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하늘 지키는 공군18전비의 특별한 커피

입력 2025. 08. 12   17:18
업데이트 2025. 08. 1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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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전비 커피 동아리, 커피 1번지 강릉시와 협업 
단순한 취미생활 넘어 바리스타 양성
장병들 신중한 손길 드리퍼 물 붓자 향긋한 향 폭발
부대 내 카페 ‘하늘카페’ 리모델링
동료들 만들어 준 시원한 커피에 더위 싹 가셔 

100인 100미 
신맛·단맛…향과 농도 조절
완성된 커피 한 잔 밸런스 맞추듯
지역사랑 전우사랑 상생의 향기를 내립니다

12일 공군18전투비행단(18전비) 기지 커피 동아리실 안. 원두를 갈아 내린 고소하고 깊은 향기가 피어올랐다. 이 향기가 특별한 것은 군과 지역 사회가 함께 빚어낸 상생의 향기이기 때문이다. 18전비 커피 동아리는 대한민국 커피 1번지로 불리는 강릉시의 문화적 자산과 손잡고 민군 협력의 새로운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 명물인 ‘박이추 커피공장’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장병들이 취미를 갖는 것은 물론 바리스타로 성장하고 부대는 지역 문화 홍보의 첨병 역할을 자처하며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군복 입은 청년들이 내리는 커피 한 잔이 부대와 지역의 경계를 허물고 소통과 화합의 ‘원두’가 되고 있는 것. 그 특별한 현장을 소개한다. 글=임채무/사진=이경원 기자

 

18전비 커피동아리 신주호 장병이 커피를 내리기 위해 드리퍼에 뜨거운 물을 붓고 있다.
18전비 커피동아리 신주호 장병이 커피를 내리기 위해 드리퍼에 뜨거운 물을 붓고 있다.



“자, 프리 임퓨전(뜸들이기)부터. 천천히, 물줄기는 가늘게, 자세 낮추고. 가운데서부터 바깥으로 원을 그리며 원두를 충분히 적셔 주세요. 원두가 가진 가스가 빠져나오면서 커피빵(원두가 물을 만나면 빵처럼 부풀어 오르는 현상)이 부풀어 오르죠. 잠시 기다리면 첫 추출액, 커피의 모든 맛이 응축된 ‘엑기스’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저 까만색 액체가 제대로 나오는지 지켜보세요.”

 

이날 오전 18전비 커피 동아리실. 강릉 ‘박이추 커피공장’ 황광우 실장은 장병들이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조언을 쏟아냈다. 그의 설명에 따라 동아리 장병들이 신중한 손길로 드리퍼에 물을 붓자, 향긋한 아로마가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황 실장은 커피 추출의 각 단계가 지닌 의미를 ‘밸런스’에 빗대어 설명했다. “피자를 먹을 때 햄만 골라 먹으면 그건 피자가 아니라 햄을 먹은 거죠. 커피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추출액은 산미와 향이 강렬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커피의 모든 걸 즐길 수 없어요. 2차, 3차 추출을 통해 단맛을 충분히 뽑아내고, 4차부터는 농도를 조절하며 전체적인 밸런스를 맞춰야 합니다. 이 모든 성분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한 잔의 완성된 커피가 되는 겁니다.”

황 실장에게 커피 동아리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 자신도 18전비에서 군 복무를 마친 예비역 공군병장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제가 복무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병들의 문화 활동 여건이 좋아졌다”며 “부대에서 이런 전문적인 취미 활동을 보장해 준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라며 감회를 밝혔다.


박이추 커피공장 황광우(왼쪽 둘째) 실장, 이선희(왼쪽 넷째) 군무주무관이 커피동아리 장병들과 커피를 내리고 있다.
박이추 커피공장 황광우(왼쪽 둘째) 실장, 이선희(왼쪽 넷째) 군무주무관이 커피동아리 장병들과 커피를 내리고 있다.

 

이선희(맨 왼쪽) 군무주무관과 커피 동아리 장병들이 위병소 근무자에게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전달하고 있다.
이선희(맨 왼쪽) 군무주무관과 커피 동아리 장병들이 위병소 근무자에게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전달하고 있다.



바리스타 합격률 100% 

올해로 창립 12년째를 맞은 동아리는 최근 대대적인 변신을 감행했다. 장병들의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동아리실을 이전하고, 배관 공사와 리모델링을 거쳐 최신 에스프레소 머신까지 완비했다. 그 결과 지난 7월 바리스타 자격증 시험에 응시한 3명 모두 합격의 영광을 차지했다. 평균 합격률이 50%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다. 부대 동아리실이 단순한 취미 공간을 넘어 전문 바리스타를 양성하는 ‘작은 사관학교’로 탈바꿈한 것이다.

