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식탁 만나다
보리밥 물에 말아 전우와 나눠 먹던 그때
된장국 한 숟갈에도 눈물이 났지
그 식탁이 그립진 않아…지금이 감사하지
밀면·돼지국밥·비빔당면…
뭐든 없던 시절, 절박함이 만든 음식들
전쟁세대 씁쓸한 추억이
전후세대엔 별미가 되어
오늘의 식탁에 오른다
6·25전쟁 시기 극심한 식량난 속에서 피난민들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끼니를 잇기 위해 지혜를 모았다. 그 결과 탄생한 음식들은 이후 각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전쟁이라는 혼란 속에서 만들어진 음식을 통해 시대의 역경과 생존의 지혜를 다시 들여다본다. 글=박상원/사진=조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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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식탁을 추억하다
“전쟁 땐 뭐라도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었지. 볶은 보리, 죽, 간신히 얻은 된장국 한 숟갈에도 눈물이 날 때였어.”
23일 오전 육군53보병사단이 마련한 ‘6·25전쟁 참전영웅 초청행사’에서 서종구 옹이 식사를 앞두고 꺼낸 말이다. 기자는 이날 참전용사들과 같은 식탁에 마주 앉아 ‘그날의 식탁’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날 사단이 준비한 메뉴는 특별히 재해석된 전쟁음식은 아니었지만, 밥상은 전쟁의 고통과 생존의 지혜가 깃든 음식 이야기로 풍성했다.
다부동전투와 평양탈환작전에 참전한 서옹은 전쟁 때 질 좋은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는 “전투 중에는 전우들과 주먹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흐르는 냇물을 마시며 싸웠다”고 덤덤히 말했다.
김우성 옹도 된장국 그릇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김옹은 “전쟁 중엔 밥알 부스러기조차 아껴 먹었다. 그건 음식이라기보다 생존의 상징이었다”며 “요즘 군인들이 웃으며 밥 먹는 걸 보면 가슴이 뭉클하다. 우리는 나라를 지켜낸 세대였지만, 후배들은 이 나라를 더 단단히 지키는 세대”라며 옆에 앉은 장병의 어깨를 토닥였다.
김기일 옹도 숟가락을 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옹은 “그땐 밥보다 보리가 익숙했다. 보리밥에 된장이면 그날은 호사였다. 전우들끼리 찬물에 밥 말아 나눠 먹으며, 그 한 그릇이 얼마나 귀한지 절실히 느꼈다”며 “솔직히 그때의 식탁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 지금처럼 마음 편히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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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함이 담긴 음식의 기억
동서고금 어느 전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참전용사의 증언처럼 6·25전쟁 땐 식량난이 극심했다. 피난민들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그렇게 탄생한 음식들은 훗날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발전했다.
부산의 ‘밀면’은 전쟁의 절박함 속에서 태어났다. 냉면을 즐기던 함경도 출신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내려와 메밀 대신 구호물자로 제공된 밀가루와 전분으로 면을 뽑은 것이 그 시작이다. 당시 냉면집을 운영하던 실향민 정한금 씨는 이 음식을 ‘경상도 냉면’이라 부르며 판매했다. 값싸고 든든한 한 끼로 부산 시민들의 사랑을 받은 밀면은 지역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부산 우암동에서 내호냉면을 운영하는 유재우 대표는 할머니 정씨를 떠올리면 온통 냉면 생각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유 대표는 “그 시절 한 그릇에 담긴 절박함과 생존의 기억을 지금도 지키고 있다”며 “참전용사분들의 헌신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분들이 식당에 오면 만두 한 접시는 서비스로 드릴 수 있도록 직원들에게 항상 이야기한다”며 “우리 가게에 와서 좋은 추억을 쌓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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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국밥’도 부산의 전쟁음식 유산 중 하나다. 피난민들이 미군 부대에서 나온 돼지뼈를 이용해 만든 국밥은, 고기가 귀하던 시절 풍부한 영양소를 제공하며 허기를 달래줬다. 부산진구 서면시장 인근 미군 부대(캠프 하야리아) 주변에서 시작된 국밥집들은 점차 골목을 형성했고, 이내 부산 시민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양념장과 부추를 곁들인 국밥 한 그릇에는, 피난의 역사와 민초의 지혜가 녹아 있다.
부산의 명물 ‘비빔당면’도 빼놓을 수 없다. 밀가루와 쌀이 귀하던 전시, 고구마·감자 전분으로 만든 당면을 삶아 고추장 양념에 비벼 먹는 길거리 음식이 유행했다. 적은 양으로도 포만감을 줄 수 있어 대체식으로 널리 활용됐다. 현재는 부산 남포동 깡통시장 등지에서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음식이 됐다.
‘부대찌개’는 전쟁 직후 미군 부대 주변에서 탄생한 전형적인 퓨전 음식이다. 미군 잔반으로 나온 햄, 소시지, 콩통조림 등을 김치·고추장과 함께 끓여 먹은 것이 시초다.
경기 의정부, 서울 이태원 등 미군 주둔지 인근에서 본격 유통됐다. 이후 라면 사리와 치즈 등이 더해져 오늘날 대중음식이 됐다. 단순한 끼니를 넘어선 부대찌개의 독특한 풍미와 포만감은 ‘전쟁의 산물’이자 ‘식문화의 진화’로 평가받는다.
대구에서는 속재료가 부족해 얇은 만두피만 부쳐낸 ‘납작만두’가 탄생했다.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 밀가루 피에 당면과 부추만 약간 넣어 만들어 먹은 간식이다. 서문시장과 교동시장 등지에서 명물로 자리 잡았고, 지금도 세대를 아우르는 향토음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등겨수제비’는 6·25전쟁 발발 직후 국군이 낙동강방어선까지 밀려난 뒤 생겨난 음식이다. 피난민이 몰려들면서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보리농사가 성했던 영남지역에서는 쌀 대신 보리 속껍질(등겨)로 수제비를 만들어 허기를 달랬다. 경북 성주의 향토음식으로 전해지는 등겨수제비는 고달팠던 시절을 견뎌낸 이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강원 속초의 ‘아바이순대’는 1·4후퇴 때 정착한 함경도 실향민들이 만든 고향의 맛이다. 찹쌀밥, 선지, 채소 등을 넣은 큼직한 대창 순대는 속초 아바이마을 일대에 향토음식으로 정착했다. 실향의 아픔이 깃든 이 음식은,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속초의 대표 먹거리가 됐다.
6·25전쟁 75주년 전쟁의 상흔은 사라졌지만, 기억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날의 밥상은 단지 생존의 수단이 아니라 삶을 지켜낸 이야기였다. 된장국 한 숟가락에 눈시울을 붉히던 한 참전용사의 주름진 손등을 기억한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의 식탁에서 그날의 이야기를 다시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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