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군악, 중동을 사로잡다
국방부 군악대대, 아크부대 장병 대상 해외 위문공연 현장
가족 영상 편지에 파병 장병들 눈가 촉촉
신나는 마술쇼에 전통 창작곡 공연까지
교민·UAE 군 관계자 하나 되어 K군악에 흠뻑
국방부 군악대대가 또 한 번 열사의 땅, 중동을 들썩였다. 17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의 두짓타니 아부다비호텔에서 단독 무대에 올라 UAE 군사훈련협력단(아크부대) 장병과 교민, UAE 군 관계자 등에게 K군악의 진수를 선보이며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한 것이다.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이번 공연은 지난 14일 오만 무스카트에서 청해부대 장병과 교민, 현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위문공연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됐다. UAE에서 조아미 기자/사진=김보경 중사 제공
군악대대는 희망과 도전의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스포츠영화 ‘록키’의 주제가 ‘고나 플라이 나우(Gonna Fly Now)’와 한국 작곡가 김재훈의 작품 ‘바람을 깨우다’라는 곡으로 공연의 문을 열었다. ‘바람을 깨우다’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뛸 수밖에 없었던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를 기리며 작곡된 곡이다. 해금의 청아하면서 애절한 느낌에 태평소의 힘찬 소리, 박준하 해군병장의 무용이 곁들여져 깊은 울림을 줬다. 이어진 성악 중창단이 ‘라 비타(La Vita)’ ‘일 몬도(Il Mondo)’를 풍부한 성량과 맑은 음색으로 불러 무대를 압도했다.
깜짝 이벤트로 파병 장병 가족의 영상 메시지도 상영됐다. 이 가운데 4명의 자녀를 둔 허세학(해군소령) 아크부대 해상작전대장의 자녀들은 “아빠가 계시지 않으니 엄마가 치킨을 안 사 준다”는 깜찍한 하소연이 담긴 영상편지를 보내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또한 어린 자녀를 둔 김중현 육군중사의 아내, 아들을 이역만리 타국으로 보낸 이시윤 육군상병 아버지의 영상 편지는 장병들의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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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분위기를 바꿔 보이그룹 워너원 출신 김재환 육군상병이 아크부대를 모티브로 제작된 드라마 ‘태양의 후예’ OST 중 ‘유어 마이 에브리싱(You are My Everything)’을 감미로운 목소리로 불렀고, 마술사 김기량 공군상병의 흥미로운 마술쇼가 공연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했다.
아부다비에 거주하는 전지민(15) 양은 “K팝이 이곳 학교에서도 꽤 인기가 있다”며 “특히 그룹 워너원의 팬인데 오늘 UAE에서 직접 무대로 보게 돼 너무나 기쁘다”고 말했다.
마술쇼에 이어 전통 타악기 리듬과 군악대 사운드가 어우러진 창작곡 ‘신모듬’이 사물놀이와 함께 연주돼 큰 박수를 끌어냈다. 공연의 피날레는 김재환 상병이 가수 싸이의 히트곡인 ‘연예인’ ‘예술이야’로 장식했다. 아크부대 장병 등 객석의 관객들이 흥겨운 리듬에 맞춰 보내는 환호와 박수로 공연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아크부대 해군특전장병(UDT/SEAL) 이강서 중사는 동료들과 함께 떼창을 하며 무대를 마음껏 즐겼다. 이 중사는 “오랜만에 듣는 군악대대의 공연이 쉽지 않은 해외에서의 병영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전했다.
현장에서 공연을 지켜본 교민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21년간 아부다비에 거주 중이라는 현진희(53) 씨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공연을 봤다. 군악대대 장병들의 공연에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는 현씨는 “아버지가 육군대령으로 전역하신 6·25 참전용사”라며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장병들을 보니 아버지가 떠올라 더욱 공연에 몰입한 것 같다. 대한민국 장병들이 모두 대견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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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이력 장병들
30년 군악장교 외길 ... 의대 다니다 전향 "음악으로 군 사기 높여요"
이번 해외 파병부대 위문공연에는 200여 명의 국방부 군악대대 장병 중 다시 40여 명을 선발한, 그야말로 최정예 장병들이 우리 군과 대한민국을 대표해 참석했다. 군악대대 대원 중 이색 이력을 가진 장병들을 소개한다.
심언호 중령 “남은 군 생활 군 발전 위해 최선”
심언호(육군중령) 국방부 군악대대장은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뒤 1997년 임관해 30년 가까이 군악장교의 길을 걸어왔다.
심 대대장은 그동안의 군 생활과 관련해 “수많은 국가 행사와 국빈 환영행사 등 모든 게 실전이었고 매 순간이 긴장과 전투의 연속이었지만 국가와 군을 위해 최선을 다했기에 큰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노력 덕분에 그는 지난 1월 한국음악협회 주관으로 매년 국내외 음악 발전에 이바지한 개인 또는 단체를 선정해 시상하는 ‘한국음악상 본상’을 군 장교로선 처음 받았다.
이런 경력을 가진 그에게도 이번 공연 준비의 경우 난관이 적지 않았다. 해외에서 열린 공연이어서 기후와 문화 차이가 큰 데다 음향 등의 준비가 쉽지 않아서다.
심 대대장은 “어려움 속에서도 해외 파병 장병들이 공연을 보며 기뻐하고 오만과 UAE의 군 고위 관계자, 현지인들까지 크게 환호해 줘 힘이 났다”며 “이와 함께 K문화예술의 우수성을 중동지역에 알린 게 뿌듯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귀국 후 군악대대 앞에는 ‘국군의 날’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굵직굵직한 국가 행사가 기다리고 있지만, 심 대대장은 다음 달 1일 직업보도반 교육에 들어가면서 군 생활의 마지막을 준비 중이다.
“군의 사기를 책임지고 군 문화예술을 알리는 일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군악장교의 계급 제도도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군 생활 동안 우리나라와 군의 발전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현후 상병 “연주 기량 키워 좋은 선례 될 것”
국방부 군악대대 교향악대에서 비올라를 담당하는 최현후 육군상병은 이번 공연에서 다른 중요 임무를 맡았다. 공연에서는 사회자로, 군 문화교류 협력에선 통역을 맡은 것.
최 상병은 미국 의대를 다니다 음악으로 전향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의대에서 복수전공으로 비올라를 선택하면서 진로를 과감하게 바꿨다.
“연습할 때의 설렘, 무대에 올랐을 때의 성취감, 음악으로 사람들과 교감하는 순간이 저를 진심으로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의학도 좋지만 ‘평생 하고 싶은 건 음악이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죠.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연주자 대신 사회자와 통역을 맡은 소감의 경우 “사실 사회도, 통역도 처음이라 많이 긴장되고 부담도 컸지만 두려움보다 새로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우리 군악대를 빛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전했다.
이번 공연에서 무엇보다 중동의 무더운 날씨가 가장 힘들었다는 최 상병은 “특히 오만에선 폭염 속에 야외공연을 하느라 무척 힘들었지만,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 덕분에 오히려 더 큰 보람과 감동을 느꼈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저 혼자가 아니라 군악대원들과 함께 만들어 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며 “이 경험이 오래도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듯하다”고 말했다.
최 상병은 남은 군 생활을 미래를 깊이 고민하고 준비하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군악대에서 생활하면서 늦게 전공을 시작했음에도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며 “비올라 연주자로서의 기량을 더 키우고, 후임들에게도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도록 책임감 있게 생활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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