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인공지능(AI)의 핵심인 휴머노이드나 무인 자율주행차가 군사용으로 개발되고 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방위산업은 어떻게 AI를 준비하고 있을까?
현재 미 국방의 중심에는 AI 시대 대표기업 팔란티어가 있다. 팔란티어는 페이팔 마피아로 유명한 피터 틸이 9·11 테러를 경험한 이후 미국을 테러 위협으로부터 지켜 내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기업이다. 전 세계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해 미국에 가해지는 위협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응한다는 게 기본 아이디어였다. 틸은 이후 ‘고담’이라는 거대한 플랫폼을 개발해 미 국방부,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등에 남품했다. 미 정부는 전쟁 수행, 범죄 추적, 테러 방지 등에 성공적으로 활용 중이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수세에 몰렸던 우크라이나가 고담의 도움을 받아 전황을 바꾼 것은 유명한 일화다.
틸은 팔란티어를 창업하고 안주한 게 아니라 스타트업 안두릴을 키워 내며 미국 방위산업에 AI를 입히는 큰 그림을 주도하고 있다. 안두릴은 가상현실(VR) 기업 오큘러스를 창업했던 팔머 럭키가 틸의 제안을 받아들여 설립한 전투용 드론 제조기업이다.
1992년생인 럭키는 튀는 성격과 기행 탓에 오큘러스에서 쫓겨난 뒤 틸과 의기투합해 미국의 전략 방위산업 선진화에 뛰어들었다. 안두릴의 드론과 공격무기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큰 성과를 거두면서 벌써 40조 원 가치의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F-35처럼 고가의 전투기 편대가 아니라 AI로 조종하는 수십만 대의 값싼 무인기가 전장을 지배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하며 이를 준비하겠다고 당차게 밝히고 있다. 안두릴의 VR 기술과 팔란티어의 AI 시스템이 결합하면 무인 전투기·전차·전투정 등 전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신무기 개발이 가능하게 된다. 이것이 틸이 그리는 미국 방산의 큰 그림이다.
틸의 가장 적극적인 정치적 후원자는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이다. 사실상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중심인물이 틸이고 일론 머스크, 앨릭스 카프, 럭키 등이 원팀을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팔란티어, 테슬라, 스페이스X, 스타링크, 안두릴, 오픈AI 등이 만드는 거대 국방 시스템을 상상해 보자. 이미 무인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주를 커버하는 스페이스X와 스타링크가 합류하고, 여기에 테슬라의 무인 차량과 옵티머스 로봇이 원팀이 되면 그야말로 어벤저스가 현실이 되는 셈이다. 이 거대 프로젝트의 유일한 단점은 대량제조 능력과 속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보잉, 록히드마틴, 노스럽그러먼 등 거대 기업들은 생산성 저하와 비용 증가로 기업 운영에 난관을 겪고 있고, 미국 조선업은 최첨단 무인 전투정을 만들기엔 너무 낙후돼 있다. 미국이 차세대 방산을 스타트업 중심으로 전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안두릴은 대한항공과 무인 전투기 개발 관련 협약을 맺었다. HD현대와는 전투용 무인 수상정 개발계약을 체결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한화, 현대로템, LIG넥스원 등에도 전 세계로부터 주문과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병기창이라고 불리는 K방산이 얼마나 실력 있고 매력적인 파트너인지를 보여 준 사례다. 대한민국 제조업이 AI 전환을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영양가 만점의 매출을 올리며 실력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미·중 패권 대결은 중국과의 제조업 경쟁에서 점점 뒤처지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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