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80주년 다시 빛날 기억들
독립운동 핫플이 궁금해?! ⑧ 낙산공원에서 바라본 독립정신(서울 대학로)
1대 1000 최후의 항전…그날의 전설이 깨어나다
종로경찰서에
폭탄 투척하고
시가전 뒤 순국
김상옥 의사의 뜻
일제강점기 유일한
정규 대학의 흔적
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자취 …
‘케데헌’의 명소
낙산공원서 한눈에
악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의 시작
서울 대학로 일대는 일제강점기 때 경성제국대학이 자리해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들이 양성되던 장소였다. 이곳에선 어떤 이가 독립정신을 남겼을까? 대학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낙산공원에 올라 100여 년 전 그날을 조망해 보자. 글=이원준/사진=이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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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핫한 ‘낙산공원’
본격적인 대학로 탐방에 나서기 전 낙산공원에 올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서울 전망을 바라보자. 낙산(125m)은 서울 내사산의 하나로 좌청룡에 해당하는 산이다. 과거엔 지형이 낙타 등처럼 생겨 낙타산이라고도 했다. 현재 낙산공원은 서울 한양도성과 푸른 숲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배경 장소로 등장하면서 요즘 낙산공원엔 시민과 관광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공원 전망대에선 우리가 찾아갈 마로니에공원, 서울대학교병원, 한국방송통신대 등이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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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공원과 김상옥 의사
마로니에공원은 낙산공원에서 대학로 방면으로 내려오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이다. 1975년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옮긴 뒤 그 자리에 공원이 조성됐다. 참고로 공원 이름인 마로니에는 발칸반도가 원산지인 무환자나뭇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서울대 교정에 마로니에 나무가 있었던 것에서 유래됐다. 공원 중앙에선 일제와 ‘1대 1000’의 대결을 펼친 김상옥 의사 동상을 만나 볼 수 있다. 김상옥 의사는 1923년 1월 12일 일제 탄압의 심장부였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뒤 열흘 후 대학로 인근 효제동에서 1000여 명의 경찰과 시가전을 벌이다가 마지막 남은 한 발의 총탄을 쏴 순국했다. “나라와 겨레가 왜적에 짓밟혀 비굴한 삶을 잇느니 장렬한 의거로 죽음을 택한 대한인 김상옥 의사 애국의 횃불이 여기 영원히 타고 있다.” 동상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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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수재 양성한 경성제국대학
마로니에공원 남쪽에는 과거 경성제국대학 본관으로 쓰였던 건물이 있다. 1931년 10월 준공된 3층짜리 벽돌건물로 1981년 사적 제278호로 지정됐다. 경성제국대학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유일한 정규 대학이었다. 일제는 제국대학 설립으로 ‘친일수재’를 양성하고, 식민통치에 필요한 학술적 작업을 수행하게 했다. 경성제국대학은 광복 이후 서울대 본관 등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예술가의집으로 활용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건물이 6·25전쟁 시기 미군이 거쳐 간 장소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1951년 3월 서울 재수복 이후 대구에 있던 미 8군사령부가 이곳으로 옮겨 와 사령부로 쓰며 국군을 비롯한 유엔군을 지휘했다. 8군사령부는 정전협정 체결 이후 이곳에서 용산으로 사령부를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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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대 캠퍼스에 남은 일제의 흔적
경성제국대학 본관을 지나 한국방송통신대 캠퍼스로 들어서면 사뭇 다른 모습의 건물을 만날 수 있다. 흰색 목조건물인 역사관이 바로 그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2층짜리 목조건물로, 당시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 청사 본관으로 쓰였다. 중세 유럽에서 유행하던 방식으로 지어진 게 특징인데, 건물 벽은 독일식 비늘판으로 돼 있고 외형은 르네상스 양식을 모방했다. 일종의 공업시험소로 사용됐고, 독립 이후에도 국립공업시험원 본관으로 활용되다가 이후 주변 부지가 방송통신대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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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이 설립한 병원
방송통신대에서 길을 건너 서울대병원으로 향해 보자. 병원 한가운데에는 겉모습만 봐도 오래돼 보이는 건물이 있다. 현재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으로 쓰이는 옛 대한의원 본관이 그 주인공이다. 대한의원은 1907년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칙명으로 설립된 종합병원이다. 내부병원(1899), 광제원(1900), 관립의학교(1899), 대한적십자병원(1905) 등 관립의료기관과 의료교육기관을 통폐합했다. 치료부·교육부·위생부를 둬 일반 환자 진료는 물론 의료인 양성과 위생업무까지 담당했다. 대한의원의 설립 주체는 명목상 대한제국이었지만, 실질적인 운영은 통감부에서 맡았다. 1910년 조선총독부의원으로 개칭됐고, 1926년에는 경성제국대학에 편입됐다. 현재는 의학 관련 유물과 문서들을 소장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근대의료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상설전시와 특별전을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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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조국주권수호일념비
혜화동 로터리 오른편에는 대한조국주권수호일념비가 있다. 동성중·고교 앞에 위치한 이 비석은 일제강점기 말기 학도특별지원병, 일명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내몰린 청년들의 희생과 저항을 기리고자 세워졌다. 비석에는 청년 27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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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항일여성 김마리아
대학로와 가까운 연지동에는 항일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김마리아는 3·1운동과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활동을 이끈 독립운동가다. 김마리아는 연지동 정신여학교를 졸업한 뒤 이곳에서 3년간 교사 생활을 한 뒤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1919년 도쿄여자학원 졸업을 앞두고 도쿄 유학생들이 중심이 돼 2·8 독립선언을 하자 적극 참가했고, 곧이어 3·1 운동에도 관여했다가 일제에 투옥됐다. 이후 출소해 정신여학교를 근거지로 비밀결사단체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했다. 애국부인회는 활동한 지 1~2개월 만에 약 6000원을 군자금으로 모아 상하이임시정부에 보냈다. 그러나 1919년 11월 조직이 탄로 나 다시 옥고를 치르며 모진 고문을 당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1944년 세상을 떠났고,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정신여학교 주변에는 ‘김마리아길’이 조성돼 그의 불멸의 독립정신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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