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이슈돋보기
2025년 인도·태평양 주요국의 국내정치 동향 ③ 필리핀의 국내정치 동향과 대외정책
두테르테 러닝메이트 지명 대선 압승
취임 한 달 만에 대통령·부통령 균열
올해 5월 총선서 두테르테 진영 약진
탄핵 추진하던 마르코스 동력 약화
국내 지지 기반 구축하려 중국 견제
반대 측은 미·중 사이 중립 견지 주장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과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의 갈등이 전면적으로 표출되면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필리핀 정치의 양대 진영을 대표하는 이들의 갈등으로 인해 정치적 불안정성이 고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대중국 정책 기조 변화 역시 국내정치 동향과 밀접히 연계되고 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로, 아버지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부친인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65년부터 1986년까지 장기집권했으며, 특히 1972년부터 1982년까지 계엄령을 선포해 수천 명의 반대파를 체포·고문하고 살해하면서 독재자로서 악명을 떨쳤다. 이에 필리핀 시민들이 1986년의 민주화 혁명을 통해 항거하자 하야한 뒤 하와이로 망명해 3년 후 사망했다. 이후 아들 마르코스는 1990년대 필리핀으로 돌아와 주지사와 상원의원에 선출됐다.
이러한 정치적 재개를 발판으로 마르코스는 2021년 10월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여기에 같은 해 11월 당시 다바오 시장이던 두테르테가 마르코스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고 발표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당시 대통령의 딸인 두테르테 시장은 여론조사에서 줄곧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기록하면서 유력한 차기 주자로 부상했다. 하지만 대선후보로 등록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부통령 선거 후보로 등록했다. 이에 마르코스 후보는 대선 승리를 위한 통합된 지도력 구축을 명분으로 두테르테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했으며, 두테르테 측이 이를 수용하면서 정치적 제휴가 공식화됐다.
양측의 제휴는 2022년 5월 대선에서 마르코스 후보가 경쟁자인 레니 로브레도 당시 부통령에 압승한 결정적 원인으로 평가됐다. 마르코스 가문은 필리핀 북부 지역에서 왕조로 불릴 만큼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과 지지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두테르테 가문은 남부 지역에서 강력한 지지 기반을 구축했다. 이러한 두 정치 진영이 연대한 결과 마르코스는 대선 유세 과정에서 당시 대통령인 두테르테의 정치적 영향력과 기반을 토대로 지지층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저비용·고효율의 선거 마케팅 전략을 통해 젊은 유권자들을 공략한 것도 주효했다.
하지만 2022년 6월 마르코스의 대통령 취임 이후 양측 갈등이 본격화됐다. 마르코스 정부가 2023년 12월부로 필리핀 공산 반군과 평화 협상을 재개하기로 하자 두테르테 부통령은 ‘악마와의 합의’라면서 비난했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헌법 개정 추진에 대해서도 6년 단임제를 수정해 장기 집권하려는 시도로 규정하면서 반발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 역시 마르코스 대통령이 1986년의 시민 혁명으로 인해 하야한 선친과 같은 운명을 겪을 수도 있다는 극단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반면 마르코스 대통령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남부 민다나오섬 분리 주장을 “중대한 헌법 위반”으로 규정하면서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현직 대통령의 갈등이 표출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두테르테 부통령은 2024년 6월부로 두테르테 부통령이 겸직해 온 교육부 장관과 반군 대응 TF 부의장에서 물러났다. 이어 올해 1월에는 2028년 대선 출마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르코스 대통령 역시 부통령을 국가안보회의에서 배제하면서 양 진영의 결별을 공식화했다.
두 진영의 충돌은 올해 5월 총선과 2028년 대선을 앞두고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행보로 해석됐다. 따라서 24석의 상원의원 중 절반인 12석과 하원의원 317석 전체를 선출하는 총선 결과에 귀추가 주목됐다.
양 진영의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된 선거 결과 마르코스 측은 여론조사에서 예상된 상원 9석을 밑도는 6석 확보에 그쳤다. 반면 두테르테 진영 후보들은 여론조사 전망치를 넘어선 최소 4석을 차지하면서 약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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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선거 결과가 두테르테 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에 초래할 영향도 주목받았다. 올해 2월 필리핀 하원은 예산 유용 의혹과 마르코스 대통령 부부 암살 지시 발언 등을 근거로 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따라서 이번 총선 결과가 상원의 탄핵 결정에 초래할 영향에 귀추가 주목됐다. 전체 상원의원 3분의 2인 16명 이상의 찬성표로 탄핵이 결정될 경우 차기 대선 유력 주자인 두테르테 부통령이 해임되는 동시에 평생 공직에 취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6월 필리핀 상원은 탄핵소추안이 헌법에 따라 작성된 것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명문을 내세우면서 하원에 돌려보냈다. 마르코스 진영의 부진과 두테르테 진영의 약진이 교차한 중간선거 결과로 두테르테 부통령의 탄핵 추진 동력이 약해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임 두테르테 대통령의 대외정책 기조가 전면적으로 수정된 상황 역시 양 진영의 갈등을 초래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2016년 6월 대통령 취임 이후 동맹국인 미국의 외교 정책을 비판하는 동시에 중국에 대해서는 친화적 태도를 견지했다. 특히 중국 선박 수백여 척이 영유권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의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장기간 정박하는 상황에서도 미온적으로 대응했다. 여기에 2020년 2월에는 미국과의 방문군지위협정(VFA) 종료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논란을 초래했다.
마르코스 대통령 역시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과의 정치적 제휴 관계에 따라 전임 대통령의 대외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필리핀 내 확고한 지지 기반을 구축한 두테르테 가문의 협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선 과정에서 마르코스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유력 인사 다수가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점 역시 전임 정부의 친중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이 고조되면서 마르코스 대통령은 중국 견제 행보를 본격화했다. 예를 들어 독자적 방위력 구축 노력과 함께 작전개념 혁신에도 착수했다. 동맹 및 소다자 협력 차원에서의 노력도 본격화됐다. 미군의 필리핀 군기지 추가 이용 합의, 미·일·필 3자 협의체 창설, 미·일·호·필 4자 협의체 가동 등이 주요 내용이다. 미국의 중국 견제용 신형 미사일 발사체계인 타이폰(Typhon) 배치도 유지하기로 하면서 중국의 반발을 초래했다.
이러한 일련의 행보는 전임 대통령과 차별화된 국내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려는 마르코스 대통령의 의도로도 해석됐다. 이에 두테르테 부통령은 현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를 친미·반중으로 규정하면서 독립적 외교 정책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또한 영유권 분쟁이 대중국 관계의 전부가 아니라면서 필리핀이 미국에 경도되는 대신 미·중 전략경쟁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반응은 필리핀의 대중국 정책 기조 변화가 국내정치적 갈등 구도와 밀접히 연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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