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스타를 만나다
베테랑 솔로 여전히 어려운 홀로서기 혼란 속에서 답을 찾다 전소미
열다섯 나이에 ‘프로듀스 101’ 최종 1위
걸그룹 아이오아이로 성공적 데뷔 후 솔로 도전
틴에이지 팝스타, 싱어송라이터, 테크토닉 댄서…
더블랙레이블서 자신만의 페르소나 구축
새 앨범 ‘카오틱 & 컨퓨즈드’
베테랑 솔로의 고민 고스란히
K팝 ‘엑스트라’서 생존자로…
‘올라운드 팔방미인’ 매력 UP
2025년 K팝 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름은 더블랙레이블이다. 2015년 YG엔터테인먼트가 당시 소속 아티스트였던 타블로와 싸이, 프로듀서 테디에게 독립적인 음반 기획 기회를 제공하고 창작의 폭을 넓히고자 설립한 산하 레이블로 출발한 이 회사는 이제 YG의 관계회사 단계를 넘어 K팝의 유행을 새롭게 주도하는 태풍의 눈으로 거듭났다. 검증된 히트메이커 테디와 쿠시의 지휘 아래 빈스, 24, 도민석, 대니 정 등 재능 있는 프로듀서들이 쏟아 내는 음악과 타고난 끼로 무장한 음악가의 활약이다.
설립 이후 힙합 음악가의 간헐적인 싱글 발매와 모회사 소속 음악가들의 음원을 발매하는 정도의 소극적 행보를 보이던 더블랙레이블은 2020년대 본격적인 홀로서기와 함께 지속적인 투자로 지난해부터 그 결실을 맺고 있다.
블랙핑크의 유산을 더 젊고 세련된 방향으로 발현하는 미야오,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랜드(I-LAND)’와 손잡고 공동 프로듀싱해 내놓은 이즈나는 빠르게 시장에 자리 잡은 K팝 걸그룹이다. 오래간만에 등장한 혼성그룹으로 화제를 모았던 올데이 프로젝트는 구성원의 데뷔 전 유명세와 화제성을 세련된 음악으로 풀어낸 ‘페이머스(FAMOUS)’와 ‘위키드(WICKED)’로 가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정점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다. 전 세계적인 흥행에 힘입어 이제는 하나의 현상으로까지 자리한 넷플릭스 히트작의 음악 역시 더블랙레이블의 작품이다. 빌보드 핫 100 차트 정상까지 오른 ‘골든(Golden)’부터 ‘소다 팝(Soda Pop)’ ‘유어 아이돌(Your Idol)’ ‘테이크다운(Takedown)’까지 K팝의 정수를 보여 주는 히트곡은 K팝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동시에 담고 있다.
파죽지세, 종횡무진, 거침없는 더블랙레이블의 행진에 합류한 가수가 있다. 지난 11일 두 번째 EP ‘카오틱 & 컨퓨즈드(Chaotic & Confused)’를 발표하며 복귀를 알린 전소미다. 사실 ‘합류’라는 표현은 어색하다. 2018년 전속계약을 맺었으니 올해로 8년 차다. 아이돌그룹 해체와 탈퇴의 징크스 기준점이 7년 차인데, 전소미는 그마저도 넘어섰다. YG 산하 레이블로부터 독립, 본격적인 솔로 활동까지 모든 역사를 함께 경험한 회사의 고참이다.
새삼 놀라운 사실은 이게 전소미 경력의 시작이 아니라는 점이다. 10대 시절부터 한국에 정착한 아버지 ‘매튜 다우마’와 함께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그는 일찍이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다. JYP엔터테인먼트 연습생으로 트와이스 선발 오디션 ‘식스틴’에 출연해 아쉽게 고배를 마신 게 벌써 10년 전이다. 이듬해 경연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최종 1위를 차지하며 걸그룹 아이오아이로 데뷔의 꿈을 이뤘을 때 전소미는 고작 15세였다.
