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만에 돌아온 독립유공자
“상기 불현듯 기다리는 마을마다 그대 어이 꽃을 밟으시리.
가시덤불, 눈물로 헤치시라.
그대들 돌아오시니. 피 흘리신 보람 찬란히 돌아오시니.”
- 정지용 시 ‘그대들 돌아오시니’ -
국외 안장 독립지사 6인 유해 봉환식
헌신 소개 영상에 나라 사랑 의미 되새겨
안창호 선생作 ‘거국행’ 울리자 장내 숙연
김민석 총리 “끝까지 찾아 기리겠다”
대전현충원에 영면…마지막 길 빗속 환송
머나먼 이국에서 광복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온 독립운동 동지들을 위해 시인 정지용이 지은 ‘그대들 돌아오시니’가 울려 퍼지자 듣는 이들 모두가 숙연함에 고개를 숙였다. 떠나간 이를 그리는 김소월의 시 ‘초혼’을 재해석한 소프라노 손지수의 열창엔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었다. 제80주년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국외 안장 독립유공자 유해 봉환식 현장은 호국영령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이들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어우러진 뜻깊은 자리였다. 글=맹수열/사진=김병문 기자
국가보훈부는 이날 김민석 국무총리가 주관한 가운데 고(故) 문양목·김덕윤·김기주·한응규·임창모·김재은 지사의 유해 봉환식을 열었다. 6명의 독립지사는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싸운 이로, 독립운동 현장에서 타계하거나 광복 후 해외로 이주한 뒤 세상을 떠나 현지에 묻혀 있었다.
정부는 유가족과의 협의를 거쳐 이들 독립지사 유해를 고국으로 옮겼다. 봉환식은 안장에 앞서 이들의 고귀한 정신과 희생을 기리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아침 일찍 쏟아진 폭우를 뚫고 행사장에는 많은 사람이 운집했다. 미국·캐나다·브라질 등 고인이 이주한 국가에 뿌리를 내린 후손을 비롯해 정부와 광복회 등 각계 인사가 자리했다. 우리 정부의 배려로 태어나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는 한 10대 후손은 행사장을 신기한 듯 두리번거렸다.
“평소 K팝을 좋아해 꼭 한국에 와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런 이유로 방문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얼굴을 보지 못한 할아버지지만 덕분에 한국에 올 수 있어 너무 감사해요.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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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엄숙한 음악과 함께 봉환식이 시작됐다. 김 총리와 권오을 보훈부 장관, 성일종 국회 국방위원장, 이종찬 광복회장 등 내빈과 유가족은 타국으로 이주했지만 조국 독립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끝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한 선조 모습이 담긴 공적 소개 영상을 보며 나라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겼다.
이들을 위한 헌시는 정지용의 ‘그대들 돌아오시니’로 정해 의미를 더했다. 낭송을 맡은 독립유공자 홍창식 선생의 자녀 뮤지컬 배우 홍지민은 정갈한 목소리로 시를 읊은 뒤 유가족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헌정·추모 공연은 감동적인 무대로 이뤄졌다. 국악인 이윤아는 마찬가지로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도산 안창호 선생이 해외로 떠나는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지은 노래 ‘거국행’을 불러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소프라노 손지수의 ‘초혼’ 공연은 참석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봉환사를 맡은 김 총리는 정부의 무한한 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온 독립지사들의 이름과 공적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 총리는 “이역만리에서 풍찬노숙하며 국권 회복의 길을 개척한 여섯 분의 피 끓는 애국에 경의를 표한다”며 “정부는 불굴의 용기와 기개로 일제에 항거한 분들을 끝까지 찾아 기리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대한민국은 비상계엄과 내란의 위기를 ‘빛의 혁명’으로 극복했다”고 언급한 뒤 “혹독한 식민 치하에서 온몸을 바쳐 독립운동에 나선 애국지사의 활동이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월 항쟁, 촛불 혁명의 뒤를 이어 빛의 혁명으로 이어진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점에서 독립유공자 유해 봉환은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것을 넘어 미래의 교훈을 국민이 공유하는 소중한 자리”라고 덧붙였다.
