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러 애증의 시작은 6·25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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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노동당 창건 80주년을 맞아 개최한 열병식에서 예년보다 화려한 연출을 보였습니다. 특히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전략무기를 대거 공개하며 외부에 군사력을 과시한 것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늦은 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열병식에서 조선중앙TV 앵커의 멘트는 귀를 의심하게 했습니다. “가장 적대적인 국가와의 첨예한 대치선에서 우리의 사상, 우리의 제도를 굳건히 사수하는 무적의 강병”이라는 표현은 비록 대놓고 한국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우리나라를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지목한 발언으로 읽힐 여지가 큽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러시아와의 연대 과시입니다. 조선중앙TV 중계 화면에서는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국장과 주북러시아 대사의 모습이 교차로 노출됐습니다. 이를 통해 북한은 러시아와의 희생적인 연대를 강조하려는 듯 보입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북·중·러 3각 연대를 토대로 외교적 위상이 높아졌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우리 손으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회주의 낙원을 일으켜 세우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북한은 지난달 전승절 외교 이후 분위기가 고무된 듯 보이며 대외 환경이 유리해졌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대한민국 외교에도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는 사안이어서, 이 지점에서 잠시 멈추고 북·중·러 연대의 난점을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북한과 중국은 올해로 수교 76주년, 북한과 러시아는 수교 77주년을 맞았습니다. 즉, 김일성 시대 초기인 6·25전쟁을 계기로 북·중·러 3각 외교 구도가 본격적으로 형성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교 직후 시작된 6·25전쟁에서 소련은 군사 고문과 군수물자를 지원했고, 중국은 병력을 대거 파병했습니다. 그 덕분에 북한은 전쟁을 지속할 수 있었고, 이때의 원조는 이후 북한 내부에서 ‘혁명의 동지’라는 표현으로 신성화됐습니다.
그러나 북한과 중국, 러시아 입장에서 6·25전쟁은 성공적인 전쟁이 아니었고, 아시아 내 공산주의 진영 패권의 문제는 소련과 중국 간 갈등 요소로 남게 됐습니다.
같은 공산주의 노선을 가졌음에도 소련은 공산당 중심의 집단 결정 체계를 강조하며 흐루쇼프의 수정주의 정책을 추진한 반면 중국은 마오쩌둥 계열로 더 급진적인 이념 노선을 고수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북한은 ‘등거리 외교’를 펼쳐왔습니다.
왜 북한이 이런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지금까지 어떻게 누적돼 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북한 외교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KFN ‘페이스:北(북) 시즌2’ 108회는 20일 오후 8시 방송됩니다. KFN 유튜브 채널에서도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박새암 KFN ‘페이스:北’ MC·국민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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