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후손 등 50여 명
난징~충칭~청두~시안 2000㎞
임시정부 사적지 탐방길에
광복군의 ‘항일가극’ 모티브
뮤지컬 ‘아리랑: 승리의 노래’
마음속 뜨거움으로 울려 퍼져
광복 80주년과 한국광복군 창설 85주년을 맞아 ‘2025년 국외 대한민국임시정부 사적지 탐방단’이 지난달 14일부터 21일까지 중국을 찾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광복군의 발자취를 따라 그들의 희생·헌신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진 것. 탐방단의 일원으로서 현장을 다녀왔다. 글·사진=서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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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발자취 따른 여정
“책과 인터넷으로 확인했던 독립운동 사적지를 직접 볼 수 있어 감격스러웠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던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이 그려져 고개가 숙여졌고요. 형체가 사라지고 터만 남은 역사의 흔적에 더욱 소중히 우리 역사를 지켜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탐방단에 참여한 대학생 서동진 씨는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증조부가 중국 난징(南京) 일대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했다. 난징을 처음 찾은 그는 역사는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탐방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의 기획 프로그램으로 마련됐다. 기념관은 2023년부터 임시정부 사적지를 찾는 탐방행사를 하고 있다. 국권 수호의 숭고한 역사를 국민과 함께 계승하려는 취지다. 올해는 서류심사와 면접 등의 전형을 거쳐 선발된 일반 국민 50여 명이 참가했다. 단원들의 직업과 나이는 다양했지만, 우리 역사를 기억하고 지킨다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다.
탐방은 난징에서 출발해 충칭(重慶), 청두(成都), 시안(西安)을 거치는 경로였다. 네 도시를 연결하면 2000㎞에 달한다. 한낮 기온이 섭씨 37도까지 이르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 가운데 짧은 시간 많은 곳을 찾아 나서는 빡빡한 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탐방단원들은 올바른 역사인식과 적극적인 자세로 일정을 쉼 없이 이어 나갔다.
첫 일정은 난징에서 시작했다. 난징은 우리 독립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는 도시다. 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김구 선생은 이곳에서 장제스(蔣介石)를 만나 군사지원을 요청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뤄양(洛陽) 분교에 한인특별반을 설치할 수 있었다. 이는 훗날 광복군 창설의 기반이 됐다. 단원들은 임시정부 주화대표단 본부가 있던 건물을 비롯해 임시정부 요인 거주지 터, 한국특무대독립군 본부 터 등을 둘러보고 독립운동사 전문가·학예연구관의 설명을 들었다. 터만 남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 중인 현장을 보면서 우리 역사를 지키는 일의 의미를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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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지키는 일의 중요함 느끼는 시간
단원들은 난징에 이어 충칭을 찾았다. 임시정부는 1940년 9월 충칭에 정착한 이후 1945년 광복을 맞아 환국할 때까지 약 5년간 이곳을 독립운동의 총본부로 삼아 활동했다. 이 시기 임시정부는 국제사회에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고 국가로서 지위를 확립하며 독립 이후를 대비한 체계를 갖추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대일 선전포고를 발표하고 연합국과 함께 항전에 나섰다.
그래서일까. 충칭에 도착한 단원들의 마음가짐이 더욱 숙연해졌다. 단원들은 임시정부 충칭 청사(연화지), 광복군 총사령부 건물, 광복군 초모(모병) 활동지 등을 확인하며 험난했던 역사의 단편을 실감했다.
충칭에서 여정의 반환점을 돈 탐방단은 청두와 시안으로 향했다. 청두는 충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임시정부 요인들의 후방기지 역할을 했다. 광복군이 충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청두는 병력 보급과 훈련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시안은 1939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거점을 두고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벌인 도시로 알려졌다. 충칭에서 창설된 광복군은 총사령부를 시안으로 옮겨 초모 활동을 중점적으로 펼쳤고, 이때 모집된 인원은 광복군 제2지대 주축이 됐다. 광복군이 미 전략첩보국(OSS)과 공동작전을 준비한 곳도 시안이었다.
단원들은 광복군 제2지대 본부 터, OSS 훈련지, 기념비 공원을 마주한 채 관련 설명을 들으며 우리의 지금이 있도록 해 준 선열들의 열망과 의지를 가슴에 담았다. 설명을 수첩 빼곡히 메모하거나 녹음하고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했다. 사전 준비해 온 독립운동사 자료를 공유하며 의견도 나눴다.
탐방단원이자 독립운동가 후손인 대학생 조현아 씨는 “평소에도 역사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번 탐방에 참여해 역사의 현장을 직접 느끼며 독립운동의 의미를 더욱 크게 새겼다”며 “험난한 상황에서도 독립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 결국 광복을 일군 선열들의 뜻을 기억하고, 우리의 위대한 역사를 잇기 위해 제자리에서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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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구국 활동 담은 공연도 펼쳐져
이번 탐방에서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주최·제작한 뮤지컬 ‘아리랑: 승리의 노래’도 공연돼 진한 감동을 줬다. 공연은 항일 예술구국투쟁으로 독립을 꿈꾼 광복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난달 19일 시안 개원대극장에서 열린 공연에는 탐방단뿐만 아니라 우리 교민과 중국 현지 관계자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1940년대 광복군 제2지대는 시안 일대에서 활동하며 항일연극에 음악을 더한 형태의 ‘항일가극’을 무대에 올렸다. 1941년 2월 5일 광복군의 이름으로 첫 공연을 선보였는데, 바로 ‘아리랑’이었다. 가극 ‘아리랑’을 모티브로 한 이날 공연은 광복군 2지대가 활동한 시안에서 무대에 올라 의미를 더했다.
가극 ‘아리랑’은 독립운동가 한형석(한유한) 선생이 작곡·연출했다. 1938년 시안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해 한국청년전지공작대 선전조장과 광복군 2지대 선전대장으로 활약했다. 가극 ‘아리랑’은 민족적 울분과 독립의 열망을 끌어내 항일의식을 높이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 시간 남짓 공연을 하는 동안 관객들은 80년 전으로 돌아가 독립운동의 한복판에 섰다. 단원들은 광복군의 심정으로 마음속 뜨거움을 느꼈다. 객석에는 선생의 아들 한종수 씨도 함께했다. 그는 “공연 내내 부친의 모습이 떠올라 많은 생각이 들었다”며 “이번 공연이 시안에서 마련돼 더욱 가슴이 벅차오르고 감격스럽다”고 소회를 밝혔다.
8일에 걸친 탐방은 시안에서 마무리됐다. 단원들은 탐방기간 낮에는 독립운동 사적지를 찾아 나서고 저녁엔 주제 발표와 세미나, 조별 활동을 하는 강행군을 지속했다. 탐방에 그치지 않고 우리 역사를 지키는 방안을 계속 모색할 것을 결심하는 과정이었다. 국군의 뿌리이자 조국 광복에 온몸을 바친 광복군의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을 것도 다짐했다. 시간의 흐름 속에 희미해져 가는 우리 역사의 흔적을 더욱 진하게 각인하려는 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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