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인턴 시절, 산부인과 당직을 서던 날이었다. 새벽 3시경 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산모의 응급 제왕절개 수술 보조의사로 호출된 적이 있다. 졸음도 잊고 수술에 집중했다. 수술이 마무리돼 갈 즈음 처음으로 고개를 들고 제대로 주위를 둘러봤다. 담당교수부터 보조의사, 마취과 의사, 수많은 수술방 간호사, 신생아 중환자실 의사·간호사까지 모두가 산모와 아기를 살리기 위해 힘을 합치고 있었다. 그 장면이 참 아름답고 짜릿한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톱니바퀴가 정교하게 맞물려 큰 기계가 돌아가듯이 각자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언제나 감동을 준다.
지금은 세종대왕함 군의관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전혀 다른 곳처럼 보이는 해군 함정과 병원에서 의외로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종대왕함에 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해상 유류 공·수급 훈련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해상 유류 공·수급이란 장기간 항해로 유류가 부족한 함정에 군수지원함이 해상에서 유류를 재보급하는 것을 말한다. 두 함정이 와이어와 유류 호스로 연결된 상태에서 근접해 기동하기에 고도의 팀워크가 요구된다. 이 훈련을 참관하며 함정 전체의 유기적인 소통과 움직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었다. 세종대왕함 함교에선 군수지원함과 끊임없이 교신하며 기동침로와 속도 등을 세밀하게 조정하고 있었다. 갑판에선 유류 공급을 위한 호스를 연결하고, 기관조종실에선 공급받는 유류의 압력 등을 확인하고 있었다. 두 함정 간 서로의 얼굴이 식별될 정도로 가까운 간격을 유지하면서 나란히 파도를 가르는 모습 자체로도 압도적이었지만, 그 장면이 가능하게 한 것은 각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장병들이 있었음을 알기에 더욱 벅차오르는 순간이었다.
며칠 뒤 우측 아랫배 통증으로 밤늦게 찾아온 환자가 있었다. 이런 통증 양상은 응급 가능성이 있어 병원으로 이송해 영상검사를 해 보는 게 좋겠다고 보고했다. 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 모든 대원이 환자 이송작업을 하게 됐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작은 고속단정 하나를 바다로 내려 사용하기 위해서도 수많은 사람이 협력해야 함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다음 날 다른 승조원들과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건넸다. “어젯밤 모두를 깨운 것 같아 괜히 죄송하네요.” 그런데 매번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아닙니다. 저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파서 이송해야 하는 사람이 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렇다. 세종대왕함 장병들은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고자 서로가 필요함을, 누군가 힘들 때는 기대고 도와야 함을, 그럴 수 있도록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여러 경험을 하면서 ‘한배를 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되새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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