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52보병사단 혁신 현장을 가다

입력 2025. 10. 27   17:05
업데이트 2025. 10. 2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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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력이 공감력
쉴 틈 있는 공간들이 빈틈없는 전력으로…

사용자 눈높이 맞추고 모두가 공감하게 추진
지속적 공간력 창출 위한 5가지 기준 세워
개인 업무·자기 계발과 소통의 장으로 활용
사고·민원 줄고 전투력은 향상 ‘일거다득’

“우리가 공간(건물)을 만들고, 그 후 공간(건물)이 우리를 만든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3년 10월,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 독일 공군 폭격으로 파괴된 의회의사당을 재건하며 남긴 말이다. 처칠의 명언에는 공간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국가·사회의 정신을 형성하는 힘이라는 통찰이 담겨 있다. 
육군이 최근 강조하는 ‘공간력(空間力)’도 마찬가지다. 공간력은 건축물과 공간이 곧 인간의 행동과 문화, 사고방식까지 지배하는 ‘강력한 힘’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부대 구성원들의 삶의 질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궁극적으로 전투력 향상의 핵심 요소로 여겨진다. 육군52보병사단의 지속적이고 일관된 공간력 창출 노력이 주목받는 이유다. 글=최한영/사진=조용학 기자

 

육군52보병사단 기동대대 장병들이 지난 21일 인조잔디와 육상 트랙이 조성된 연병장에서 뜀걸음을 하고 있다. 사단은 '공간력'을 전투력 창출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고 지속적인 공간 혁신을 끌어내고 있다.
육군52보병사단 기동대대 장병들이 지난 21일 인조잔디와 육상 트랙이 조성된 연병장에서 뜀걸음을 하고 있다. 사단은 '공간력'을 전투력 창출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고 지속적인 공간 혁신을 끌어내고 있다.



인조잔디 연병장, 인바디 측정기 체력단련장 인기


지난 21일 오후, 일과를 마친 사단 기동대대 장병들이 부대 실내체력단련장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최신 러닝머신과 인바디 측정기까지 갖춘 체력단련장은 여느 민간 헬스장에 견줘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서두교(중령) 군수참모는 “소규모로 분산 운영하던 체력단련장을 과감히 통합·확장하고, 기자재는 육군 시범사업인 ‘헬스기구 렌털 사업’을 활용해 최신 장비로 구비했다”고 설명했다.

연병장을 흙바닥이 아닌 인조잔디와 육상 트랙으로 조성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사단 본부 외에 예하 여단들도 연병장을 인조잔디로 교체하는 중이다. 그중 한 여단은 지자체와 협업해 지역 주민들도 활용할 수 있는 민·군 통합형 연병장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노후화가 심해 활용도가 낮았던 실내체육관도 전면 보수했다. 4개 면의 배드민턴 코트를 포함 각종 체육 동아리 활동이 가능한 다목적 공간으로 변모했다.

체육시설 외에도 사단의 시설 개선 노력은 돋보였다. 각 제대, 부서는 물론 가족 단위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스튜디오는 장병들이 추억을 만드는 장소가 되고 있다. 이용자가 줄던 병영도서관은 리모델링을 바탕으로 장병들이 자주 찾는 부대의 명소가 됐다.

 

 

장병들이 병영도서관에서 독서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장병들이 병영도서관에서 독서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신 시설을 갖춘 체력단련장에서 운동하는 장병들.
최신 시설을 갖춘 체력단련장에서 운동하는 장병들.

 


명확한 기준 세우고 구성원 의견 수렴하며 개선

사단은 ‘단기적 성과나 보여주기식 개선을 지양한다’는 점을 모토로 공간력을 창출하고 있다. 장병들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수도서울 절대사수’ 임무를 완수하는 데 직결된다는 판단에서다.

지속적인 공간력 창출을 위해 △사용자 눈높이에 맞추고 민간 수준 시설이 되도록 세련되게 개선 △주거시설은 군 가족뿐만 아니라 외부 손님이 보기에도 손색없도록 내·외부 시설(도색, 주차장 포장, 어린이 놀이터 등) 모두를 개선 △상급부대 예산 집행 상황을 주기적으로 확인해 예산을 확보하고 효율적으로 집행 △근무환경 변화는 즉시 체감할 수 있도록 개선 △부대원과 가족 모두를 포함해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 등 5가지 기준도 세웠다.

우현국(중령) 인사참모는 “각각의 중요성에 따라 중·장기 계획에 편성해 사람이 바뀌어도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며 “초급간부 간담회, 군인가족 공청회 등을 개최해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도 빼놓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5가지 기준에 따라 이뤄진 공간 개선, 나아가 공간력 창출 성과는 다양하다. 전 간부 1인 1PC와 책상을 부여하고 파티션을 설치해 개인 업무공간을 확보했다. 휴게실도 자기 계발과 소통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기존 노후 공간을 안전하고 쾌적하게 개선한 것도 주목할 요소다. 미관상 좋지 않고 장병들의 안전에도 영향을 미쳤던 컨테이너들을 과감히 정리해 인근 도시지역작전훈련장에 재배치했다. 비만 오면 물웅덩이로 변하던 예하 여단 수송부는 파쇄석(자갈)을 깔고 배수 여건을 개선, 안전한 임무여건을 조성했다. 낡은 건물 외벽을 도색하고, 무질서하게 자란 나무와 풀도 정비해 주둔지를 밝고 쾌적하게 보이도록 했다.

