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키는 대로, 닿는 대로 - 초가을 하루 여행, 전남 나주
향나무 숲길과 평행 이룬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수변 산책로·산 어우러진 공원
덕산리 고분군서 금성관까지
숲~혁신도시~구도심 한 바퀴
역사·문화·여유 그리고 맛…
가볍게 떠나는 가을 마중
가을 초입의 바람이 선선해지면 걷기 좋은 길부터 떠오른다. 도심과 가까운 숲과 수변, 실내 전시와 역사 유산을 하루에 엮을 수 있는 곳이 있다. 전남 나주시다. 연구 목적의 숲을 시민에게 개방한 전라남도산림연구원, 혁신도시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전망대와 드넓은 호수를 갖춘 빛가람호수공원, 영산강 유역의 고고·역사를 정리한 국립나주박물관, 조선 전기의 객사 금성관이 서로 인접해 하루 동선으로 묶인다. 나주의 장점은 짧은 이동과 낮은 난도다. 혁신도시의 수변과 낮은 산, 원도심의 객사와 관아, 반남 들녘의 고분군이 한 바퀴로 연결된다. 실내·야외·수변이 고르게 배치돼 날씨 변수에도 대응하기 쉽다. 아침에는 숲, 낮엔 박물관, 해 질 녘에는 호수, 마지막으로 원도심 유산과 맛집 투어까지. 하루 만에 전통과 역사, 문화와 여유까지 즐길 수 있는 나주로 떠나 보자.
전라남도산림연구원, 연구의 숲을 시민에게
나주시 산포면에 자리한 전라남도산림연구원은 전남 산림자원을 시험·연구하는 기관이다. 모태는 1922년 광주광역시에 설치된 임업묘포장으로, 1970년대 지금의 자리로 옮겨 시험림을 갖췄다. 연구용으로 관리하는 숲이지만 ‘빛가람 치유의 숲’이라는 이름으로 정돈해 방문객에게 무료 개방한다. 이 안에는 자생종과 도입종을 합쳐 1000여 종의 식물이 자란다. 남도 특유의 온화한 기후 덕에 상록활엽수 비중이 높고, 가을이면 메타세쿼이아와 단풍·은행이 짙게 물든다.
연구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다. 직선으로 약 400m, 양옆으로 높게 선 나무가 프레임을 만들어 낸다. 바로 옆 향나무 길은 질감과 냄새가 달라 ‘평행한 숲’을 걷는 느낌을 준다. 길 가운데를 관통하는 ‘무장애 나눔길’ 목조데크는 경사가 완만해 노약자나 유모차도 부담이 없다. 활엽수원·화목원 등 테마구역을 지나면 호랑가시나무, 동백나무처럼 사철 잎을 지키는 나무들이 잇따라 눈에 들어온다. 감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열매도 보이지만, 시험림의 과실은 연구자원이어서 채취가 금지돼 있다.
연구원은 숲을 체계적으로 ‘이용’하는 방법도 마련했다. 청소년·직장인·가족·부부·어르신 등 7개 대상을 세부적으로 나눠 50여 개의 산림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숲, 만나 봄’에서 몸과 마음의 현 상태를 확인하고, ‘숲, 느껴 봄’에선 산책·호흡·명상과 근육이완을 하며 긴장을 낮춘다. 마지막 ‘숲, 채워 봄’에서는 천연성분을 활용한 아로마 테라피나 자연물 공예를 더한다. 모든 과정은 산림치유지도사가 안내하며 오전·오후 각 2시간, 1인 1만 원이다. 원칙적으로 사전 예약제다(잔여수량 현장 접수 가능).
프로그램을 뒷받침하는 실내시설도 알차다. 1층 건강측정실에는 뇌파측정기와 스트레스지표(HRV) 측정기, 체지방·체성분 분석기, 체질량지수(BMI) 측정기, 혈압계가 갖춰져 있다. 참가자는 시작 전후로 기본 지표를 확인해 체감효과를 수치로 비교할 수 있다. 대기시간엔 적외선 반신욕이나 족욕을 선택해 몸을 데우고, 숲길로 다시 나선다.
