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7년 선조는 일본군의 주력 함대가 부산포로 집결하자 이를 차단하라고 명했다. 당시 상황에서는 부산포 공격이 일본군의 유인책이자 자멸행위임을 충무공 이순신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무모한 출전을 거부했다. 결국 파직돼 백의종군의 치욕과 고문을 당했다. 후임 원균은 명령에 복종해 출병했으나 칠천량에서 참패하며 조선 수군을 궤멸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이후 선조는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시켰다. 수군 전력이 거의 궤멸한 상황에서 왕은 수군 해체와 육군 편입을 명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라는 장계를 올리고 또다시 왕명을 거부했다.
이는 단순한 항명이 아니라 부대 생존과 전쟁 향방을 바꾸는 전략적 결단이었다. 그는 국가전략 목표 달성에 반하는 명령엔 책임을 지고라도 거부해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했다. 목숨을 담보한 소신과 치열한 판단 아래 이순신은 결국 조선과 왕을 지켰다. 그 충성은 형식이 아닌 본질에 닿아 있다. 단 12척으로 압도적 열세를 뒤집고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철저한 정보 판단과 전술적 역량 및 전략적 통찰,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군인은 적법한 명령에 복종해야 하나 단순히 ‘위만 쳐다보는 관행’이 돼선 안 된다. 전황·지형·정보·전투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고, 필요하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 오늘날 복합위기 시대의 전장, 고립된 상황, 통신 두절, 정보 혼란 속에서 독자적으로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전략적 사고와 소신, 용기 있는 결단력은 필수 역량이다. 다만 소신은 전략적 타당성 위에서 빛나며, 용기는 냉철한 판단을 전제로 해야 한다.
현대의 전장은 군사적 충돌을 넘어 회색지대 위협, 초국가 및 비전통적 안보 위협, 심리전, 여론전, 정치와 언론 및 민·군 관계 등이 얽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다차원적 환경이 돼 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전략적 통찰과 과감한 결단, 상황을 타개할 용기는 전투 승패를 넘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
충무공의 유산은 단지 ‘무패의 명장’이란 수식어가 아니라 ‘생각하는 군인, 전략적 판단을 회피하지 않는 지휘관, 신념과 용기를 행동으로 옮긴 리더’라는 정신일 것이다. 미래전의 승리는 첨단 무기보다 위기 앞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휘관의 지혜와 용기에 달려 있다. 이것이야말로 충무공 이순신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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