 그럴 수 있도록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여러 경험을 하면서 ‘한배를 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되새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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