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갈등’의 변화

입력 2025. 09. 16   15:55
업데이트 2025. 09. 16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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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석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이영석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그리스신화는 신들의 세계가 질서를 잡아 가는 과정에 겪은 두 차례의 세대교체를 보여 준다.

혼돈의 카오스가 질서의 코스모스로 정비되면서 등장한 1세대 주신 우라노스는 일부 자식을 홀대하다가 아내 가이아와 갈등을 겪고, 결국 어머니에게 협력한 아들 크로노스에 의해 권좌에서 밀려난다.

그렇게 등장한 2세대 주신 크로노스도 아버지를 몰아낸 원죄의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고 자식에 의해 쫓겨나고 만다. 자식이 태어나는 족족 삼켜 화를 막으려 했지만 아내 레아가 기지를 발휘해 빼돌린 막내아들 제우스가 장성해 아버지가 삼킨 자식들을 모두 토해 내게 한 뒤 권좌에서 밀어낸 것이다.

이런 두 번의 세대교체를 거쳐 등장한 제우스도 온전한 최고 권력자가 되기까지 여러 고초를 겪는다. 아버지 세대 전체와 전쟁(티타노마키아)을 치르기도 하고 형제와의 영역 배분, 자식들에게 신격 부여 등 여러 이야기를 남긴 뒤에야 진정한 신들의 최고 권력자가 되고, 신들 세계의 평화를 얻는다.

어디에도 평화는 항구적일 수 없기에 이후에도 신화 속 갈등의 이야기는 이어지고, 인간도 신들과 어울려 유사한 갈등을 겪으면서 이런저런 삶의 재미와 의미를 알아 간다.

그렇게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이 말하는 카타르시스를 위한 숱한 하마르티아(결함)의 원형으로서 가족·세대 갈등사례를 가득 담은 보고로서 신화는 전승되고 있다.

세대차와 갈등은 인간 세상의 항구적인 동행현상이다. 어느 시대건 각 세대는 변화무쌍한 격변의 와중에 크고 작은 고난을 거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에 그 격변과 고난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 폄하와 걱정의 마음을 갖게 마련이리라.

기술문명의 급속한 발달은 그 세대 간의 무시와 걱정의 강도를 더욱 높이는 듯하다. 과거의 세대차 지적은 대개 기성세대가 뒷세대 삶의 태도의 미성숙을 걱정하는 내용이었다면 오늘의 세대차는 삶의 양식과 실질의 차이에 따른 난감함을 하소연하는 내용이다. 오죽하면 ‘신세대’라는 말로도 부족해 ‘신인류’라고 부르며 그 차이를 강조하겠는가.

더욱이 최근의 세대차나 갈등양상은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 고착되는 것 같아 심란하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낙서가 ‘요즘 어른들은 매너가 없다’ ‘요즘 어른은 위험하다’는 슬로건으로 바뀐 것인데, 메시지와 메신저가 확연하게 전도돼 자리 잡고 있다.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를 나무라며 걱정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세대가 기성세대를 비난하며 배제하는 ‘아들 크로노스’와 ‘아들 제우스’의 모양새다.

언론에 소개된 사례를 보면 ‘50대 이상 남성 사절’ ‘5060 한국남 출입금지’ ‘노 시니어존’과 같은 부정과 배제의 슬로건이 공공연히 등장한다.

그러면서 특정 업소에 매너 없는 일부 기성세대의 출입을 제한해 안락한 분위기를 만들고, 특정 위험시설 이용을 제한해 안전사고를 줄이고 있다고 말한다. 일부를 과장해 세대 갈등을 유발한다는 지적에도 이들 진취적(?) 트렌드는 상당한 여론의 지지를 받는 모양이다.

가뜩이나 상상하지 못한 각종 이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물적·정신적 풍요를 누리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보며 주눅 든 늙은 세대로선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뒤틀린 심사를 다잡고 “너희는 늙어 봤느냐. 우리는 젊어 봤다”고 소리쳐 봐도 메아리가 없다. 그저 “모든 세대는 자기 세대가 앞선 세대보다 더 많이 알고, 다음 세대보다 더 현명하다고 믿는다”는 조지 오웰의 경구나 읊조리며 ‘아버지 우라노스’와 ‘아버지 크로노스’의 처지와 심정을 헤아려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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