김 총리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독립지사의 유해가 영면할 국립대전현충원으로 향하는 길까지 비를 맞으며 환송했다. 이를 지켜보던 유가족은 정부의 배려와 예우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문양목 지사의 후손 정두수 씨는 “국가에서 주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줘서 정말 감사하다”며 “후손인 우리도 잘 알지 못했던 부분까지 상세히 알려주는 모습에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날 6명의 독립지사가 한국에 안장됨에 따라 국내로 봉환된 국외 안장 독립유공자는 총 155명이 됐다. 보훈부는 앞으로도 타국에 묻힌 독립지사를 한국으로 이장하는 사업에 힘을 기울일 방침이다. 권 장관은 “여섯 분의 독립유공자를 비롯한 선열들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알려 나가는 것은 물론 국외 안장 독립유공자의 유해를 마지막 한 분까지 고국으로 모시는 데 성심을 다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독립지사 6인의 공적…이렇게 헌신했다
학생 신분으로 독립운동 참여했다 옥고… 일본군 강제 징집됐다 목숨 걸고 탈출
日 외교고문 처단 전명운·장인환 의사 후원
도매업하며 모은 자금으로 독립운동 지원
“지식 연마 민족의식 고양” 비밀결사대 활약
북미 대한인국민회 문양목 선생
1869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문양목 선생은 미국 하와이를 거쳐 1906년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대동보국회를 결성했다. 동시에 대동보국회 기관지인 대동공보사의 사장 겸 발행인을 맡아 동포들의 국권회복의식을 고취했다. 1908년 3월 전명운·장인환 의사가 일제 침략 옹호 발언을 한 대한제국 외교고문 출신 스티븐스를 처단하자 재판후원회를 조직했다. 1911년 2월엔 북미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에 당선돼 해외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이후로도 대한인국민회의 주요 인사로 활동하던 선생은 1940년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서거했다.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미주 흥사단 제3반 반장 임창모 선생
1894년 황해도 은율 출신인 임창모 선생은 1919년 학생 신분으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2년 일본을 거쳐 1925년 중국, 1926년 미국에서 공부한 선생은 1929년부터 흥사단에 몸담아 미주 흥사단 제3반(시카고) 반장으로 활동했다. 로스앤젤레스와 캔자스를 중심으로 도매업을 한 선생은 미국에서 자리잡은 1928년부터 1945년 광복에 이를 때까지 각종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며 독립지사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정부는 2019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한미 연합작전 ‘독수리 작전’ 참가 김재은 선생
김재은 선생은 1923년 강원 통천 출신으로, 일본군에 강제 징집됐다가 탈출해 한국광복군에 몸담았다. 1945년 5월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한 선생은 한미 연합작전인 ‘독수리 작전(Project Eagle)’에 참가해 유격·폭파 훈련과 암호통신 교육을 받았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자 선생은 패망한 일본군의 무장해제 작업과 한인 교포들의 신변 보호 및 귀국 지원 임무를 맡았다. 정부는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한국광복군 훈련반 합류 김기주 선생
1923년 경기 이천에서 태어난 김기주 선생은 1944년 강제 징집돼 일본군에 들어갔다가 한 달 만에 탈출해 한국광복군 훈련반(한광반)에 합류했다. 이후 충칭 광복군 총사령부 토교대(土橋隊)와 경위대(警衛隊) 소속으로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광복군 정보수집·초모공작 활동 한응규 선생
한응규 선생은 1920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1945년 6월 중국 상하이 진단대에 재학 중 한국광복군 징모 제3분처에 입대해 전방 공작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광복군 제2지대 제3구대 강남분대에서 정보수집과 초모공작 활동을 펼쳤다. 광복 이후에는 중국 동포를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정부는 1990년 선생에게 애족장을 수여했다.
비밀결사대 열혈회 조직 김덕윤 선생
1918년 평안남도 평양 출신인 김덕윤 선생은 숭인상업학교 동기들과 ‘각 분야 지식을 연마해 민족의식을 고양하겠다’는 결의 아래 ‘일맥회’란 비밀 모임을 결성했다. 이어 강력한 독립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으로 열혈회(熱血會)를 조직하고 일본 니혼대에 입학했다. 일본에서 비밀 회합과 활동을 이어가던 중 1939년 회원들과 함께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맹수열 기자/사진=보훈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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