전소미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이국적인 외모와 성실하고 밝은 대외적 이미지는 K팝 아이돌에게 요구되는 대부분의 조건을 충족시켰다. 어떤 활동이든 전력을 다해 참여할 준비가 돼 있는 음악가에게 그룹보다 홀로서기는 운명과도 같았다. 아이오아이 활동 이후 JYP를 떠나 YG로 이적해 솔로 데뷔를 선택한 배경이다.
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진지하다. 처음으로 경력을 시작한 싱글 ‘버스데이’의 수록곡 ‘어질어질’의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리며 스스로 곡을 만들고 가사를 쓰는 싱어송라이터의 자질을 증명했다. 다재다능하면서도 단독 지위를 잃는 법이 없었다. 태권도, 최연소, 혼혈, 패션, 틴 팝, 디바…. 개별 요소로 뜯어보면 전소미만의 것은 아니나 전소미가 아니라면 이 모두를 품을 순 없었다. “K팝 산업에서 하기 힘든 롤이 여자 솔로이스트입니다. 모든 시선이 자기를 보고 있기에 혼자 잘하지 못하면 절대 무대를 살릴 수 없어요.” 프로듀서 테디는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술회했다.
신생 기획사 더블랙레이블에 전소미의 존재는 행운이었다. 이미 자신의 세계를 갖추고 있는 태양과 자이언티 같은 음악가와 달리 어떻게 다듬어 나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전소미를 통해 회사와 음악가 모두 동시 성장할 수 있었다.
전소미의 경력을 돌아보면 간헐적으로 내놨던 작품의 성격이 확연히 구분됨을 확인할 수 있다. 신인의 해맑은 태도로 무장한 ‘버스데이’와 팝 시장의 여성 솔로 음악가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왓 유 웨이팅 포(What You Waiting For)’. 이 둘을 절충해 솔로 경력을 정의한 히트곡 ‘덤 덤(DUMB DUMB)’과 발랄한 틴에이지 팝스타의 ‘엑소엑소(XOXO)’까지가 초기 경력이다. 전소미를 정의하는 수많은 단어를 테크토닉 비트, 독특한 댄스, 음악으로 표현한 ‘패스트 포워드’의 히트와 첫 번째 EP ‘게임 플랜(GAME PLAN)’은 두 번째 페르소나다. 많은 곡을 발표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경력을 쭉 따라온 팬이라면 오늘날 이즈나, 미야오, 올데이 프로젝트의 음악 아이디어가 어떻게 등장하고 구체화됐는지를 알아챌 수 있다.
‘카오틱 & 컨퓨즈드’는 전소미의 새로운 전기를 연다. 지금까지의 작품이 여러 방면에서 쉼 없이 달려온 전소미의 페르소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내면에 충실하다.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결정의 무게감조차 느끼지 못했을 어린 나이에 경력을 시작해 일거수일투족을 평가받는 K팝 여성 솔로가수로 살아가는 오늘날의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음악에 투영하고 있다. 차분하고 진지한 태도가 앨범 전반에서 두드러진다.
차가운 포스트 펑크록 위 어지럽게 고민하면서도 달려야만 하는 운명을 그리는 ‘에스커페이드(Escapade)’, 션 킹스턴의 ‘뷰티풀 걸스(Beautiful Girls)’를 현대적인 스터터 하우스 스타일로 샘플링한 타이틀곡 ‘클로저(CLOSER)’, 자신을 넘어서고자 하는 투쟁의 나날 가운데 ‘예쁘게 비뚤어진 꿈’을 노래하는 ‘카오틱 & 컨퓨즈드’ 모두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전소미의 이미지와 거리가 있다. 컴백 다큐멘터리에서 밝힌 대로 전소미의 자작곡 중 밝은 노래는 얼마 없다. 치열한 경쟁을 일상으로 받아들인 지 오래된 베테랑의 고충이다.
“내가 너의 엑스트라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냉정한 K팝 시장의 생존자 전소미가 ‘엑스트라(EXTRA)’에서 고충을 토로한다. “난 내 마음을 다 주고 싶은데, 넌 아이오아이만 원하네.” 누군가의 엑스트라였던 이들이 주인공으로 거듭나기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전소미는 그 난제를 풀었다. 더블랙레이블과 함께 펼칠 그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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