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더웠던 입대날이 떠오릅니다. 처음 마주한 훈련소의 풍경, 일제히 머리를 짧게 자른 전우들, 미디어에서만 접해본 생활관은 낯설게만 느껴졌습니다. 부끄럽게도 그때의 저는, 이제 매일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며 힘겨운 시간을 견디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습니다. 반복되는 일에도 분명한 의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작가이자 철학가 ‘알베르 카뮈’는 고통스러운 날마다 반복하는 시시포스가 행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반복적인 행위 속에서도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기초사격훈련 때 처음으로 느껴본 총의 서늘함과 무게를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전에 느껴보지 못한 긴장감과 두려움에 자꾸만 떨려오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집중을 더 해 한 발, 한 발 쏘아 나갔습니다. 매캐한 연기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신속하고 정확하게 방독면을 착용해야 하는 화생방훈련, 포복으로 지면을 기어다니며 수많은 장애물을 극복해야 했던 각개전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무거운 군장과 장구류를 짊어지고 행했던 20㎞ 야간행군 등 모든 훈련은 저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했습니다. 저는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든 훈련을 당당히 해냈습니다. 매 훈련은 우리에게 더 깊은 인내와 끈기를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돌을 굴리는 시시포스처럼 매일 닮은 동작을 반복했지만, 그 반복은 어제의 나를 이기는 성장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힘든 순간마다 떠오른 가족들의 얼굴도 큰 힘이 됐습니다. 붉어진 눈시울로 마중해주시던 어머니, 묵묵히 곁을 지켜주시던 아버지, 항상 친구처럼 허물없이 대해주시는 이모님에 대한 기억들은 시련의 순간마다 더 나아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저앉고 싶은 순간마다 ‘조금 더 해보자’고 외치며 격려해준 전우들이 없었다면 결코 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훈련이 끝나고 서로 파스와 밴드를 붙여주며 응원하던 시간은 내일의 훈련을 당차게 도전하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이제 저는 훈련소에서 배운 것들을 토대로 거대한 돌을 밀어 올리던 시시포스의 마음으로, 더 높은 산을 오를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웃, 그리고 우리 조국을 지켜나가며 마주하게 될 장애물들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무게이며 도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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