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이 노력해 이룬 것을 상대방이 알아주길 바란다. 자신의 진면목과 재능, 장점, 생각, 감정, 처지 등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인정해 줄 때 자신감이 넘친다. 나를 알아봐 준 이에게 충성심이 절로 생긴다.
이순신 장군은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하며 지냈다. 아버지가 걱정하자 어머니는 호기심이 많고 영특해 그렇다며 그를 감쌌다. 20세에 그는 혼인하게 된다. 장인은 그에게 문과보다 무과에 응시하는 게 어떠냐고 권유한다. 장인의 조언에 힘입어 혼인 후 체력단련과 병법 공부에 몰두한다. 28세에 무과에 도전하지만, 안타깝게도 승마 실기시험을 보다가 말에서 떨어져 낙방한다. 4년 후 재수 끝에 32세의 나이에 무과에 급제한다. 임관 후 한양 군사훈련원에서 병사 훈련과 인사를 담당했다. 어느 날 상급자의 인사청탁을 받는다. 자격이 되지 못한 자가 승진하면 정작 능력을 갖춘 자가 떨어진다며 단호하게 거절한다. 미운털이 박혀 불이익을 자초한다. 이후 임진왜란 때 백의종군 등 수많은 고난을 겪지만, 그를 알아본 재상 류성룡에 의해 등용된다. 오래전 서울로 이사 와 이웃에 살았던 류성룡이 이순신의 형과 친하게 지낸 것. 그때 그를 눈여겨봤다. 재능과 됨됨이를 일찍이 알고 있었던 터. 육군 장교이던 그를 해군으로 전군(轉軍)하게 해 7단계나 초고속 승진시킨다. 모함으로 위기에 빠진 그를 적극 변호하기도 했다. 부여받은 자리와 책임감이 애국심과 충성심으로 키워졌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뒤 선조로부터 받은 시호가 충무다. 나라를 위한 공적과 덕망이 높았던 사람에게 내리는 이름 훈장이다. 충성심의 상징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장왕은 연이은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여러 문무대신을 모아 놓고 연회를 열었다. 연회가 무르익어 대신들은 취기가 올랐다. 그때 바람이 불며 연회장을 밝힌 촛불들이 꺼져 버렸다. 캄캄해진 연회장에서 한 장수가 장왕의 애첩인 후궁의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몸을 더듬는 성추행을 했다. 놀란 후궁은 그 장수의 갓끈을 잡아당겨 끊고, 바로 장왕에게 달려가 고했다. “누군가 불 꺼진 틈을 타 저를 희롱한 자가 있습니다. 증거로 갓끈을 갖고 있으니 불을 밝혀 그를 엄벌에 처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장왕은 불이 꺼져 있는 연회장을 향해 큰소리로 명을 내린다. “지금 모든 대신은 자신의 갓끈을 잘라 버려라.” 장왕은 희롱당한 후궁을 달래 내보낸 뒤 연회장의 불을 다시 밝혔다. 다들 누가 범인인지도 모른 채 상황은 끝났다. 대신들 대부분 자신의 취중 실수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감동은 컸다. 자신들을 향한 신뢰와 아량에 감복했다. 이런 군주라면 목숨을 다해 충성해도 모자람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난 진범 장수는 목숨을 건졌다.
몇 해 뒤 초나라는 주변 강국들과 일전을 벌인다. 장왕도 목숨의 위협을 느낄 열세의 전쟁이었다. 파죽지세의 적군들이 장왕 눈앞까지 밀어닥쳤다. 왕이 전사하거나 사로잡히면 나라가 망하는 경각이었다. 그 앞을 가로막고 나선 장수가 있었다. 그가 바로 수년 전 연회장 희롱사건에서 은혜를 입은 장수였다. 그는 사력을 다해 장왕을 구한다. 풍전등화의 전세는 역전된다. 전쟁이 끝난 뒤 전승의 공로를 세운 장군들을 불러 치하한다. 장왕은 자신을 구해 준 장수를 찾았다. 장수는 자신이 당시 연회장에서 취중 실수를 한 자이며 주군의 은혜로 다시 살아난 자라고 고백한다. 그들은 충성을 다해 싸웠고, 초나라는 춘추전국시대 강국으로 오래 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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