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힘을 권력이나 군사력으로만 한정하기 쉽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 힘은 입자 사이의 보이지 않는 상호작용의 언어다. 전자는 원자핵과의 미묘한 힘으로 궤도를 돌고, 우주는 중력·전자기력·약력·강력 4가지 기본 상호작용으로 유지된다. 결국 힘은 단순히 굴복을 강요하는 도구가 아니라 관계를 이어 주고 질서를 만드는 틀이다. 
고대 제국들은 무력으로 영토를 넓혔으나 지속성을 보장받은 것은 극소수였다. 아시리아의 철기 군대는 두려움으로 세상을 지배했지만 곧 무너졌다. 로마는 군단의 창끝만이 아니라 ‘법’을 힘의 기반으로 삼아 제국을 오래 유지했다. 로마법은 지배와 피지배를 넘어서는 공통 규칙을 마련하며 힘을 질서로 승화시켰다. 그러나 왕의 의지에만 기대 균형을 잃은 국가는 빠르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중세의 힘은 신앙과 균형의 이름으로 작동했다. 십자군전쟁은 신의 이름으로 동원된 무력이었으나 역설적으로 유럽 내부는 경제·문화교류를 촉진해 르네상스의 밑거름이 됐다. 몽골제국은 동서 문명을 잇는 거대한 길을 열었지만, 군사력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내부 권력 다툼에 휩쓸리며 빠르게 분열했다. 힘이 관계의 균형을 잃으면 반드시 파괴로 귀결된다는 교훈이 여기에 있다. 
근대 들어 힘의 성격은 과학기술과 결합하며 크게 달라졌다. 화약과 대포, 증기기관은 제국주의와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됐고 영국은 해군력과 자유무역을 결합해 ‘팍스 브리태니커’를 구축했다. 프랑스혁명은 힘을 군주로부터 민중에게 돌려줬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가 무기가 됐을 때 힘은 해방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그러나 열강이 힘을 탐욕으로만 사용하자 결국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이라는 재앙으로 이어졌다. 
현대에 이르면 힘은 점점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 이동한다. 핵무기는 단 한 번의 사용만으로도 인류를 파괴할 억지력이 됐고, 미국과 소련은 군비 경쟁뿐만 아니라 경제·문화·과학기술의 영향력을 두고 각축을 벌였다. 한국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교육과 기술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을 축적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 냈다. 총칼이 아니라 지식과 제도가 국가 운명을 바꾼 대표적 사례다. 오늘날 인류는 양자컴퓨터, 인공지능, 바이오 기술 같은 새로운 차원의 힘과 마주하고 있다. 양자역학에서 입자들이 얽힘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듯이 우리의 운명 또한 기후위기와 불평등, 전쟁 문제 속에 얽혀 있다. 힘을 국가 간 경쟁 무기가 아니라 인류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연대의 원리로 작동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역사와 과학이 내리는 대답은 분명하다. 첫째, 힘은 균형을 만들어야 한다. 어느 한쪽의 독점이 아니라 상호억제와 조화가 그 지속성을 가능하게 한다. 둘째, 힘은 책임을 요구한다. 더 큰 힘을 가진 국가일수록 더 큰 책임을 져야 국가 간 신뢰가 유지된다. 셋째, 힘은 연결을 만들어야 한다. 타인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를 단단히 잇는 방향으로 쓰일 때 힘은 빛을 발한다. 로마의 법, 근대 민주주의, 한국의 교육과 기술이 그 증거다. 반대로 제국주의와 전쟁은 힘을 탐욕에 쓴 결과였다. 
결국 힘의 진정한 가치는 타인을 살리고 공동체를 확장하는 데 있다. 물리학의 언어로는 상호작용이고, 인문학의 언어로는 관계다. 고대에서 현대, 미래까지 힘은 늘 인간 사회의 규칙을 바꿔 왔다. 남은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힘을 어떤 원리로 누구를 위해 사용할 것인가. 그 답이 곧 인류가 함께 잘 사는 세상의 방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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