특히 사단의 공간력 창출 노력은 장병 가족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군 내부 숙소 리모델링이 입주민 반대로 시행이 어려워지자 이우헌(소장) 사단장이 직접 나서 공청회를 열었다. 공사 기간에는 입주민에게 임시 숙소를 제공하고, 수시로 공사 상황을 점검했다. 숙소 외부 도색, 주차장 포장, 놀이터 설치로 군 관사가 ‘온 가족이 살고 싶은 공간’으로 변모했다. 관사에 거주하는 군인 가족들 사이에서는 “생활 공간이 쾌적해져 가족 모두가 만족한다” “부대가 장병은 물론 가족들의 생활 여건까지 진심으로 고민한다는 점이 느껴진다”는 피드백이 나왔다.

 

실내체육관을 전면 보수해 배드민턴 코트를 조성했다.
실내체육관을 전면 보수해 배드민턴 코트를 조성했다.

 

장병들이 사진 촬영을 하며 추억을 만드는 장소가 된 스튜디오.
장병들이 사진 촬영을 하며 추억을 만드는 장소가 된 스튜디오.

 


근무여건 개선, 복무 만족도 향상 이어져 


사단의 공간력 창출 노력은 장병들의 근무여건 개선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사단은 직할대 당직 근무를 부대 단위 방식에서 통합근무 방식으로 변경했다. 이를 통해 근무 인원을 기존 대비 절반으로 줄이고 휴일 근무 시간을 기존 24시간에서 12시간으로 변경, 근무 집중도를 높이는 대신 부담은 낮추고 있다.

공간력 창출 노력은 장병들의 복무 만족도 제고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기동대대 권도형 상병은 고등학교 재학시절 축구선수로 활동했다. 권 상병은 근무·훈련 후 인조잔디가 깔린 연병장에서 전우들과 축구를 하고, 최신 시설 체력단련장에서 운동을 하며 전역 후 다시 축구선수에 도전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권 상병은 “좋은 시설에서 운동하며 ‘제2의 인생’을 꿈꾸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우 인사참모는 “이런 결과들이 바탕이 돼 사단의 사고발생 횟수와 민원이 현저히 감소했고, 임기제부사관 지원율은 해마다 증가해 ‘육군 인력획득 우수부대’에 선정되는 성과도 거뒀다”고 전했다.

사단은 공간력 창출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방침이다. 장병들이 자발적으로 공간력 창출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개선된 환경을 활용해 자율·참여 기반의 임무수행하는 여건도 마련할 계획이다.

육군 차원의 공간력 개선도 이뤄질 전망이다. 육군은 지난 9월 ‘창끝부대 공간력 혁신 추진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으며 군단별 1개 부대와 2작전사령부 예하 1개 부대 등 7곳의 시범부대를 선정해 공간력 개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육군은 “공간력 개선 부대를 점차 확대해 각 부대 전투력을 증진하고 장병들의 복무환경도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우헌(소장) 육군52보병사단장 
이우헌(소장) 육군52보병사단장 


인터뷰  이우헌(소장) 육군52보병사단장 
“공간 편해야, 부대 애착심 높아져”

“부대별 여건이 다르고 예산·자원 또한 한정적이겠지만, 얼마나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공간력 창출)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공간력 창출 성과는 장성급 지휘관이 지닌 권한과 능력을 올바르게 활용하고, 전 부대원과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동참이 있을 때 커진다. 우리 사단 사례가 ‘강한 육군, 신뢰받는 육군’을 구현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우헌(소장) 육군52보병사단장은 “공간력은 구성원의 삶의 질 전반은 물론 부대 전투력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업무·생활하는 공간이 좋고 편해야 능률이 오르고 부대 애착심도 높아지며, 가족들이 만족하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설명했다.

 

군인도 공간에 의해 행동을 지배받는다는 것이 이 사단장의 지론이다. 일할 수 있는, 잘 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업무·생활환경 조성이 필수라는 점도 강조한다. 사단의 공간력 창출 노력이 우리 군 각지에서 주목받는 이유다.

 

이 사단장은 “과거 사단장을 하셨던 분들이 기울여온 노력이 이어진 결과”라고 공을 돌렸다. 

이 사단장도 공간력 창출 효과를 여러모로 체감하고 있다. 실내체육관 내 배드민턴장 조성은 민간 동호회와 지역 주민 초청을 연계한 ‘친군화’에도 일조하고 있다. 이 사단장은 “코로나19가 심각했던 시절 우울증이 있던 간부가 가정사까지 겹쳤지만, 배드민턴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했다”며 “배우자가 감사 인사를 한 것을 보며 노력이 헛되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부대 개방행사에서 만난 병사 부모님들도 만족감을 표시한다. 이 사단장은 “특히 어머니들로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녀가 군 생활을 하니 안심이 된다’는 반응이 나온다”며 “환경 개선이 주변 전우를 존중해주는 문화와 접목된다면 우리 사단은 계속 좋은 부대가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지휘관의 의지와 관심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 사단장은 “주어진 예산을 토대로 어떤 시설·공간을 조성할지는 사단장의 영역”이라며 “전투준비만큼, 그와 같은 비중으로 공간력 창출에 관심을 쏟는 것이 전투력 발휘로 이어지는 첩경”이라고 부연했다. 난관이 있을 때 이 사단장이 직접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군 숙소 리모델링 과정에서 관계자들을 설득한 일이 대표적이다. 이 사단장은 “우여곡절 끝에 공사를 마쳤고, 그때 군 가족들이 만족하는 모습에서 간부들의 복무 만족도가 오르는 것이 눈에 보였다”며 “지휘관의 의지가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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