황 실장은 “단순히 커피 내리는 기술을 넘어, 원두의 품종별 특성을 이해하고 기계를 올바르게 유지·보수하는 노하우까지 체계적으로 전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교육 제의를 받았을 때 교육을 잘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며 “배우고자 하는 장병들의 열의가 상상 이상으로 뜨겁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격증을 취득한 신주호 병장은 “동아리 활동을 통해 군 복무 기간이 자기 발전의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취미를 찾고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전역 후 복학하기 전까지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취미 생활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부대와 지역의 홍보 명소가 되고 있는 18전비 ‘하늘카페’.
부대와 지역의 홍보 명소가 되고 있는 18전비 ‘하늘카페’.



지역문화 홍보 첨병 

동아리 담당 이선희 군무주무관은 이러한 성과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주무관은 “우리 비행단과 차 문화의 역사는 신라 시대 화랑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며 부대 내에 고즈넉이 자리한 유적 ‘한송정(韓松亭)’ 이야기를 꺼냈다.

한송정은 신라 화랑들이 명산대천을 순례하며 심신을 수양할 때 차를 달여 마시던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 유적 중 하나다. 18전비는 매년 가을, 강릉시와 함께 이곳에서 옛 화랑에게 차를 올리는 ‘헌다례(獻茶禮)’와 지역 주민들과 함께 차를 즐기는 ‘들차회(茶會)’를 열어 전통 계승과 민군 화합에 앞장서고 있다. 차를 통해 심신을 수련했던 화랑의 정신이 오늘날 커피를 내리는 장병들에게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위에 커피 동아리는 지역사회와 호흡하고 있다. 이 주무관은 “2021년부터 5년째 ‘강릉커피축제’에 참가해 부스를 운영하며 공군을 알리고 지역 축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2023년 축제에서는 100명의 바리스타가 실력을 겨루는 ‘100인 100미(百人百味)’ 퍼포먼스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실력을 공인받기도 했다. 군인다운 절도 있는 자세와 전문가 못지않은 섬세함으로 내린 커피가 심사위원과 관람객 모두를 사로잡은 것이다. 그는 “장병들이 동아리 활동을 통해 지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군 생활의 활력과 보람을 찾는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덧붙였다.

부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대 내 카페인 ‘하늘카페’를 리모델링하고 지역 상생의 상징물인 자체 제작 머그컵을 선보였다. 머그컵은 스타벅스 ‘Been There’ 시리즈 머그컵에 착안해, ‘커피 한 잔 속에 하나의 도시와 부대를 담는다’는 철학 아래 기획됐다.

머그컵 한 면에는 ‘I’ve been to Gangneung’이라는 문구와 함께 초당두부, 오죽헌, 동해의 파도 등 강릉의 상징물이, 반대편에는 ‘I’ve been to the 18th Fighter Wing’이라는 문구와 함께 빨간 마후라, 전투조종사 헬멧, 활주로 등 비행단의 정체성이 감각적인 일러스트로 담겼다. 이 머그컵과 디자인을 활용한 하늘카페는 장병과 방문객에게 강릉과 18전비를 알리는 움직이는 홍보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더위를 싹 가시게 한 커피 한 잔

불볕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정오. 동아리 장병들의 손이 다시 분주해졌다. 조금 전 연습하며 내린 에스프레소에 차가운 물과 얼음을 가득 채워 넣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이 커피의 목적지는 땀 흘리며 일하는 동료 전우들의 임무 수행 현장이었다.

“필승!”

정문 위병소에서 굵은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경계근무에 한창이던 장병에게 시원한 커피 한 잔이 건네졌다. 장병의 얼굴에 순간 화색이 돌며 고마움이 번졌다. 이승우 병장은 “더위 속에서 근무를 서다 보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치기 마련”이라며 “동료들이 직접 만들어 준 시원한 커피 한 잔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더위를 싹 가시게 만들었다”며 웃었다.

커피를 전달한 안재원 상병은 “가장 덥고 힘든 시간에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전우들에게 우리가 배운 기술로 잠시나마 힘이 돼 주고 싶었다”며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커피를 만드는 일이 이렇게 보람되고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고 말했다.

동아리 장병들이 정성껏 만든 커피는 활주로의 정비사들은 물론 기지 방호의 최일선에 있는 근무자들에게도 차례로 전달됐다. 커피 향은 자칫 삭막할 수 있는 부대에 따뜻한 전우애를 불어넣는 촉매제가 됐다. 한 잔의 커피가 부대 전체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퍼뜨리며 전우애는 물론 민군 상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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