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과 거북선
K국방의 뿌리, 세계에 알리게... K문화의 원조, 세계로 향하게
Unveiling Admiral Yi Sun-Sin and the Turtle 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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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문화’ 열풍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K팝, K드라마, K푸드, K뷰티를 넘어 온갖 한국 문화와 제품에 세계인의 관심이 쏠리는 중이다. 최근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는 이 같은 움직임에 불을 더욱 지폈다. 하지만 그 뿌리라고 할 수 있는 K문화유산 가운데 여전히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많다. 이순신과 거북선도 그 중 하나. 국내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세계사 속에서는 이름조차 낯설다.
고광섭(예비역 해군대령) 해군사관학교 명예교수는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오랜 연구 끝에 영문 단행본 『Unveiling Admiral Yi Sun-Sin and the Turtle Ship(베일 벗은 이순신과 거북선)』을 출간, 대한민국의 해전 영웅 이순신 제독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나선 것이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시절이었습니다. 대학 도서관과 서점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관한 영문서는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정작 이순신과 거북선에 대한 영문 단행본은 없었습니다. 당시 국내에서 이순신 제독이 세계적 해전 영웅이고, 거북선은 임진왜란의 전황을 바꾼 게임체인저 무기체계라는 것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습니다.”
영문 단행본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1970년 고(故) 조성도 해사교수가 국내에서 최초로 펴냈다. 하지만 그 이후 반세기 동안 후속 연구나 새로운 영문 저서는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세계 학계에는 오래되고 부정확하거나 심지어 왜곡된 정보가 유통됐다. 전설적·신화적 색채가 짙은 내용도 반복됐다.
“국제사회에서 이러한 정보들이 계속 전해진다면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과 당대 최고의 전함 거북선의 위상이 학문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들었습니다. 이는 곧 이순신과 거북선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이 됐습니다.”
연구 과정은 쉽지 않았다. 420여 년 전의 기록은 표현의 모호함과 해석의 불확실성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 교수는 정확한 연구를 위해 전국의 주요 해전지를 직접 돌아다니며 답사했다. 오지의 이순신 행적지를 탐사하면서 새롭게 발굴된 자료들을 항법·공학적 분석을 통해 검증하며 기존 오류를 좁혀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전통적인 사료 해석 중심으로 추정 영역에 머물렀던 대부분의 이순신 연구와 달리 자료를 과학화·데이터화·실증화한 것이다.
“실제 지리적 좌표·조류 흐름·풍향·해안선 고도 등 각종 데이터를 구축해 전투 과정을 단계별로 복원했습니다. 특히 데이터를 실제 구글 지도에 적용해 마치 전장을 직접 따라가듯 읽을 수 있게 했죠. 그렇기 때문에 지도를 보면 16세기 조선 수군이 어떤 항로로 움직였는지, 어떤 방식으로 싸웠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새롭게 알려진 사실도 있다. 그동안 추정에 머물렀던 이순신의 수군기지 발음도(發音島)의 실제 위치가 신안군 안좌도임을 입증했다. 거북선과 판옥선에 탑재된 조선 수군의 주력 무기인 ‘총통’의 실제 유효사거리를 공학적으로 계산해 15m 내외의 근접포격 전술인 것도 밝혀냈다.
한편 이 책은 올해 1월 미국 아마존 전자책으로 먼저 출간됐다. 고 교수는 이를 세계 20여 개국, 300여 명의 해양사학자에게 무료로 개방했다. 하버드·예일·케임브리지 등 세계 유수 대학의 동아시아 교수진에게는 PDF 원본을 기증했다. 5월에는 이를 비매품으로 제본해 미국 백악관에도 전달, 수취 확인을 받은 바 있다. 향후 6·25전쟁 참전국 정상급에는 국내 출판본 종이책을, 전 세계 학계 전문가에게는 전자책을 계속 기증할 계획이다.
비장한 사명감을 지닌 한 원로학자의 우직한 발걸음은 이순신과 거북선의 세계화를 위한 신호탄을 다시 쏘아올렸다. 지속적인 진군(進軍)만이 남아 있을 뿐. 이제 남은 그의 바람은 분명하다.
“일제강점기 외국인에 의해 서구 사회에 처음 소개된 이순신과 거북선은 오늘날 K문화 자산의 원조입니다. 이 책이 군사외교와 민간외교의 소중한 자산이자 다양한 국제 교류와 협력의 장에서 귀중한 교재로, 아울러 K문화 확산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한국의 정신적·역사적 유산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초석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세은 인턴기자/사진=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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