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그들이 온다
게임처럼 스파이 임무 수행하는 청소년들
‘쉽게 돈 버는 법’ 잦은 검색 이용
단순 활동 지시하고 수백 달러 지급
자신도 모르게 자폭테러 연루되기도
발각돼도 처벌하지 못하는 사례도
|
영국 경찰, 청소년 스파이 활동 경고
영국 런던경찰청은 지난달 15일 언론 브리핑에서 “외국 적대세력의 정보 수집, 사보타주, 암살 등 위협 활동이 2018년에 비해 5배 이상 증가했다”며 “특히 청소년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지난달 11일 런던에 있는 우크라이나 물류창고를 방화한 청년 5명이 체포됐다. 주동자인 딜런 얼(21)은 러시아 용병그룹 ‘바그너’와 텔레그램으로 접속해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바그너그룹으로부터 우크라이나로 보내는 물자를 보관하는 물류창고를 공격하라는 지시를 받고, 20~23세의 또래 청년 4명을 모집해 방화를 실행한 것이다.
런던경찰청은 부모와 교사들이 자녀들을 지켜볼 필요가 있으며, 이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당국에 적극 도움을 청하라고 당부했다. 지난해 5월에는 폴란드 검찰이 캐나다 청소년인 레이큰 파반(18)을 러시아 스파이 혐의로 체포했다. 그는 자선단체 활동을 위해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를 방문했다가 러시아 정보기관인 FSB에 포섭됐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인접국 폴란드로 가서 군사정보를 수집하라는 지시를 받고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로 이동한 그는 바에서 술에 취해 자신이 스파이라는 사실을 노출하고 말았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FSB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았다’ ‘휴대전화와 심카드 3개를 받았다’는 사실 등을 모두 인정하면서 수사에 협조했다. 바르샤바 지방법원은 지난해 말 그가 아직 어리고 강요받았다는 점을 고려해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했다. 이는 FSB가 청소년을 활용했을 때 기대하는 효과 중 하나인 가벼운 처벌이 실현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3월 10대 중국인 고등학생 2명이 경기 수원·평택·오산시 및 충북 청주시의 공군비행장 등 군사시설 4곳에서 망원렌즈가 장착된 카메라와 휴대전화로 전투기·관제탑 등 군사시설 사진 수천 장을 촬영한 혐의로 체포됐다. 하지만 항공기 사진을 찍는 게 취미라는 이들의 주장 이외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해 처벌하지 못한 사례가 있다.
청소년 방첩교육 나선 우크라이나 정보기관
러시아와 전쟁으로 정보전이 치열한 우크라이나의 정보기관 보안국(SBU)은 지난 4월부터 전국 중고교를 찾아가 FSB의 접근방식과 이들의 포섭을 회피하는 기법을 청소년들에게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는 최근 1년간 FSB에 포섭돼 정보·테러 활동에 가담한 자국민 700여 명 중 175명(25%)이 18세 미만이었다는 통계에 따른 것이다. FSB는 청소년들이 ‘쉽게 돈 버는 법’ 등을 SNS에서 자주 검색한다는 점을 이용했다. 텔레그램, 디스코드 등 메신저 앱에서 물건 운반, 사진 촬영 등 단순한 활동을 지시하고 수백 달러의 돈을 준다. 이후 이를 빌미로 협박해 군사시설 촬영, 폭탄 설치, 방화 등 위험성이 큰 임무를 부여한다고 한다.
FSB는 게임 ‘퀘스트(임무)’ 형태로 청소년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임무를 부여받아 실행하고, 보상받는 형태의 온라인게임에 친숙한 청소년들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한 목적이다.
게임 퀘스트로 속여 특정 장소의 사진을 찍어 오게 하거나 정보를 전달하는 임무를 하달하고, 대가로 금전을 제공해 청소년들이 일종의 게임으로 알고 참여하게 하는 특화된 기법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엔 온라인 퀘스트 게임으로 위장해 청소년을 모집한 뒤 군부대 등 특정 장소 촬영 및 방화 등을 하도록 유도한 사건이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자살폭탄 테러에 연루되기도 한다.
