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몫을 묻지 않는 산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입력 2025. 09. 09   16:13
업데이트 2025. 09. 0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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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언철 법무법인 대화 변호사
심언철 법무법인 대화 변호사

 


‘이태원 클라쓰’ ‘스위트홈’ ‘미생’ ‘지옥’ ‘파인’ 등 웹툰·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원저작물→2차적 저작물→글로벌 확장’이라는 성공 경로를 보여 줬다. 그 배경에는 글과 그림으로 대표되는 원저작물이 있었다. 원저작물은 K콘텐츠 산업의 씨앗이자 토양인 셈이다.

법은 원저작물과 2차적 저작물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한다. 저작권법 제22조는 원저작물을 기초로 한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원저작자에게 부여하고, 2차적 저작물은 독자적 저작물로 보호하되 그 보호가 원저작자의 권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정한다. 따라서 원저작물 기반의 영상화·굿즈 제작·출판 등은 반드시 원저작권자의 동의나 이용 허락을 전제로 해야 하며, 그 허락을 받은 경우에도 범위를 넘어서는 이용은 허용되지 않는다. 대법원도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은 원저작자의 권리이므로 이를 넘는 이용은 저작권 침해”라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5다74894 등).

그럼에도 그동안 원저작권자의 보호는 충분치 못했다. ‘검정고무신’ 사건이 대표적이다. 고(故) 이우영 작가의 유족과 출판·스토리업체 간 분쟁은 계약서에 ‘원저작물 및 그 파생사업에 관한 모든 권리’가 포괄적으로 포함돼 있었고, 기간도 불명확했던 데서 비롯됐다. 법원은 일부 계약 효력을 부인하고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지만, 장기간·포괄적 권리 설정이 창작자의 권리를 사실상 박탈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

구름빵 사건도 같은 교훈을 남겼다. 백희나 작가는 기업과의 계약에서 ‘매절(일괄 양도)’ 조항 탓에 이후 애니메이션·캐릭터 상품화 등에서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법원은 매절계약의 유효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불공정성을 지적했고, 이 사건은 추가보상제·표준계약서 도입 등 제도 개선 논의를 촉발했다. 결과적으로 작가의 권리를 장래에도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최근엔 국가가 직접 나서 원저작권자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웹툰·웹소설 계약 전수조사로 △포괄적 2차적 저작물 권리 설정 △계약 강제연장 △정산정보 미제공 등을 적발해 시정권고를 내렸다.

정부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2차적 저작물 작성 이용 허락은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하며, 포괄적·무기한적 권리 부여는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도 표준계약서를 보급하고 추가 보상장치를 마련하는 등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그렇다고 원저작권자 보호에만 치우쳐 2차적 저작물 작성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위축시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드라마·영화화에는 수백억 원대 제작비와 투자 위험이 수반된다. 만약 포괄적 계약을 전면 금지하거나 과도하게 규제한다면 제작·투자 유인이 떨어져 원저작물의 확장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 K콘텐츠 산업의 성장동력 자체가 꺾일 수 있다는 의미다.

필요한 것은 균형이다. 원저작권자에게는 정당한 몫을 보장하면서도 2차적 저작물 작성자에겐 창작과 투자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계약 단계에서 △권리 범위(어떤 권리를 언제, 어디까지 허락하는지) △이용기간과 지역 △제3자 재허락 여부 △수익 분배와 정산 투명성 △권리 회복 절차 등이 명확히 규정돼야 한다. 포괄적·무기한적 양도는 지양하고 ‘추후 보상’ ‘표준계약서 활용’과 같은 보완장치가 실효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K콘텐츠의 경쟁력은 원저작물과 2차적 저작물이 서로 보완하는 건강한 생태계에서 비롯된다. 씨앗의 몫을 묻지 않는 산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동시에 씨앗이 자라 꽃을 피우도록 투자와 제작자 역할도 존중받아야 한다. 제2, 제3의 ‘오징어 게임’과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이 균형 위에서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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