이 밖에 상설 숲 해설 프로그램이 있어 시험림의 식생, 연구 진행상황, 숲의 동물 이야기를 해설사에게 들으며 걷는 선택지도 가능하다. 유아숲체험원은 3~11월 어린이집·유치원 등 기관 신청을 받아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평일 오전 교육시간 외에는 자유 이용을 허용한다. 목재 놀이시설과 완만한 지형 덕분에 가족 단위 체류시간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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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가람호수공원, 물과 바람이 만드는 오후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빛가람혁신도시) 건설 당시 조성된 빛가람호수공원은 수변 산책로와 습지, 낮은 산이 하나의 호흡으로 이어지는 도시형 공원이다. 중심에는 인공호수, 배후에는 해발 약 80m의 배메산이 있다.
빛가람호수공원을 즐기는 법은 다양하다. 그저 호숫가를 따라 한 바퀴 산책하며 거닐어도 되고, 자전거를 이용해 공원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호수 한가운데서 음악분수를 운영한다. 낮부터 밤까지 공원의 다채로운 매력을 음악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아이와 함께 방문한다면 배메산 기슭에 마련된 유아숲체험원에서 도심 속 자연공간의 매력에 푹 빠져 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지다.
배메산 정상에 설치된 빛가람 전망대에 올라가 보는 건 어떨까. 혁신도시 전경과 호수가 한 프레임에 들어오며 이색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등산을 해야 하냐고? 아니다. 배메산 기슭과 정상부를 연결하는 모노레일이 운영 중이다. 내려올 때는 특수 제작된 미끄럼틀을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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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나주박물관, 영산강 유역에서 살았던 사람들
국립나주박물관은 삼국시대까지 이 일대에서 융성했던 마한을 중심으로 다양한 역사 이야기를 다루는 공간이다. 이 박물관의 핵심은 박물관 주변에 형성돼 있는 나주 덕산리 고분군이다. 이 일대에선 여느 지역과 다른 대형 독널(옹관)이 확인되며, 금동관·금동신발·환두대도 등 최고위급 장신구가 출토돼 마한 사회의 위계를 보여 준다. 박물관 상설 전시 ‘고분 문화실’은 이 고분권을 실측자료와 출토품으로 설명하고, ‘역사 문화실’은 석기에서 조선까지 지역사의 흐름을 정리한다.
박물관 외곽으로 고분군이 펼쳐진다. 동편의 신촌리 2·3호분은 전시장과 거의 맞닿아 산책 동선으로 관람이 가능하고, 서쪽 구릉의 4~6호분, 남측의 7~9호분이 차례로 이어진다. 전시실 해설을 듣고 야외 고분 분포도를 대조하면 유물과 지형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고분군 옆에는 꽃밭이 펼쳐지기도 한다. 박물관 공식 SNS 채널에서 핑크뮬리·코스모스 개화정보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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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관, 조선의 의례가 남긴 공간 감각
다시 구도심으로 향하자. 나주역 인근은 나주읍성이 설치돼 있었을 정도로 유서 깊은 동네다. 조선시대에 지어진 건축물, 금성관이 여전히 남아 긴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다. 금성관은 나주목사가 손님을 맞이했던 공간이다. 매월 2차례씩 국왕에게 예를 올리고(망궐례), 중앙에서 내려온 관원과 사신을 접대하는 연회를 열었던 곳이다. 마치 궁궐의 정전을 연상케 하는 구성이 특징이며, 현존하는 국내 최대 규모급 객사 건축물이다.
금성관이 읍치의 의례 중심이라면 인근 나주목사내아는 수령의 살림·업무공간으로 일상 운영을 담당했다. 내아의 ㄷ자형 한옥과 문간채를 보면 객사~문루~내아로 이어지는 위계가 읽힌다. 정수루는 목관아의 관문 역할을 했던 누각으로, 금성관 옆에 남아 있다. 이 세 지점을 연속해 걷다 보면 조선시대 나주목관아의 형태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자세한 정보는 나주목문화관에서 확인해 보자.
객사 주변으로는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이들이 살아간다. 빛가람혁신도시와 달리 고즈넉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역사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고풍스러운 카페에 앉아 여유로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금성관 앞거리에는 ‘나주곰탕’ 상권이 밀집해 있다. 나주시의 곰탕은 다른 곳과 달리 맑은 국물을 내주는데, 뼈보다는 고기를 고아 육수를 내는 방식이 특징이다. 밥을 토렴한 채 국밥 형태로 만들고, 수육을 얹어 주기도 한다. 금성관 주변에 나주곰탕 맛집이 많다. 맛의 차이가 크지는 않으니 취향껏 즐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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