지난해 3월엔 15세와 17세 청소년 2명이 1700달러를 받고 사제폭탄을 제조해 운반 중 FSB에 의한 원격폭발로 한 명이 죽고 한 명이 중상을 입었다. 올 5월에는 특정 장소에 폭발물을 설치한 뒤 신고해 경찰을 유인한 다음 폭발시킨 사례도 있다. 지난 6월 25일 경찰에 체포된 19세 여성은 폭발물을 만들어 군이 사용하는 전동스쿠터에 장착해 군인 한 명을 살해했다. 16세 소년이 군사기지를 촬영하고 위치정보를 텔레그램으로 FSB 요원에게 보내다가 현장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SBU는 이 청소년이 보낸 위치정보가 러시아의 미사일이나 드론 공격에 쓰였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SBU는 곳곳에 경고문구를 게시해 청소년들의 방첩 경각심을 높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교를 직접 찾아다니며 간단한 심부름에 고액의 대가를 제시하는 등 의심스러울 경우 SNS상 ‘FSB 요원 폭로’라는 챗봇을 통해 익명으로 신고토록 유도하고 있다고 한다. 단순히 교육만 하는 게 아니라 청소년들에게 친숙한 형태의 수단으로 간편하게 신고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실질적인 방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난 5월 말 기준, 두 달 만에 미성년자 포섭 시도 신고건수가 50여 건에 달했다고 하니 효과는 입증됐다고 할 수 있다.
온라인에 친숙하고 호기심 많은 소프트타깃
청소년들은 대개 사회 경험이 적을뿐더러 정보기관이나 스파이 활동의 경우 더욱 알기 어려워 적대적 정보기관의 포섭에 기본적으로 취약하다. 또한 온라인환경에 친숙하고, 호기심이 많을 뿐만 아니라 작은 금전적 유혹에도 빠지기 쉬워 포섭이 용이한 소프트타깃이라고 할 수 있다. 임무 실행 과정에서도 주변으로부터 잘 의심받지 않으며, 책임을 물을 때도 관대한 처벌을 기대할 수 있어 일회용 스파이로 활용하는 데 적격이다.
쉽게 적성국의 스파이로 이용될 수 있는 이들에게 사전 방첩교육을 함으로써 면역력을 키우는 일은 방첩기관의 또 다른 중요한 임무라고 할 수 있다. 북한뿐 아니라 각국 정보기관의 정보적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우리도 중고교 및 각종 청소년시설에서 관련 교육을 강화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SNS·게임·메신저 등 흥미로운 매체를 활용한 디지털교육으로 외국 정보기관의 접근방식, 금전 유혹, 협박수법 등 실제 사례를 기반으로 한 시뮬레이션 교육을 도입하고 교육부와 국가정보원 등 관계기관의 협업으로 정기적 캠페인을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의 ‘FSB 요원 폭로’ 챗봇처럼 SNS 기반 익명 신고시스템을 구축해 청소년들이 흥미를 갖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효율적이다. 카카오톡·네이버 톡톡 등 국내의 잘 발달된 SNS 플랫폼에 가칭 ‘스파이 접근 신고 챗봇’을 도입하고, 신고 시 자동으로 대응가이드를 제공하며, 필요시 전문가와 직접 연결도 가능한 디지털 신고시스템을 운영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인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SNS에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 등 각국 언어로 제작된 동영상을 배포해 공개적으로 스파이를 모집하고, 은밀하게 활동하던 중국 국가안전부도 SNS인 위챗 계정을 개설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외국 스파이의 유형·사례를 소개하는 방첩교육을 강화하며 신고를 독려하고 있는 시대다.
우리도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국가 방첩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에 무엇보다 외국의 정보적 위협을 인식하고 대응 능력을 키우기 위한 청소년, 군 장병, 일반 국민에게 특화된 맞춤형 교육이 우선돼야 한다.
* 청소년이 타깃이 되는 이유
1. 사회 경험 적어 정보 부족
2. 온라인에 친숙하고 호기심 왕성
3. 작은 금전적 유혹에도 취약
4. 상대적으로 의심받지 않음
5. 책임에 비해 관대한 처벌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해당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