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7월 3일, 그리고 오늘의 조종사

입력 2025. 07. 02   15:40
업데이트 2025. 07. 02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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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규 소령 공군11전투비행단
전민규 소령 공군11전투비행단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했다. 당시 대한민국 공군은 전투기 한 대 없이 연락기(L-4, L-5)만을 보유한 채 전쟁을 맞이했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미군의 전투기 지원을 요청했고, 미 의회의 신속한 승인을 거쳐 10명의 조종사가 일본 이타즈케 미 공군기지로 파견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6월 말은 한국과 일본 모두 장마철이다. 10명의 선배 조종사는 단 30분, 1소티(1회의 이착륙) 남짓의 비행훈련을 마친 뒤 기다림 대신 결단을 선택했다.

하루가 다르게 밀려오는 북한군의 진격 앞에서 머뭇거림은 곧 조국의 패배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7월 2일 그들은 F-51 무스탕 10대를 몰고 대한해협을 건너 현재 필자가 근무하는 대구기지에 착륙했고, 다음 날 대한민국 공군의 첫 전투기 출격이 이뤄졌다.

함께 있던 미군 교관은 조종사들의 기량이 아직 부족하다며 출격을 만류했지만, 선배 조종사들은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주저 없이 이륙을 강행했다. 그중 이근석 장군은 전투 중 적의 공격에 피격당한 뒤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적 전차에 돌진해 장렬히 산화했다.

이날을 기리고자 공군은 2008년 7월 3일을 ‘공군 조종사의 날’로 제정하고 매년 기념식을 하고 있다. 특히 이근석 장군이 처음 도착한 대구기지는 공군 전투기 출격 발원지로서 상징성을 지닌다. 기지 정문에는 이근석 장군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으며, 매년 조종사의 날이 되면 11전투비행단 조종사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그 앞에 선다. 그 정신은 지금 이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모든 조종사에게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 공군의 전력은 1950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F-35A 스텔스 전투기를 비롯해 KA-1, FA-50 같은 국산 항공기를 보유 중이다. 수송기, 정찰기, 공중급유기, 항공통제기 등 첨단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무기체계뿐만 아니라 인적 역량 또한 크게 향상됐다. 조종사들은 실전적 훈련으로 전장환경에 최적화된 기량을 갖췄다. 유사시에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그 어떤 임무도 마다하지 않을 준비가 돼 있다. 해외에서 자국민을 안전하게 복귀시킨 프라미스작전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을 보호한다는 것을 보여 준 사례다.

이 모든 성과는 75년 전, 단 30분의 훈련만으로 출격했던 선배 조종사들의 용기와 희생에서 비롯됐다. 우리는 그 정신을 잊지 않고 지금도 하늘에서 그 뜻을 실천 중이다. 조종사에게 하늘은 조국을 지키는 전장이며 최전선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대한민국을 지키는 가장 높은 힘’으로서 선배들의 신념을 가슴에 새기고 이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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